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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타치는 권작가 Mar 18. 2021

"선배, 오늘 외근은 제 차 타고 나가시죠"

어떤 상황에서도 내가 주인이 되는 방법

외근을 나갈 때가 종종 있다. 혼자 나갈 때도 있지만 사무실 내 다른 선배와 같이 나갈 때가 더 많다. 다른 선배와 같이 나갈 때는 차를 서로 번갈아타고 나가지만 선배 P는 달랐다. 나와 외근을 같이 나갈 때마다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태현 씨 차 타고 가도 돼요?"


처음 한두 번은 흔쾌히 알겠다고 했다. 하지만 외근 때마다 자기 차를 두고 내 차를 계속 타고 가자고 말하는 선배가 조금 얄미웠다. 외근 때 뿐만이 아니다. 사무실 직원들 다같이 점심 식사를 위해 차 타고 시내로 나갈 때도 선배 P는 여러 사람들 중 나를 콕 집어 내 차를 타고 가자고 말하기도 했다. 아무리 내가 막내라지만 매번 내 차를 타고 가자고 말하는 것이 나는 탐탁지 않았다.


그렇다고 안 된다고 할 수는 없었다. 거절할 이유가 없었기 때문이다. 최대한 불편한 기색을 숨기며 "예, 제 차 타고 가요." 하고 밝게 대답하는 것, 그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었다.


같은 상황이 반복될수록 스트레스가 쌓였다. 참는 것만으로는 부족했다. 스트레스를 해소할 수 있는 근본적인 방법이 필요했다. 어떻게 하면 좋을지 고민하기 시작했다. 해결책이 떠올랐다. 멘토의 한 강연에서 나와 비슷한 고민을 상담했던 사람의 이야기가 생각났다. 나한테도 그대로 적용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래, 이렇게 한번 해보자.'


며칠 뒤 선배 P와 같이 외근을 나갈 일이 있었다. 이번에도 역시 선배 P가 내 차를 타고 가자고 말할 게 분명했다. 예상대로였다. 선배 P는 뭔가 말을 꺼내려는 듯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선배가 내게 말을 하려고 입을 열기 전에 내가 먼저 말했다.


"제 차 타고 가시죠.^^"


선배 P는 살짝 놀란 듯이 나를 보더니 이내 웃으며 대답했다.


"고마워요."


신기했다. 매번 내 차를 타고 나갈 때마다 귀찮고 짜증났는데 내가 먼저 자발적으로 내 차를 타고 가자고 말을 하니 오히려 기분이 좋았다. 이유가 무엇이었을까? 바로 내가 그 상황에서 주인이 되었기 때문이다.


수처작주라는 말이 있다. 어느 곳이든 가는 곳마다 주인이 되어라는 뜻이다. 주인이 된다는 말이 처음엔 어려웠다. 하지만 선배 P와의 일화를 통해 수처작주의 의미를 좀 더 분명하게 배울 수 있었다. 내 차를 타고 가자고 말하는 P의 부탁을 듣고 내가 행하게 되면 나는 시키는 것을 하는 사람밖에 되지 않았다. 반대로 선배가 내게 부탁하기 전에 내가 먼저 내 차를 타고 가자고 말했을 때 나는 선심을 쓰는 사람이 될 수 있었다. 상대방이 하자는 대로 하는 게 아니라 내가 먼저 하자고 제안하고 행동했을 때 나는 그 상황에서 주인이 될 수 있었다.


이 일을 계기로 '5리를 가자고 하면 10리를 가주어라, 겉옷을 벗어달라고 하면 속옷까지 벗어주어라'라고 하는 성경의 구절을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었다.



주인으로 살지 못하고 노예로 살았던 지난 날들이 생각났다. 직장상사가 이거 하나만 더 하라고 지시했을 때 나는 똥 씹은 표정을 지으며 투덜거렸다. 어머니와 같이 외출을 준비할 때, 내게 5분만 더 기다려 달라고 말하던 어머니에게 나는 빨리 좀 준비하라며 승질을 부렸다.


그때 만약 내가 먼저 이렇게 말했다면 좋지 않았을까. 직장 상사에게 "이거 말고 더 할 거 없나요? 할 거 있으면 저 주세요."라고 말했다면, 어머니에게 "내가 5분 말고 10분 더 기다려줄게."라고 웃으며 말했다면 그 상황에서 내가 주인이 될 수 있었을 것이다. 주인이 됨으로써 여유를 가지고 기분 좋게 상황을 마무리할 수 있었을 것이다.



얼마 전 일이었다. 사무실에서 작업 중이었는데 퇴근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얼른 하던 일을 마무리하고 퇴근 준비를 했으면 싶었는데 반장님은 일을 마칠 생각을 안 했다.


"반장님 언제까지 작업하실 건가요?"

"한 박스만 더 하고 마무리 하자."


한 박스를 더 작업하게 되면 분명 퇴근시간이 늦어질 터였다. 한숨이 나왔다. 하염없이 시계만 바라보며 투덜거렸다. 짜증을 낼수록 머리가 지끈거렸다. 순간 선배 P와의 일화가 떠올랐다. 어차피 해야 할 거 이런 식으로 하면 나에게 손해일 것 같았다. 그 상황 속에서 내가 주인이 되고자 나는 반장님에게 이렇게 말했다.


"1박스 말고 2박스 더 하면 안 되겠습니까? 어차피 할 거 미리 해놓지요."


그렇게 웃으며 말하고 나니 이상하게 기분이 풀리기 시작했다. 웃음이 났다. 시간상 1박스만 하고 마쳤지만 2박스를 더 했어도 그렇게 화가 났을 것 같지는 않다. 그 상황에서 이미 내가 주인이 되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싶다.




나는 내 삶을 주도적으로 살길 원한다. 매 순간 남이 시키는 대로 이끌리듯 따라가는 노예가 아니라 내가 내 삶에 주인이 되어 살고자 한다. 그래서 어떤 상황에 놓일 때 나는 생각한다.


'내가 이 상황에서 주인이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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