기술이 우리를 연결할수록 고립되는 아이러니
찬호께이 작가의 이름을 들으면 많은 분들이 자연스레 『13.67』을 떠올리실 겁니다. 홍콩의 과거를 관통하며 시대의 아픔과 한 형사의 집념을 밀도 높게 그려낸 걸작이었죠. 『13.67』이 과거를 향한 뜨거운 헌사였다면, 그의 또 다른 작품 『망내인(網內人)』은 가장 동시대적인, 서늘한 현재의 홍콩을 겨냥합니다. '네트워크에 사로잡힌 사람들'이라는 제목처럼, 소설은 차가운 모니터와 익명의 그림자 속에서 벌어지는 비극을 쫓아갑니다.
이야기는 '샤오원'이라는 평범한 소녀의 갑작스러운 죽음에서 시작됩니다. 동생의 죽음에 어떤 비밀이 숨겨져 있음을 직감한 언니 '아이'는 진실을 파헤치기 위해 탐정 '아녜'를 찾아갑니다. 아녜는 까칠한 성격의 소유자지만, 누구도 따라올 수 없는 IT 기술과 사람의 심리를 꿰뚫는 사회공학적 접근으로 사건의 실체에 다가서죠. 그리고 아이는 그녀에게 동생의 죽음에 대한 복수까지 의뢰하게 됩니다.
한 소녀의 죽음을 둘러싼 미스터리는 단순한 범인 찾기를 넘어, 우리를 둘러싼 네트워크 세상의 본질적인 질문으로 독자를 이끌고 갑니다.
이 책의 제목이 '망내인'인 이유는 명확합니다. 기술은 우리를 시공간을 초월해 연결했지만, 그 연결이 언제나 선한 방향으로만 흐르지는 않는다는 것을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소설 속에서 샤오원을 죽음으로 몰아간 것은 단 한 명의 주범이 아닙니다. 익명성 뒤에 숨어 무심코 던진 돌멩이들, 수많은 '넷상의 인물들'이 바로 공범이었습니다.
책이 처음 쓰인 2017년에도 이 주제는 충분히 날카로웠지만, 모든 것이 연결되고 AI가 우리 삶에 깊숙이 들어온 지금 이 이야기는 더욱 서늘한 현실감을 갖게 됩니다. 어쩌면 지금 이 소설이 쓰였다면, 인공지능이 범죄의 도구가 되거나 혹은 사건을 해결하는 열쇠가 되었을지도 모른다는 상상을 해봅니다. 기술의 양면성은 결국 그것을 사용하는 인간의 불완전성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닐까요.
사실 이 책은 저에게 두 번째 만남이었습니다. 그래서였을까요, 중반쯤 읽었을 때 저는 결말을 어느 정도 예상하고 있다고 믿었습니다. 하지만 책장을 넘길수록 제 기억 속 결말과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이야기가 흘러가더군요. 제가 기억하던 범죄의 동기와 진범의 모습은 그곳에 없었습니다.
결국 저 자신이 '기억의 불완전성'을 통해 인간의 불완전함을 증명해 보인 셈이 되었습니다. 이 당혹스러운 경험은 어쩌면 소설이 말하고자 하는 또 다른 메시지였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우리가 얼마나 쉽게 믿고, 쉽게 단정하고, 또 쉽게 잊어버리는 존재인지에 대해서 말이죠.
찬호께이라는 이름값만으로도 이 책을 집어 들 이유는 충분했습니다. 숨 가쁘게 몰아치는 전개와 흡입력은 역시 명불허전이었죠. 하지만 솔직히 말해, 제 기준에서는 『13.67』이 남긴 거대한 산을 넘지는 못했다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2017년에는 신선했을 IT 기술을 활용한 범죄 추리라는 소재가 이제는 조금 평범하게 느껴지는 탓도 있겠지요. 무엇보다 제가 기억했던 결말과 달라서가 아니라, 새롭게 마주한 결말 자체가 뛰어난 전개에 비해 개연성이 부족하게 느껴졌습니다. 조금 더 단단하고 설득력 있는 마무리가 있었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책을 덮는 순간까지 머릿속을 맴돌았습니다.
그럼에도 『망내인』은 우리에게 유효한 질문을 던지는 소설입니다. 기술의 발전이 과연 우리를 더 나은 세상으로 이끌고 있는지, 그 안에서 우리는 서로에게 어떤 존재가 되어가고 있는지 말입니다. 한번쯤은 이 서늘한 질문에 정면으로 마주해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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