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기타치는 권작가 Apr 14. 2020

층간소음, 직접 겪어보니 보통 일이 아니구나

코로나 때문에 사람들이 많은 부분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다. 그중 하나가 층간소음이다. 밖에 나가지 못하고 집에만 있다보니 층간소음을 쉽게 겪는다. 위층에 아이들이 사는 집은 특히 심하다. 내가 자주 듣는 라디오에서도 요즘 코로나로 인해 겪고 있는 층간소음에 대한 사연이 많이 소개되곤 한다. 그 이야기들이 남일 같지가 않다. 나도 그런 이야기의 주인공 중 한 명이기 때문이다.


얼마 전부터 위층에서 쿵쿵거리는 소리가 부쩍 늘었다. 걸을 때 뒤꿈치로 발을 찍으며 걷는지 걸을 때마다 내가 앉아있는 의자까지 같이 울린다. 내가 사는 집이 30년이 넘은 아파트라 방음이 심하게 안 된다. 그래서 걸을 때 쿵쿵거리는 소리는 물론이고 세탁기, 화장실, 싱크대에서 물 내려가는 소리까지 들린다. 집에 일부러 티브이를 들여놓지 않아 항상 글을 쓰며 조용하게 있다보니 위층에서 만들어내는 여러 소리가 더 잘 들린다.


이 집에 2년 가까이 살고 있지만 이전까지만 해도 소음을 느끼지 못했다. 퇴근하고 나면 항상 카페에서 시간을 보내다가 저녁 늦게 집에 들어오다보니 집에 있는 시간이 별로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은 코로나19 때문에 평일, 주말 할 것 없이 집에만 있어서 위층에서 내는 소리를 반강제로 들어야 했던 것이다.


쿵쿵거리며 걷는 소음도 거슬렸지만 의하했던 건 "쾅!" 하는 소리였다. 매일 밤마다 "쾅!" 하는 소리가 났다. 마치 바닥에 아령을 집어던지는 그런 소리였다. 시끄러운 건 둘째치고 궁금했다. 도대체 뭘 하길래 저런 소리가 날까. 알고 싶어졌다. 한번 확인해보기로 했다. 문을 열고 나가 위층으로 올라갔다. 문 앞에 귀를 바짝 갖다대고 서있었다. 사람이 갑자기 튀어나올 걸 대비해 언제든 도망갈 수 있는 자세를 취한 상태로 "쾅!" 하는 소리가 나기만을 기다렸다. 웅성웅성 하는 소리가 들리더니 갑자기 "쾅!" 하고 소리가 났다. 처음엔 뭔가 했는데 두 번쯤 듣고 보니 그 소리의 원인을 알 수 있었다. 바로 방 문이었다. 아파트가 오래돼서 방 문이 잘 안 닫혀 문을 위로 살짝 들어서 닫아야 잘 닫히는데 위층 사람은 방 문을 닫을 때 그냥 힘으로 힘껏 닫았던 것이다. 문이 세게 닫힐 때 나는 그 소리가 우리집에서 아령 떨어지는 소리로 들렸던 것이다. 원인을 알고 나니 궁금증은 풀렸지만 소음에 대한 스트레스는 사라지지 않았다.


나는 어릴 때부터 집에서는 아래층 사람에게 피해가 가지 않도록 조용히 해야한다고 어머니에게 교육받으며 자랐다. 그 덕분에 집에서는 언제나 사뿐사뿐 걷는다. 그렇게 배웠고 또 습관이 되어서 그런지 솔직히 집에서 쿵쿵 거리며 뒤꿈치를 찍으면서 걷는 사람은 이해가 잘 안 된다. 사람은 다 다를 수 있기 때문에 다양성을 인정하려 평소에 노력을 많이 하지만 집에서 왜 저렇게 뒤꿈치를 찍으며 걷는지는 의아할 때가 많다. 그래서 위층의 소음에 더 민감했다.


올라가서 얘기를 할까도 생각했지만 섣불리 그럴 수 없었던 이유가 있었다. 위층 사람이 같은 직장에 근무하는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같은 부서에서 일하는 사람이 아니라 얼굴 볼 일은 거의 없어 말을 못할 것도 없었지만 그래도 아는 사람에게 말을 꺼내기가 쉽지는 않았다. 그렇게 몇 날 며칠을 참았지만 더 이상은 안 되겠다 싶어 결국 말을 하기로 했다. 비슷한 나이의 젊은 사람이라 전혀 이해를 못할 것 같지는 않았다. 직장에서 마주칠 때 자연스럽게 말하려 했는데 만날 일이 없어 문자를 보냈다. 층간소음 때문에 힘들다는 이야기를 "ㅠㅠ", "^^" 등과 같은 이모티콘을 활용해서 최대한 공손한 말투로 썼다. 혹시나 나보고 예민한 거 아니냐고 할까 봐 한두 달 참다가 이제서야 말씀드린다는 말도 덧붙였다. 뭐라고 답장이 올지 조금 걱정이 되었다. 내 걱정과 달리 위층 사람은 정말 죄송하다며 정중하게 사과를 했다. 앞으로 조심할 테니 혹시 또 시끄러우면 고민말고 연락달라고 했다. 문자는 그렇게 마무리되었다. 연락을 하기까지 몇 번이나 고민을 했지만 문자를 보내고 보니 말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며 속이 후련했다.


위층에서 조심한다고 했으니 이제는 층간소음을 더 이상 겪지 않을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그것은 오산이었다. 문을 쾅 닫는 소리는 줄었지만 발로 쿵쿵 거리며 걷는 소리는 여전했다. 문자를 보내기 전보다 아주 조금은 나아진 것 같기도 했지만 쿵쿵거리는 그 정도가 살살 걸어야겠다고 생각하는 사람의 걸음은 아니었다. 그래도 며칠은 더 지켜봤다. 걷는 습관을 단번에 바꿀 수 없으니 조금 지나면 나아지리라 생각했다.


층간소음에 주의해달라고 문자를 보낸 지 2주가 다 되어가는데 여전히 쿵쿵 울린다. 그 사이에 문자를 한 번 더 보낼까 몇 번이고 고민했다. 카톡을 쓰고 지우기를 여러 번 반복하다가 지금은 글만 써놓고 보내지 않은 상태이다.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중이다.



층간소음이 남의 일인 줄로만 알았다

여태껏 한 번도 층간소음을 겪어본 적이 없었다. 줄곧 아파트에서 살아왔지만 위층에 사는 사람이 조심을 해서 그런지 아니면 집이 방음이 잘 됐던 덕분인지 어쨌든 층간소음은 남의 일이라 생각할 정도로 겪지 않고 살아왔다. 때문에 티브이, 인터넷 등등 각종 매체에서 층간소음에 대한 뉴스를 볼 때 크게 공감하지 못했다. 층간소음으로 인해 다투다가 살인을 저지르는 뉴스를 볼 때도 '저런 사람이 다 있나.' 하고 가볍게 생각하고 넘겼다. 하지만 막상 내가 직접 겪고 보니 보통 일이 아니라고 느꼈다. 어떠한 경우에도 살인은 정당화될 수 없지만 오죽했으면 그랬을까 하는 생각이 들며 그 스트레스만큼은 이해할 수 있었다. 나는 그래도 위층 사람이 잘 받아줘서망정이지 적반하장격으로 나오는 배려없는 사람을 만났다면 진짜 어쩔 뻔 했나 싶다.


물론 층간소음이 100% 위층만의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얼마 전 층간소음에 대한 사연을 아침 라디오에서 들었는데 아래층 사람의 사연뿐만 아니라 위층 사람이 겪는 고충에 대한 사연도 있었다. 내가 귀를 기울였던 건 후자의 사연이었다. 위층에 사는 사람이 말하기를, 사소한 소리에도 수시로 찾아와 조용히 해달라는 예민한 아래층 사람 때문에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니라고 했다. 아이를 조용히 시키기 위해 최대한 움직이지 않도록 자제시켰는데 하루는 아이가 화장실 가는 것까지 참다가 방광염에 걸렸다고 한다. 이런 얘기를 듣고 보니, 층간소음 갈등의 원인제공자는 주로 위층 사람인 경우가 많은 건 맞지만 그렇다고 무조건 위층 사람만의 잘못이라고는 할 수 없을 것 같았다.


참 어렵다. 위층의 소음을 측정해서 허용가능 소음구간을 설정할수도 없고 아래층 사람의 예민함을 수치로 측정할수도 없으니 말이다. 뚜렷한 해결책은 떠오르지 않지만 우선 제일 중요한 것은 배려가 아닐까 싶다. 층간소음 좀 자제해달라고 무작정 찾아가 화를 내면 그것을 좋게 받아들일 사람은 없다. 불편한 게 있어도 공손하게 얘기를 해야 받아들이는 사람 입장에서도 좋게 받아들이고 앞으로 더 조심을 하지 않을까 싶다. 그렇게 언어의 온도를 조금 높일 필요가 있다.


마지막으로 층간 소음을 일으키는 사람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 아이들이 집에서 좀 뛸 수도 있지 뭘 그렇게 까다롭게 구냐는 말이나 시끄러우면 주택에서 살지 아파트에서 왜 사냐고 하는 그런 식의 터무니 없는 말은 제발 자제했으면 좋겠다. 그런 말도 안 되는 소리로 자신을 합리화하는 사람들 보면 고구마를 먹다가 목이 막힌 듯 많이 답답하다. 층간소음을 겪고 있는 한 지인은 얼마 전 조용히 해달라고 위층에 찾아갔더니 아이 엄마가 하는 말이, 아이들이 킥보드를 좋아하는데 코로나 때문에 밖을 못 나가다보니 집에서 타는 거라고 말했다고 한다. 그 말을 들은 지인은 상당히 황당했다고 하는데 그 말을 듣는 나도 어이가 없었다. 집에만 갇혀있는 아이들을 보고 있는 부모의 마음이 어떨지 짐작은 되지만 아무리 그래도 그런 식으로 말하면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각자 입장이 다르고 저마다 스트레스가 있겠지만 조금만 서로를 배려해줬으면 하는 바람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선거의 추억, 아찔했던 고등학교 반장선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