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계 BOM은 모듈로, 판매 BOM은 조합으로
전통적인 제조 현장에서 완제품이란 기업이 공장에서 모든 조립을 마친 상태를 의미했습니다. 하지만 최근 'Modularity in Use(사용 시점의 모듈화)'가 적용된 제품들은 그 정의를 뒤집습니다.
대표적인 예가 가구입니다. 소비자는 온라인이나 오프라인 매장에서 자신이 원하는 모듈을 직접 고르고, 가상의 시뮬레이터로 완성된 모습을 확인한 뒤 구매를 확정합니다. 제품이 비로소 '완성'되는 시점은 공장이 아니라, 고객의 거실이나 방 안에서 조립이 끝나는 그 순간입니다.
이런 '조합형 제품'을 만드는 기업의 내부는 일반적인 제조 기업과는 전혀 다른 업무 절차를 가집니다. 가장 큰 차이는 바로 기준정보 관리에 있습니다.
기업 입장에서 이제 '제품'이라는 단독 개체는 큰 의미가 없습니다. 대신 제품에 들어가는 각각의 '모듈'이 곧 하나의 제품이 됩니다. 즉, 기업은 모듈 하나하나를 완제품처럼 취급하며 그에 따른 BOM(Bill of Material)을 독립적으로 관리해야 합니다.
설계와 개발 단계에서도 모든 작업은 모듈 단위로 이루어집니다. 디자인 컨셉은 전체를 아우를지 몰라도, 실질적인 개발은 '조합의 유연성'을 확보하기 위해 철저히 파편화된 모듈 단위로 진행되는 것입니다.
이 지점에서 독특한 데이터 구조가 탄생합니다.
설계 BOM(E-BOM): 철저히 모듈 단위로 존재합니다. 개발자는 모듈 자체의 사양과 성능에 집중합니다.
판매/설치 BOM: 고객이 선택한 모듈의 조합 정보, 그리고 그들을 잇는 체결류 등의 정보가 담깁니다.
일반적인 B2C 제품이 설계 단계와 판매 단계의 BOM이 거의 일치하는 것과 달리, 모듈 조합형 제품은 '기획/설계는 모듈 단위', '판매/서비스는 조합 단위'라는 이원화된 관리 체계를 가져야만 합니다.
이 모든 과정을 가능하게 만드는 숨은 주역은 바로 '인터페이스 호환성 정보'입니다.
만약 이 정보가 체계적으로 관리되지 않는다면, 야심 차게 새로 개발한 모듈이 기존 모듈과 맞지 않아 조립이 불가능한 참사가 벌어집니다. 또한, 고객이 직접 조합을 결정할 수 있도록 돕는 '컨피규레이터(Configurator)'와 시각적으로 검증하는 '시뮬레이터'가 시스템적으로 뒷받침되어야 합니다. 여기에 데이터 관점에서 '추천 조합 세트'를 미리 준비해 둔다면, 고객의 선택 편의성을 극대화할 수 있습니다.
결국 'Modularity in Use'를 실현하는 힘은 눈에 보이는 제품의 디자인이 아니라, 눈에 보이지 않는 데이터의 구조에서 나옵니다.
모듈을 제품처럼 다루고, 인터페이스를 철저히 관리하며, 시스템으로 조합을 지원하는 것. 이 유연한 체계를 갖춘 기업만이 고객에게 '자신만의 가치'를 선물할 수 있습니다. 기술과 데이터가 만나 고객의 손끝에서 제품이 완성되는 것, 이것이 현대 모듈러 디자인이 추구하는 진정한 가치가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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