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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타치는 권작가 Aug 28. 2020

가면을 벗고 있는 그대로의 나를 보여주기로 했다

있는 그대로의 나를 보여줘야 할지 아니면 포장하더라도 좋은 모습의 나를 보여줘야 할지에 대한 고민은 누구나 한 번쯤은 할 것이다. 현재의 나는 있는 그대로의 나를 보여주는 편이지만 20대 때까지만 해도 스스로를 포장하기 바빴다. 본래의 나보다 더 밝고 젠틀한 모습의 나를 보여주기 위해 항상 가면을 쓰곤 했다. 이성을 만날 때가 특히 그랬다.


누구나 그렇듯 20대 때는 나도 사람들에게 잘 보이고 싶었다. 사람으로서도 좋은 사람이고 싶었지만 특히 이성이 봤을 때 매력적인 남자로 보이고 싶은 욕심이 많았다. 있는 그대로의 나를 보여주면 호감을 얻지 못할까 봐 매번 나를 숨겼다. 나의 본성을 꾹꾹 누른 채 항상 매력적으로 보일 수 있도록 말하고 행동했다. 여자에게 매력적으로 보이는 방법이나 여자들이 좋아하는 남자스타일과 같은 내용의 글이 있으면 관심을 가지고 읽곤 했고 나에게 적용시켜보려 했다. 연애에 관한 책도 여러 권 읽었고 마음에 드는 여성이 있을 때면 책에서 배운 대화의 기술을 써먹어보곤 했다. 연애 잘하는 친구에게 소위 여자를 꼬시는 방법에 대한 비법을 전수받기도 했다. 한 가지 방법을 해서 잘 안 통하면 다른 방법을 썼다. 말을 이렇게도 해보고 저렇게도 해봤다.


그런데 어디선가 읽고 들은 연애 비법들을 따라할 때마다 내가 자꾸 내 몸에 맞지 않는 옷을 입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이성의 마음을 사로잡는 좋은 방법이 있어도 그것이 나에게 효과가 있는 것 같지는 않았다. 내가 말하는 스타일이 있고 내가 행동하는 방식이 있다. 그런 나를 애써 감추고 남들이 말하는 방식대로 말하고 행동하는 것이 여간 낯선 게 아니었다.


평소의 나의 언행을 숨기고 타인이 말하는 방법대로 말하고 행동하다보니 그것이 나 자신을 부정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곤 했다. 생각이 바뀌었다.


'그래, 이제는 있는 그대로의 나를 보여주자.'


이래나 저래나 이성에게 크게 어필이 되지 않는다면 차라리 있는 그대로의 나를 보여주자고 마음먹게 된 것이다.


'나'라는 사람을 굳이 숨기면서까지 사람을 만날 필요는 없을 것 같았다. 포장된 나를 좋아하는 사람이 아닌 진짜 '나'라는 사람을 좋아해주는 사람을 만나는 게 맞다고 생각했다. 당장은 나를 전혀 다른 사람으로 포장하더라도 결국엔 본래의 내가 드러나기 때문이다.


이제는 있는 그대로의 내 모습을 당당히 드러내기로 했다. 점잖으면서 할 말만 딱 하는 남자가 무게감 있어보긴 하지만 나는 평소의 내 스타일대로 조잘조잘거리며 수다스럽게 말한다. 예전엔 매운 걸 못 먹는다거나 술을 못한다고 말하면 남자답지 못해 보일까 봐 아픈 속을 부여잡으며 애써 뭐든 잘 먹는 척 했지만 이제는 매운 음식을 못 먹는다고, 또 술도 잘 못한다고 솔직하게 말한다. 몸이 마른 게 콤플렉스라 여성을 만날 때마다 나를 말랐다고 생각하지 않을까 노심초사하곤 했지만 이제는 그런 생각도 내려놓았다. '적당히 살집도 있고 어깨도 넓으면 좋겠지만 나는 그런 사람이 아닌 걸 어쩌겠어.'라고 생각하며 내 모습을 인정하고 받아들인다. 이성을 사로잡는 현란한 말솜씨는 없지만 그렇다고 해서 다른 사람들의 언행을 따라하고 싶진 않다. 장난끼가 많은 다소 가벼운 말투이지만 내 방식대로 말하고 행동하기로 했다.


그렇게 나는, 예민하고 소심하고 겁이 많고 키도 작고 몸도 마르고 매운 음식도 못 먹고 술도 카리스마 있게 원샷하지 못하는 그런 나를 받아들이기로 했다. 사회가 만들어놓은 가면을 벗어던지고 본래의 내 모습을 보여주기로 했다. 타인이 말하는 기준이 아닌 내 기준대로 삶을 살아가기로 했다. 그렇게 나는 나로 살기로 했다.


더 나은 내가 되기 위한 노력은 하되 우선은 지금의 내 모습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것, 그것이 나 자신을 사랑하기 이전에 선행되어야 할 일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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