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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장. 제품 아키텍처의 거울, 조직 구조 재설계

플랫폼 전략과 모듈화 전략의 성공을 결정짓는 조직 설계의 역학 관계

by 심야서점

16.1 기술의 문제를 넘어 조직의 결단으로


우리는 흔히 혁신적인 소프트웨어 모듈러 아키텍처를 설계도와 코드의 영역으로만 생각하곤 합니다. 하지만 현장에서 마주하는 가장 큰 벽은 기술적 난이도가 아니라, 그 아키텍처를 담아낼 '그릇'인 조직 구조의 경직성입니다. 아무리 유연하고 확장성 있는 설계를 내놓아도, 그것을 실행하는 조직이 과거의 수직적이고 파편화된 구조에 머물러 있다면 아키텍처는 결국 조직의 형상을 닮아 왜곡되고 맙니다. 이제 우리는 제품의 구조를 바꾸기 위해, 먼저 그 구조를 만들어내는 사람들의 관계와 조직의 틀을 들여다봐야 합니다.


16.2 아키텍처의 운명을 결정짓는 '콘웨이의 법칙'


플랫폼 전략과 모듈화 전략을 도입할 때 가장 먼저 마주하는 진리는 "시스템을 설계하는 조직은 그 조직의 소통 구조를 본뜬 설계를 만들게 된다"는 콘웨이의 법칙(Conway’s Law)입니다. 이는 단순한 가설이 아니라 소프트웨어 공학의 물리 법칙과도 같습니다.


제품 구조는 결국 조직 구조를 따르게 마련이며, 거꾸로 효과적인 제품 구조를 활용하기 위해서는 조직 역시 그에 맞춰 변화해야 합니다. 즉, 경쟁력 있는 제품군을 지속적으로 시장에 내놓을 수 있다는 것은, 해당 조직이 그것에 걸맞은 유연하고 유기적인 조직 구조를 이미 갖추고 있음을 의미합니다.


16.3 플랫폼의 독립성: 단기 최적화의 함정에서 벗어나기


플랫폼 전략을 수행하는 조직은 개별 제품과 플랫폼 간의 관계를 깊이 고려한 독자적인 구조를 가져야 합니다. 흔히 저지르는 결정적 실수는 플랫폼 개발 조직을 특정 모델 개발 팀이나 프로젝트 팀 하부에 배치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가전 기업에서 신규 세탁기 모델을 개발하는 팀 안에 소프트웨어 플랫폼 인력이 속해 있다고 가정해 봅시다. 이들은 전사적인 '공통 플랫폼'을 설계하기보다는, 당장 다음 달로 예정된 시제품 출시 일정을 맞추기 위해 플랫폼의 원칙을 깨고 특정 하드웨어에 종속된 코드를 짜라는 압박을 받게 됩니다. 결국 플랫폼이 갖춰야 할 본질적 가치인 '다세대 적용'이나 '다모델 확산'이라는 목적은 특정 모델의 최적화라는 단기적 목표에 밀려 희생되고 맙니다. 따라서 플랫폼 조직은 제품 개발 조직으로부터 독립적인 지위와 권한을 보장받고, 플랫폼만의 독자적인 로드맵을 결정할 수 있어야 합니다.


16.4 하드웨어 레거시와 소프트웨어 중심 아키텍처의 충돌


과거의 기구-하드웨어-소프트웨어 복합 시스템에서 소프트웨어는 하드웨어에 종속된 부수적인 부품에 불과했습니다. 그러나 오늘날 소프트웨어는 제품의 핵심 가치를 정의하며, 오히려 기구와 하드웨어가 소프트웨어의 기능을 보조하는 '소프트웨어 중심(Software-Defined)' 시대로 진입했습니다.


하지만 많은 제조 기업이 소프트웨어가 부품에 불과했던 시절의 조직 구조를 여전히 고수하고 있습니다. 특히 전통적인 제조 기반 기업은 하드웨어 중심으로 성장해온 성공의 레거시(Legacy)가 매우 강력하며, 주도권을 유지하기 위해 소프트웨어를 과거의 공급망 틀 안에 가두려 합니다. 반면 테슬라와 같은 신흥 강자들에게는 이러한 레거시가 없습니다. 그들에게 하드웨어는 소프트웨어의 비전을 구현하기 위한 유연한 도구일 뿐입니다. 여기서 발생하는 격차는 기술력의 차이를 넘어, 소프트웨어를 바라보는 관점과 이를 뒷받침하는 조직 구조의 차이에서 기인합니다.


16.5 조직 진단: 우리 조직은 모듈화 전략을 수용할 준비가 되었는가?


성공적인 모듈화 전략을 위해서는 현재 우리 조직이 가고자 하는 아키텍처를 뒷받침할 수 있는 상태인지 냉정하게 진단해 보아야 합니다. 다음의 다섯 가지 질문은 조직의 구조적 결함이 아키텍처의 혁신을 가로막고 있지는 않은지 확인하는 이정표가 될 것입니다.


첫째, 플랫폼 팀의 의사결정권 소프트웨어 플랫폼 팀이 특정 제품의 출시 일정에 구애받지 않고, 플랫폼 자체의 로드맵과 품질을 독립적으로 결정할 권한이 있습니까?

둘째, 힘의 균형 아키텍처 설계 단계에서 소프트웨어 팀이 하드웨어 팀과 동등한 수준의 목소리를 내고 있습니까?

셋째, 소통의 방식 팀 간의 협업이 잦은 회의나 구두 협의가 아닌, 명확하게 정의된 인터페이스(API)와 문서를 통해 이루어지고 있습니까?

넷째, 미래를 위한 자원 배분 향후 경쟁력을 높일 선행 기술을 연구하고 플랫폼을 고도화할 전담 인력이 확보되어 있습니까?

다섯째, 구성원의 인식 체계 전 조직원이 소프트웨어를 '제품 전략의 핵심 플랫폼'으로 인식하고 있습니까?


위 항목 중 과반수 이상에 '아니오'라고 답하게 된다면, 현재의 조직 구조가 가고자 하는 제품 아키텍처의 발목을 잡고 있을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16.6 역 콘웨이 전략: 아키텍처에 맞춘 조직의 재설계


경쟁사가 놀라운 제품을 출시했을 때, 단순히 결과물만을 벤치마킹하는 것은 피상적인 대응입니다.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그 제품군을 가능케 한 '운영 체계(Operating System)'와 이를 감당하는 '조직 구조'입니다. 이를 위해 역 콘웨이 전략(Inverse Conway Maneuver), 즉 우리가 도달하고자 하는 아키텍처의 형상에 맞춰 조직을 선제적으로 재설계하는 결단이 필요합니다.


플랫폼과 애플리케이션 조직의 분리: 전사 코어를 개발하는 '소프트웨어 플랫폼 조직'과 이를 제품에 구현하는 '애플리케이션 조직'을 분리하여 전문성을 보장하십시오.

전략적 페어링(Pairing): 기구 및 하드웨어 조직 역시 독립적인 플랫폼 조직을 구성하여 소프트웨어 플랫폼 조직과 짝을 이루어야 합니다.

선행 기술 개발 팀의 확보: 미래의 경쟁력을 연구하고 프로토타이핑하는 선행 조직이 플랫폼 팀 내에 반드시 존재해야 합니다.


16.7 마무리: 조직의 변화야말로 제품 경쟁력의 시작


결국 우리가 깨달아야 할 것은 조직 구조 자체가 곧 아키텍처의 설계도라는 사실입니다. 제품 아키텍처는 그것을 만드는 조직의 소통 구조를 그대로 반영할 수밖에 없습니다. 따라서 혁신적인 모듈러 아키텍처를 꿈꾼다면, 기술적인 도면을 수정하기에 앞서 조직 구조부터 그 이상적인 형상에 맞게 개편하려는 결단이 선행되어야 합니다.


특히 플랫폼의 독립성을 확보하는 것은 선택이 아닌 필수입니다. 플랫폼 조직이 단기 양산 프로젝트 팀에 종속되어 있는 한, 우리가 지향하는 장기적인 가치와 재사용성은 늘 현실적인 타협안에 희생될 것입니다. 우리가 부러워하는 경쟁사의 성공 뒤에는 단순히 뛰어난 제품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 제품군을 지탱하는 견고한 '운영 체계'와, 그 체계가 막힘없이 돌아가도록 설계된 '조직의 정렬(Alignment)'이 숨어 있습니다.


결국 아키텍처의 혁신은 외부에서 영입한 슈퍼 스타 한두 명의 힘으로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조직 구조를 가고자 하는 아키텍처의 모습에 정렬시키고, 소프트웨어를 제품 전략의 중심에 두는 근본적인 변화가 일어날 때 비로소 진정한 모듈화 전략은 시작됩니다. 제품은 피상적인 결과물일 뿐이며, 그 결과물을 결정짓는 뿌리는 결국 우리가 설계한 조직의 구조에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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