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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타치는 권작가 Apr 01. 2021

직장 상사에게 물었다. "제가 고칠 점이 있을까요?"

여러 일터를 전전하다가 현재의 직장에 안착한 지 어느덧 3년이 다 되어 간다. 여전히 선배가 훨씬 많지만 해마다 신입이 들어오면서 후배들도 많이 생겼다. 우리 사무실에도 후배가 한 명 있다. 바로 H이다. 


후배 H는 좋은 사람이었다. 대화가 잘 통했다. 눈치도 있었고 배려심도 깊었다. 하지만 일을 할 때는 달랐다. 일을 하다보니 부딪히는 부분이 생겼다. 생각이나 일하는 방식의 차이에서 오는 마찰이 많았지만 개중에는 후배 H가 일을 똑바로 하지 않아서 생기는 문제도 있었다. 


잘하려고 하다가 실수한 것은 괜찮지만 할 수 있으면서 게으름을 피우고 안 하는 걸 볼 때면 속에서 천불이 났다. 조용하게 얘기를 해볼까 생각도 했지만 말을 꺼내기가 쉽지 않았다. 좋게 받아들이지 않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후배 H는 평소에 내가 부탁에 가까운 어조로 업무 지시를 하거나 다른 일 제쳐두고 이 일을 먼저 같이 끝내자고 정중하게 얘기를 해도 뾰로통한 반응을 보이곤 했다. 선배로서 충분히 지시할 수 있는 업무임에도 H는 내가 뭔가를 시키는 것 자체를 싫어하는 듯했다. 그런 H에게 이런 점을 좀 고쳤으면 좋겠다고 말한다면 어떤 반응을 보일지는 불보듯 뻔했다. 


괜히 잘못 건드렸다가 꼰대 소리 들을지도 모를 판이었다. 말을 하자니 못하겠고 그렇다고 안 하자니 업무가 더디니 답답하고. 혼자 속앓이를 하다가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H가 먼저 나한테 와서 자신이 어떻게 하면 더 좋을지 물어봐주면 얘기 하기가 참 편할 텐데.'


내가 먼저 말하면 잔소리가 될 수 있기 때문에 후배가 먼저 와서 물어봐준다면 마음이 정말 편할 것 같았다. 아쉬운 점이나 고쳤으면 하는 부분을 더 기분 좋게 얘기해줄 수 있을 것 같았다. 나 역시도 내가 어떻게 하는 게 일 하기가 더 수월하겠냐며 편안하게 물어볼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일어나기 어려운 일이란 걸 알고 있었다. 이런 생각은 상상에 그칠 뿐이었다. 


웃을 땐 웃고 불편한 게 있으면 불편한 대로 그렇게 지냈다. 데면데면 지내던 어느 날 책에서 직장생활 잘하는 방법에 대한 방법에 대한 읽은 이야기가 생각이 났다. 저자는 말했다. 직장에서 업무성과도 내고 상사와의 관계도 잘하고 싶다면 상사에게 먼저 찾아가 자신이 무엇을 고치면 좋겠냐고 물어보라고 했다. 처음 이 이야기를 읽었을 때만 해도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불만이 있으면 상사가 먼저 말을 하면 되지 왜 후배가 먼저 상사에게 찾아가서 그런 이야기를 해야 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또 굳이 불편하게 그런 얘기를 꺼낼 필요가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든 것도 사실이다. 


당시 의아해했던 그 이야기가 오랜 시간 땅 속에 묻혀 있다 발견된 보물처럼 몇 년이 더 지난 지금에서야 다시 머릿속에 떠올랐다. 이번엔 후배가 H가 아닌 나 자신을 들여다보며 생각했다. 


'내가 후배 H를 보며 속앓이를 했던 것처럼 어쩌면 나와 같이 일하는 다른 선배도 나에게 이런 부분만 좀 고쳤으면 하고 답답해할 수 있겠구나.'


궁금했다. 내가 나름 한다고 하지만 선배가 보는 나는 어떨지 알고 싶어졌다. 물어보고 싶었다. 섣불리 용기가 나지 않았다. 며칠 고민하다 결국 물어보기로 했다. 보고 듣고 느낀 것을 생각으로 그치게 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물론 한 편의 글을 쓰기 위한 목적으로 용기를 더 낼 수 있었던 것도 맞지만 말이다. 



햇살이 내리쬐는 오후였다. 언제 얘기를 꺼내볼까 하고 분위기를 살피다가 손을 살짝 들며 입을 열었다.


- 반장님.

- 왜?

- 질문이 있습니다.


반장님은 뭐지? 하는 호기심 어린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 뭔데?

- 그러니까 있잖아요. 음.. 


생각처럼 입이 잘 떨어지지 않았다. 쓸데없는 추임새만 연거푸 던지다가 조심스레 질문했다. 


- 혹시 제가 고쳤으면 하는 부분이 있을까요?

- 갑자기 뭔 소리고?


반장님은 얘가 갑자기 왜 이러나 하는 표정을 지었다.


- 아니 그러니깐요. 저랑 같이 일하시면서 '얘가 이런 부분만 고치면 참 좋을 텐데.' 하는 뭐 그런 게 있을까 해서요.


반장님은 잠깐 당황하더니 이내 입가에 살짝 미소를 짓더니 나를 빤히 쳐다보았다. 


- 뭐 그럴 때가 있긴 있지.


내 예상과는 조금 다른 대답이었다. 이때다 싶어서 속에 담아왔던 얘기를 다 쏟아낼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생각과는 다른 반응에 나는 조금은 안도감을 느꼈다. 



직장 상사에게 이런 질문을, 그것도 내가 먼저 말을 꺼낸 건 처음이었다. 막상 말을 뱉고 보니 부끄럽기도 하고 민망하기도 했다. 그건 반장님도 마찬가지인 듯했다. 후배에게 이런 질문을 처음 받아봤는지, 반장님은 재밌다는 듯 웃기는 웃는데 우물쭈물하며 뭐라 명확하게 말은 하진 않았다. 평소에 나와 사이가 괜찮았던 터라 크게 할 말이 없는 건가 생각했다. 끝내 뭘 고쳐라고 말하진 않았다. 다만 이렇게 말을 붙였다.


- 그렇게 물어보는 건 진짜 좋은 거야. 고칠려는 자세가 되어 있다는 거잖아. 직장 생활할 때 진짜 필요한 거야 그건.


반장님은 흐뭇하게 웃으며 내가 한 질문 자체를 칭찬해주었다. 그날 이후 이 부분에 대해 추가적으로 서로 얘기를 나눈 건 없었지만 왠지 서로 좀 더 편안해지고 친해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반장님 역시 나를 전보다 조금 더 애뜻하게 챙겨준다는 느낌이 들었다. 



사회 생활을 일찍 시작한 나는 지난 20대 때 여러 일터에서 근무했다. 어느 직장을 가더라도 대부분 내가 나이가 제일 어렸다. 그렇다 보니 줄곧 후배의 입장에서만 생각하고 일했다. 직장 상사의 입장이나 심정은 생각지 않고 오로지 내가 생각하는 대로만 말하고 행동했다. 


상사가 지시하는 일이 내 생각과 다르면 불평을 했다. 내가 조금만 손해본다 싶은 기분이 들면 궁시렁거렸다. 마음이 들지 않는 상사를 무시하듯 대하기도 했고 화가 날 때는 참지 못하고 눈 동그랗게 뜨며 대들기도 했다. 그럴 때 큰소리치지 못하는 상사를 보며 쫄보라며 뒤에서 욕을 하던 적도 있었다. 


어느덧 30대 중반이 되어 후배들과 같이 일을 해보니 이제는 나도 알 것 같다. 나와 같이 일했던 선배들이 나 때문에 많이 힘들었을 거라는 것을. 내가 스트레스 받는 것 이상으로 상사는 더 큰 스트레스를 받았을 거라는 것을. 또 의외로 상사가 부하직원 눈치를 많이 본다는 것까지도. 그래서 하고 싶은 말이 있어도 하지 못하고 속으로 삼킨 채 그냥 그러려니 하며 일했던 것이 아니었을까. 




직장 상사와 잘 지내기보다는 사이가 좋지 않은 직장인이 더 많을 것이다. 한번은 회사 부장님에게 시원하게 한 마디하는 라디오 코너가 있었는데, 그런 걸로 봐서는 직장 상사 중에서도 특히 부장님을 미워하는 직장인들이 많은 듯하다. 예전엔 나도 부장님을 싫어했다. 맨날 큰소리칠 줄만 알지 제대로 도와주는 게 하나도 없다고 생각하며 미워했다. 하지만 직장 생활을 어느 정도 하다보니 그간 만났던 부장님들의 마음이 조금은 헤아려진다. 나만 힘든 줄 알았는데 부장님도 그 나름대로 어려운 점이 많았겠구나, 직책이 직책인 만큼 과중한 업무에 눌려 피눈물 흘리던 날도 종종 있었겠구나 하고 말이다. 


부하직원이 상사인 자신의 생각대로 잘 따라와주지 않을 때 느끼는 고충을 이제는 나도 알기에 앞으로는 상사에게 더 잘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부딪히거나 마찰이 생길 때 나의 입장만을 고수하지 말고 상사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행동해야겠다는 다짐을 해본다. 물론 말이 안 통하는 고지식한 상사는 예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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