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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타치는 권작가 Apr 10. 2020

선거의 추억, 아찔했던 고등학교 반장선거

딱 그 한 표 덕분에

고등학교 2학년 때 반장선거에 나간 적이 있었다. 2학년 새학기 초, 그 당시 담임 선생님이 다른 반 선생님들에게 우리반 아이들 명부를 보여주며 반장을 할 만한 아이가 있는지 추천을 받았는데 그때 1학년 때 나의 담임선생님이 나를 추천했고 그렇게해서 얼떨결에 나가게 된 선거였다.


후보는 포함 총 3명이었다. 각자 연설을 한 후 투표가 시작되었고 곧이어 개표를 했다.

두구두구두구두구~~~~

드디어 개표결과는 발표되었다. 그런데, 나를 포함한 모든 반 아이들은 개표결과를 보고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10:10:10으로 딱 동점이 나왔기 때문이다. 반 아이들은 총 30명이었고 후보생들이 정확하게 1/3씩 표를 가져갔던 것이다. 전부다 "우와~" 하며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이었다.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을까 싶었다. 결국 재투표를 하였고 재투표에서 간소한 차이로 내가 반장으로 선출될 수 있었다.


그런데 가 반장으로 뽑힐 수 있었던 것은 사실  짝지 덕분이었다. 투표할 때 '나는 누구를 적어야 하나.' 하고 고민을 하다가 짝지였던 친구K에게 물었다.


"야, 나는 누굴 찍어야 되노?"

 

짝지가 말했다.
"당연히 니 이름 적어야지."


머쓱해하며 내가 말했다.

"그래도 내가 내 이름 적는 건 좀 그렇지 않나?"


내 말에 친구는 이렇게 대답했다.

"아이다. 니가 니 이름 적어야지 뽑힌다. 무조건 니 이름 적어야 된다."


처음엔 내가 나에게 표를 주기가 민망해서 다른 후보 이름을 적으려 하다가 짝지의 말을 듣고 마음을 바꿨고 내가 내 이름을 적었던 그 투표에서 10:10:10으로 딱 동점이 났던 것이었다. 만약 를 적지 않았다면 아마 낙선하고 말았을 것이. 지금 생각해도 그 한 표가 정말 아찔하. 그때 그 짝지가 참 고마웠다.



남달랐던 나의 연설

고등학교 2학년에 이어 3학년 때도 반장 선거에 출마하게 되었다. 이번에도 담임선생님의 권유 때문이었다. 3학년 담임선생님은 내가 2학년 때 우리반 담임선생님에게 나를 반장으로 추천해줬던 그때 그 1학년 담임선생님이었다. 나를 잘 알고 있던 선생님은 이번에도 나에게 반장을 권유했고 결국 한 번 더 반장선거에 나가게 된 것이었다. 한 번 권력의 맛을 보니 놓고 싶지 않아서였는지 확실히 2학년 때보다는 반장에 대한 의욕이 더 많았던 것 같다.


후보는 나 포함 4명이었다. 후보를 보니 공부를 잘하는 친구 L과 나의 대결이라 생각했지만 막상 뚜껑을 열고 보니 우리 둘이 아닌 전혀 다른 친구인 K가 반장으로 뽑혔다. 의아했. 사실 K는 반에서 놀림을 많이 받던 되게 조용한 친구였기 때문이다. 나중에 알고 보니 반 친구 중 누군가가 K를 골려주려고 일부러 K를 반장으로 추천했고 반 아이들을 동원해서 K에게 몰표를 줬던 것이다. K 스스로도 난감해했지만 당황한 건 담임선생님도 마찬가지였다. K의 성격을 잘 알고 있었던 선생님은 겉으로는 웃고 있었지만 앞으로 우리반이 어떻게 될려나 하는 걱정스러운 마음을 감추지는 못했다. 나는 나대로 반장이 되지 못해 아쉬웠다. 단념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그러다 며칠 뒤 뜻밖의 일이 생겼다. 반장 K가 도저히 반장을 못하겠다며 선생님을 찾아간 것이었다. 선생님은 이때다 싶었는지 K에 대한 어떤 설득도 없이 반 아이들에게 재투표를 제안했고 결국 K를 제외한 나머지 3명이서 재투표가 진행되었다.


투표에 앞서 연설을 했다. 후보 중에서 공부를 잘하는 친구L을 이기려면 뭔가 남다른 연설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어떤 말을 하면 좋을지 고민하다가 연설에서 나는 이렇게 말했다.


"제가 만약 반장이 된다면, 청소도 열심히 하고 선생님 말씀도 잘 듣고 공부도 열심히 하고, 어쩌구 저쩌구~~~"


으레하는 이런 진부한 멘트로 연설을 시작했고 듣고 있던 친구들도 뻔한 말이구나 하는 표정으로 나의 연설을 듣고 있었다. 하지만 한국말은 끝까지 들어봐야 아는 법. 마지막에 나는 이렇게 말했다.


"청소도 열심히 하고 선생님 말씀도 잘 듣고 공부도 열심히 하고 모든 일에서 솔선수범하는,

그런 반장이 되지는 않을 겁니다."


조용하게 듣고 있던 아이들은 나의 마지막 말에 갑자기 웃음을 터뜨렸다. 전혀 예상하지 못한 말이 나왔으니 웃을 수밖에. 담임선생님도 덩달아 웃음이 터지고 말았다.


사실 이렇게 말한 데는 이유가 있었다. 식상한 말이 아닌 좀 더 진심이 담긴 말이 필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열심히 하겠다, 잘하겠다'와 같은 말은 좋은 말은 맞지만 평범하다. 감동이 없다. 물론 솔선수범하는 착실한 반장이 되지 않겠다는 나의 연설이 무리수였긴 하지만 나름 승부를 걸어본 대사였다. 킥킥대는 웃음이 가라앉은 후 나는 마지막을 이렇게 마무리 했다.


"반장이란 공부를 잘하는 사람이 아닌 반을 이끌어나가는 사람입니다. 다른 건 몰라도 1년 뒤 반장 하나는 잘 뽑았다는 말 들을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이상입니다."


연설이 친구들의 마음을 흔들었는지 나는 성적이 우수한 친구L 제치고 당당히 반장으로 선출될 수 있었다. 남들과 비슷한, 평범한 연설을 했다면 과연 내가 반장이 될 수 있었을까 하는 생각이 지금도 종종 들곤 한다.

 



4월 15일은 제21대 국회의원 선거날이다. 선거일이 다가오니 문득 고등학교 반장 선거 때가 생각이나 지난 추억을 이렇게 글로 담아봤다.


4월 15일이 본투표이고 4월 10일과 11일인 오늘과 내일은 사전투표일이다. 바쁘시겠지만 많은 분들이 투표에 참가하길 바란다.


윈스터 처칠은 말했다.

"모든 나라는 그 나라 국민 수준에 맞는
지도자를 갖는다."


현재 우리 나라 국민의 수준은 어디까지 왔을까. 과연 이번엔 어떤 지도자를 만날 것인가. 그것은 시민인 우리가 선택할 수 있다. 시민의 선택에 따라 미래는 달라질 수 있다. '나 하나쯤이야.'가 아닌 '나 하나라도.'라는 생각을 가지고 투표를 할 때 세상은 바뀐다고 생각한다.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고 있는 지금, 우리는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아침밥 먹고 서둘러 투표하러 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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