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위대한 탐험의 가장 사소한 고민들에 대하여
세상에는 참 특별한 작가들이 있습니다. 제게는 메리 로치가 바로 그런 작가입니다. 그녀는 과학을 이야기하지만, 그 안에는 늘 위트와 풍자가 가득합니다. 지극히 학술적인 주제를 전혀 학술적이지 않게, 심지어는 낄낄거리게 만드는 그녀의 글솜씨는 언제나 감탄을 자아내죠.
그녀의 책 『우주 다큐』를 추천받은 지는 꽤 오래되었습니다. 하지만 이미 절판된 책이라 구하기가 어려웠죠. 고가의 중고 책을 선뜻 구매하기엔 주머니 사정이 여의치 않았기에, 언젠가를 기약하며 마음 한편에 접어두었습니다. 그러다 마침내, 대학 도서관 찬스를 이용해 그토록 원하던 책을 손에 넣을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참 아이러니한 일이 벌어졌습니다. 이 글을 쓰려고 자료를 찾아보다가 깜짝 놀랄 소식을 접했기 때문입니다. 바로 그 책이 올해 6월, 『인간은 우주에서 어떻게 살아남는가』 라는 새로운 제목으로 재출간되었다는 사실을요. 저는 그동안 무엇을 하고 있었던 걸까요. 심지어 그녀의 또 다른 절판작 『인간재활용』 역시 『죽은 몸은 과학이 된다』 라는 제목으로 다시 세상에 나왔더군요. 두 권 모두 지적이고, 유쾌하며, 기발합니다. 이 글을 읽는 분들이라면 꼭 한번 만나보시길 바랍니다.
우리는 ‘우주 과학’을 떠올릴 때, 보통 화려하고 웅장한 이미지를 그립니다. TV 다큐멘터리 속 우주는 인간이 감히 상상할 수 없는 예술 작품처럼 보이죠. 하지만 메리 로치는 그 거대한 우주가 아닌, 그곳을 탐사하는 지극히 평범한 ‘인간’의 모습에 현미경을 들이밉니다.
영화나 드라마 속 비현실적인 장면과 달리 우리의 현실이 때로는 심심하고, 무료하며, 때로는 지저분한 것처럼, 우주를 탐험하는 인간의 삶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작가는 바로 그 지점을 파고들며 우리가 단 한 번도 상상해보지 못했던 우주 생활의 속살을 낱낱이 보여줍니다.
이 책이 던지는 질문들은 조금 발칙하고, 때로는 민망하기까지 합니다.
무중력 상태에서 인간의 뼈는 어떻게 될까?
우주에서도 인간의 성욕은 존재할까? 만약 그렇다면 섹스는 가능할까?
오랫동안 씻지 못한 우주인의 몸에서는 어떤 냄새가 날까?
무중력 공간에서 용변을 보는 일은 얼마나 끔찍한 경험일까?
우리가 아무리 친한 사이라도 공유하고 싶지 않은, 지극히 개인적이고 사소한 순간들이 있죠. 지구에서는 너무나 일상적이어서 특별할 것 없던 그 모든 행위가, 우주에서는 생존과 직결된 심각하고 특별한 문제가 됩니다.
책은 이처럼 예상치 못한 우스꽝스러운 현상들을 연속해서 보여주지만, 그 안에는 엄연한 과학적 원리가 담겨 있다는 사실이 이 책의 진짜 매력입니다. 가장 웃긴 질문 속에 가장 진지한 과학이 숨어있는 셈이죠.
혹시 과학책은 무겁고 어려울 것이라는 편견을 갖고 계셨나요? 그렇다면 이 책이 완벽한 해독제가 되어줄 겁니다. 책은 시종일관 유쾌하고 가벼워서 단숨에 읽히지만, 그 끝에 남는 지적 만족감은 결코 가볍지 않습니다. 재미는 기본이고요. 강력하게 추천합니다.
#인간은우주에서어떻게살아남는가 #메리로치 #책추천 #북리뷰 #과학책 #우주 #논픽션 #책스타그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