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와 페르시아』, 역사의 균형을 맞추다

우리가 몰랐던 700년 간의 경쟁, 숙명의 라이벌 이야기

by 심야서점

서양사를 이야기할 때 ‘로마’를 빼놓을 수 있을까요? 왕정에서 공화정, 그리고 제국으로 이어지며 서양 문명의 근간을 이룬 초강대국. 로마는 고대의 미국과도 같았습니다. 우리는 당연하게 로마를 역사의 중심으로, 적수 없는 최강자로 기억합니다.


하지만 그 막강했던 로마 제국이 무려 700년 동안이나 섣불리 넘보지 못했던, 때로는 굴욕적인 패배까지 안겨준 동방의 거대한 라이벌이 있었다면 어떨까요? 바로 파르티아-페르시아 제국입니다. 이 책, 『로마와 페르시아』는 우리가 익숙한 로마 중심의 역사 서술에서 한 걸음 비켜나, 세상을 양분했던 두 거인의 장대한 줄다리기를 생생하게 복원해냅니다.


� 역사 속의 거인, 왜 페르시아는 보이지 않았을까?


생각해 보면 이상한 일입니다. 700년. 한 왕조가 흥망성쇠를 겪고도 남을 그 긴 시간 동안 로마와 페르시아는 국경을 맞대고 싸우고, 때로는 화해하며 아슬아슬한 힘의 균형을 유지했습니다. 로마 공화정을 무너뜨린 삼두정치의 한 축이었던 크라수스가 동방 원정에서 비참한 최후를 맞이하게 한 것도 파르티아였죠.


그런데도 왜 우리의 기억 속 로마사에서 페르시아는 그저 ‘동방의 골칫거리’ 정도로만 희미하게 남아있을까요?


이 책은 그 이유를 두 제국의 ‘힘의 균형’ 그 자체에서 찾습니다. 어느 한쪽도 상대를 완전히 파괴할 만큼 압도하지 못했기에 전면전보다는 국경의 완충 지대에 있는 소국들의 패권을 둘러싼 대리전 양상이 주를 이뤘기 때문입니다. 완전한 승리도, 완전한 패배도 없었던 영원한 라이벌. 그랬기에 로마 역사가들의 기록 속에서 페르시아는 중심이 아닌 변방의 이야기로 남게 된 것이 아닐까요?


이 책의 가장 큰 미덕은 로마라는 하나의 태양만을 비추던 역사 서술에서 벗어나, 페르시아라는 또 다른 태양이 존재했음을 인정하고 두 강대국의 관계를 동등한 시선으로 조명한다는 점입니다. 제 기억 속에 이런 관점의 역사서는 처음이었습니다.

� 벽돌 책마저 즐겁게 만드는 이야기의 힘


이 책의 원제는 ‘독수리와 사자(The Eagle and The Lion)’입니다. 각각 로마와 페르시아를 상징하는 동물이죠. 제목처럼 책은 처음부터 끝까지 두 제국의 경쟁 관계라는 단 하나의 축으로 장대한 역사를 꿰뚫습니다.


솔직히 말해, ‘벽돌 책’이라 불릴 만큼 두꺼운 분량에 압도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걱정할 필요는 없습니다. 이 책의 저자 에이드리언 골즈워디는 이미 『로마 전쟁』, 『로마 멸망사』를 통해 국내 독자들에게도 익숙한 역사가입니다. 그의 가장 큰 장점은 마치 눈앞에서 전투가 벌어지는 듯한 생생한 묘사와 서사적인 필력입니다. 이번 책에서도 그의 장기는 유감없이 발휘되어, 복잡한 700년의 역사를 한 편의 대하드라마처럼 흥미진진하게 따라갈 수 있게 만듭니다.


✨ 마무리하며: 익숙한 역사에 던지는 새로운 질문


『로마와 페르시아』는 단순히 로마의 또 다른 전쟁사를 다루는 책이 아닙니다. 로마라는 거울을 통해 동방의 위대한 제국 페르시아를 비추고, 반대로 페르시아를 통해 우리가 알던 로마를 새롭게 보게 만드는 책입니다.


익숙한 로마 이야기에 싫증이 났거나, 서양 중심의 역사관에 질문을 던지고 싶었던 독자라면 이 두꺼운 책이 오히려 신선한 지적 충격을 선사할 겁니다. 700년간 이어진 인류 역사상 가장 길고 팽팽했던 라이벌의 이야기는, 지금의 국제 정세를 이해하는 데에도 흥미로운 통찰을 던져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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