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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타치는 권작가 Feb 23. 2022

낯선 아주머니에게서 느꼈던 엄마의 모습

집에 사용하지 않고 보관해 둔 화장품 세트가 있었다. 원래 쓰는 화장품이 따로 있어 이 제품을 쓸 거 같진 않았다. 한 번도 안 쓴 새것이라 당근 마켓에 팔기로 했다. 제품 판매글을 올렸다. 판매가 3,000원. 몇 분 뒤 한 구매자에게서 채팅이 왔다. 그날 저녁 바로 만나기로 하고 시간에 맞춰 약속 장소에 나갔다. 


도착하고 보니 한 아주머니가 서 있었다. 저 분인가? 하고 갸우뚱하며 차에서 내렸다. 화장품 상자를 들고 아주머니에게 천천히 다가갔다. 주위를 두리번거리고 있던 아주머니는 화장품을 들고 있던 나를 보더니 방끗 웃으며 내게 다가왔다. 당근마켓 앱 채팅방에서 대화를 나눌 때 나이가 좀 있으신 분일 거라 생각은 했는데 실제로는 나이가 더 지긋한, 70세쯤 되어보이는 아주머니, 아니 할머니였다. 행색이 조금 특이했다. 알록달록한 옷을 입고 있었고 다채로운 색상의 벙거지모자를 쓰고 있었으며 새까만 선글라스까지 착용하고 있었다. 의상만큼이나 행동도 조금 독특했다. 나한테 웃으면서 다가오는데 그냥 오는 게 아니라 손을 이리저리 흔들며 춤을 추듯이 다가왔던 것이다. '어머나, 왜 저러시지?' 하는 생각도 잠시, 왠지 모를 친근감이 들어 금세 입가에 미소가 지어졌다. 


나도 웃으며 반갑게 인사를 했다. 한 번도 안 쓴 새것이니 잘 쓰시라며 화장품을 건넸다. 남편 주려고 사는 거라며 저렴하게 줘서 고맙다면서 나에게 뭔가를 주었다. 하얀 봉투였다. 처음 1초 동안은 이게 뭔가 하며 잠시 의아해 하다가 이내 돈봉투라는 걸 뒤늦게 알아챘다. 그럴 수밖에 없었던 게 중고거래를 여러 번 해봤지만 이렇게 현금을 봉투에 넣어주는 사람을 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나는 그 봉투를 받지 않았다. 화장품은 그냥 가져가시라 했다. 3천 원에 판매한다고 올렸지만 사실 처음부터 무료나눔 할 생각이기도 했지만 처음 보는 나를 보며 춤을 추듯 신나게 몸을 흔들면서 살갑게 맞아주는 아주머니의 모습을 보니 더더욱 돈을 받고 싶지 않았다. 거래가 끝나고 헤어지는 순간까지도 아주머니는 내게 연신 고맙다며 머리 숙여 인사를 했다. 베푼 건 나인데 오히려 내가 더 많이 얻어가는 것만 같았다. 


얼굴 가득 함박웃음을 지으며 돌아서는 아주머니를 보는데 문득 우리 어머니가 생각이 났다. 어머니가 그 아주머니처럼 상냥한 스타일이 아닌데도 그냥 왠지 어머니의 모습이 겹쳐 보였다. 많은 어머님들이 남의 자식들을 잘 챙겨주면서 '내 아들 같아서' 또는 '내 딸 같아서'라는 말을 하는 경우를 종종 목격해왔는데 그때마다 남의 자식을 자신의 아이처럼 느낀다는 그 심정을 쉽게 이해하지 못했다. 마찬가지로 다른 어머니를 두고 우리 어머니 같다고 말하는 자식들의 말도 쉬이 가슴에 와 닿지 않았다. 그랬던 내가 군대에서 100일 휴가 나온 자식을 대하듯 반겨주는 그 아주머니의 모습을 보며 자연스레 우리 어머니를 떠올렸다. 길거리에서 붕어빵 장사를 하는 아주머니를 볼 때면 오래 전에 붕어빵 장사를 했던 우리 어머니가 생각이 나긴 했어도 내 어머니 같다는 애뜻한 느낌은 없었는데 새 화장품을 얻어 기뻐하는 아주머니의 모습에서 우리 어머니의 얼굴이 보이는 듯했다. 아주머니의 그 웃음이 너무나 해맑아서 였을까. 아니면 작은 것에도 기뻐할 줄 아는 그 모습이 닮아서 였을까.


기분 좋게 중고거래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와 보니 화장대 한편에 쓰지 않고 놔둔 화장품 하나가 눈에 띄었다. '이 화장품도 덤으로 주고 왔으면 좋았을걸.' 더 베풀지 못해 아쉬워하며 나는 봄바람에 일렁이는 개나리꽃만큼이나 싱그러운 미소를 가진 그 아주머니를 떠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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