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이트한 일정 끝에 찾아온 뜻밖의 힐링
지난주, 1박 2일의 짧은 일정으로 일본 도쿄 출장을 다녀왔습니다. 하네다 공항에 내려 열차로 다시 1시간 반. 가나가와현 치가사키시에 위치한 한 반도체 설비 회사가 이번 여정의 목적지였습니다.
작년 말부터 공들여 준비한 모듈러 디자인(Modular Design) 교육이었지만, 한 달 내내 교재를 다듬고 제미나이(Gemini)의 도움을 받아 일본어 번역을 마칠 때까지도 마음 한구석엔 긴장감이 서려 있었습니다. '과연 그들이 마음을 열어줄까?' 하는 의구심 때문이었습니다.
교육 전, 한국인 스태프로부터 조심스러운 주의를 들었습니다. 제조 강국이라는 자부심이 강한 일본 엔지니어들이 한국인 컨설턴트에게 무언가를 배운다는 상황 자체가, 그들에게는 자존심 상하고 받아들이기 어려운 일일 수도 있다는 제언이었지요.
사실 지난 몇 년간 코로나19로 인해 온라인 교육 위주로 진행하며 회의감에 젖어 있기도 했습니다. 화면 너머 교육생들이 집중하고 있는지조차 알 수 없는 공허함, 그리고 때때로 돌아오는 냉담한 피드백. "더 이상 힘 빠지는 온라인 교육은 하지 않겠다"고 다짐할 정도로 제 안의 에너지는 고갈되어 있었습니다.
하지만 강의실 문을 연 순간, 예상은 기분 좋게 빗나갔습니다. 온라인 접속자를 포함해 40여 명의 교육생 중 조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습니다.
그들의 '본심'이 무엇이었든, 현장에서 느껴지는 열기는 뜨거웠습니다. 사각거리는 필기 소리, 놓치지 않겠다는 듯 나를 쫓는 눈빛들. 그것은 자존심보다 앞선 '변화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절박함이었고, 주어진 시간을 온전히 내 것으로 만들겠다는 엔지니어의 열의였습니다.
그 절박함에 자극받아 저 역시 신이 났습니다. 통역사분께는 죄송했지만, 쉬는 시간을 아껴가며 열변을 토했습니다. 정해진 종료 시간을 넘겨서까지 이어진 강의는 타이트한 일정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저에게는 오히려 깊은 '힐링'의 시간이 되었습니다.
공식 일정은 둘째 날 오전 4시간으로 끝이었습니다. 하지만 부족한 질문 시간을 채우기 위해 오후에 자발적인 질의응답 세션을 마련했습니다. '과연 몇 명이나 올까' 싶었던 우려와 달리, 핵심 인원들이 모여들어 4시간 동안 열띤 토론이 이어졌습니다.
컨설턴트가 가장 큰 힘을 얻는 순간은 언제일까요? 그것은 바로 고객이 "달라지겠다"는 의지를 절박하게 드러낼 때입니다. 그럴 때 우리는 하나라도 더 알려주고 싶고, 내가 가진 모든 것을 쏟아붓고 싶어지는 '가르치는 자'의 본능을 깨닫게 됩니다.
보안상 고객사 내부의 풍경을 담을 수는 없었지만, 숙소 창밖으로 보이는 후지산의 장엄한 풍경이 저를 배웅해 주었습니다.
일본 엔지니어들의 뜨거운 눈빛을 뒤로하며 다시금 다짐해 봅니다. 고객의 수준이 이토록 올라와 있을 때, 그들에게 한 발 앞선 통찰을 전하기 위해 나는 얼마나 더 치열하게 공부해야 하는가. 뒤처지지 않겠다는, 아니 더 나은 가치를 증명하겠다는 컨설턴트로서의 자부심이 후지산의 눈 덮인 정상처럼 단단해지는 밤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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