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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타치는 권작가 Mar 09. 2021

목적지에 빨리 도착하는 게 잘하는 건 줄 알았다

목적지에 도달하는 여정이 가능한 한 긴 여행이 되기를

친한 형인 S와 함께 등산을 자주 다니던 때였다. 그날도 S와 함께 산 정상에서 먹을 간식거리를 가방에 잔뜩 담은 후 등산길에 올랐다. 땀을 뻘뻘 흘리며 겨우 산 정상에 도착했다. 넓은 들판에 갈대밭이 펼쳐진 이색적인 정상이었다. 시원한 산바람을 만끽하며 쉬다가 적당한 자리를 잡아 준비해온 간식을 꺼내 먹기 시작했다. 산에서 먹는 음식은 언제나 그랬듯 꿀맛이었다.


한참을 먹고 있는데 전방 100m 앞에 있는 갈대밭에서 경치를 구경하고 있는 사람들이 보였다. 남자 2명과 여자 1명이 있었다. 20대쯤 되어보였다. 옷차림이 이상했다. 여자는 타이트한 청바지와 높은 하이힐, 남자는 검은 바지에 롱코트 차림이었다. 저 옷을 입고 정상까지 올라왔다고 하기엔 납득이 되지 않는 복장이었다.


의문은 금세 풀렸다. 근처에 검은색 승용차가 하나 있었다. 알고 보니 차를 타고 정상까지 올라왔던 것이다. 휴대폰으로 검색을 해보니 차를 타고 정상까지 올라갈 수 있는 도로가 있었다. 여유롭게 산 아래 풍경을 감상하고 있는 세 사람을 보며 같이 있던 형 S가 먼저 말을 꺼냈다.


"와 진짜 치사하다. 차 타고 온 거 봐라."


내가 할 말을 형이 먼저 꺼냈다. 공감하듯 내가 대답했다.


"그러니깐요. 우리는 고생해서 올라왔는데 저 사람들은 편하게 차타고 올라오고, 저게 뭡니까"


치사하다며 큰소리쳤지만 울분이 섞인 부정의 말은 아니었다. 몸은 편할지언정 고진감래의 참맛을 느끼지 못할 그들에 대한 안타까움이 담겨있는 말이었다.


"저렇게 편하게 올라오면 뭐하노. 그래봤자 쟤들은 고생해서 정상에 오르는 이 맛을 모를 거다."


"맞아요. 땀 뻘뻘 흘리며 산을 올라봐야 정상에 도착했을 때 그 기분을 알지요."


안타까움도 잠시, 충분히 풍광을 즐긴 후 차를 타고 내려 가는 세 사람을 보며 든 생각이 있었다.


어쩌면 우리 모두가 과정은 생략한 채 결과만을 바라보며 살고 있는 건 아닐까.




우리 사회는 말한다. 결과보다 과정이 중요하다고. 하지만 그 말이 과연 진심인지 의심스러울 때가 많다. 과정보다 결과를 더 중요시 하는 경우를 자주 목격하기 때문이다.


티브이에 나오는 각종 사건사고만 봐도 그렇다. 결과적으로 성적만 잘 받으면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시험지를 유출하는 사건이 발생한다. 기한 내 건물을 완공하기만 하면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값싼 건축자재를 쓰는 등 안전을 등한시 하는 행태가 일어난다. 과정이야 어떻든 무조건 돈만 많이 벌면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온갖 부정과 비리가 난무한다. 자연이야 어떻든 간에 결과적으로 사람이 편리하면 된다는 생각으로 무분별하게 개발을 하기 때문에 자연이 파괴된다. 결과만을 중요시하다가 탈이 나는 경우는 우리 일상 곳곳에도 널려있다.


물론 결과는 중요하다. 축구경기에서 아무리 드리블을 잘하고 패스를 잘한다고 하더라도 골을 넣지 않으면 의미가 없다. 죽을 정도로 연습하고 또 연습했다고 아무리 강조해도 올림픽에서 메달을 따지 않으면 사람들은 선수들이 흘린 땀의 가치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다. 때문에 나는 사실 과정보다는 결과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문제는, 과정 자체에 의미가 있는 일을 할 때에도 결과만을 우선시하는 경우이다.


나도 줄곧 과정보다 결과를 더 중요하게 생각하며 살아왔다. 산 정상에 차를 타고 올라와서 경치만 잠깐 즐기다 내려간 사람들처럼 나 역시 결과만 맛보면 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공부할 때 깊이 이해하려 하기보다는 정답을 찾기에 바빴다. 좋아하는 사람이 있을 때도 여유를 가지고 천천히 다가가지 못하고 성급하게 상대방의 마음을 얻어내려 했다. 책을 읽을 땐 사유하기보다는 권수를 채우려 하기에 급급했다.


결과에만 매몰되어 있었던 나는 위태로웠다. 결과만을 생각하며 시도한 도전은 성공과 실패라는 두 가지 길밖에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실패했을 때 좌절의 고통이 컸다. 성공해도 마냥 기쁘지만은 않았다. 결과만큼 과정을 중요하게 생각할 때는 달랐다. 두 갈래 길이 아닌 여러 방향의 길이 만날 수 있었다. 과정 속에서 배우고 깨달았기 때문이다. 생각한 것과 다른 결과가 나오더라도 과정 속에서 의미를 발견했을 때 모든 도전은 그 나름의 가치를 지닐 수 있었다.




류시화 저자의 책 "새는 날아가면서 뒤돌아보지 않는다"에는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나온다.

나는 목표 지점이 가능한 한 가까이 있기를 바랐었다. 우회로가 아닌 직선길로 가기를 원했다. 얼른 목적지에 도착해야만 진정한 삶을 살 수 있을 것이라고 믿었다. 목적지에 이르는 과정이 곧 나의 삶이라는 걸 깨닫지 못했다. 그래서 도중의 항구들은 즐겁지 않았고 목적지에만 매달렸다. 항구들이 숨기고 있는 신비의 도시들을 그냥 지나갔다. 태양이 초대하는 많은 여름날 아침을 무표정하게 맞이했다.

삶의 묘미는 과정에 있다는 것을 나는 여행을 통해 배웠다. 내가 정한 목적지들은 사실 그곳에 이르는 여정의 경험을 위한 설정에 불과했다. 내 여행기는 목적지로 가는 도중에 겪은 일들과 이야기들로 채워졌다. 모험과 도전을 피해 고속열차나 비행기를 타고 목적지에 도착하는 것은 여정을 생략한 것이나 다름없다.

기도해야 한다. 목적지에 도달하는 우리의 여정이 가능한 한 긴 여행이 되기를. 신이 짜놓은 근사한 일정을 우리가 망치지 않기를. 그 여정에서 더 많은 모험과 시련과 근사한 일들을 겪게 되기를. 그래서 모퉁이를 돌 때마다 온갖 사건이 펼쳐져 이야깃거리가 많아지기를.


이 이야기를 읽으며 생각했다. 목적지에 도달하기 위한 나의 여정도 가능한 한 긴 여행이 되기를. 그리고 다짐했다. 결과보다 과정 속에서 삶의 의미와 가치를 찾아보겠노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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