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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타치는 권작가 Aug 04. 2020

조금만 더위도 참지 못하는 나약해진 우리네들

주위를 보면 요즘 조금만 더워도 참지 못하고 인상을 찌푸리는 사람들이 많다. 그런 사람들을 나는 직장에서 쉽게 목격다. 직장 사무실에서 사람들은 조금만 더워도 에어컨을 빵빵하게 틀어놓는다. 시원하다 못해 추울 정도로 에어컨을 강하다 튼다. 어느 정도 시원해지면 바람을 약하게 할 법도 한데 한 치의 더위도 허락하지 않겠다는 의지로 그냥 내버려둔다. 냉방병에 걸리는 게 전혀 이상하지 않는 상황이다.


한여름엔 그렇다쳐도 봄이나 늦가을에도 에어컨을 트는 사람들이 있다. 또 비가 오는 날에는 그리 덥지 않기 때문에 에어컨을 끌 법도 한데 사람들은 사무실에 도착하자마자 출근도장 찍듯 에어컨부터 켜고 본다. 이쯤되면 아예 그냥 습관적으로 트는 거다.


차를 탈 때도 마찬가지다. 직장 내 단지가 넓어 다른 부서로 이동할 때는 차를 타고 가야 하는데 차 타고 3분만 가면 되는데도 그새를 못 참고 에어컨을 최대로 가동시킨다. 이동거리가 짧으면 창문을 열고 가도 될 것 같은데, 사람들은 찬바람이 나오기도 전에 도착하는 그 짧은 거리에도 유불문하고 에어컨을 풀가동 시킨다.


에어컨을 틀지 말자는 게 아니다. 예전에는 에어컨 없이도 살았는데 뭐가 그렇게 덥다고 난리냐며 시대에 뒤떨어진 소리를 하려는 것도 아니다. 에어컨은 필요하다. 더울 때 쓰라고 만들어 놓은 건데 안 쓸 이유가 없다. 쓰는 건 자유다. 하지만 안타까운 건 조금만 더워도 미친듯이 짜증을 내고 몸부림치는, 최소한의 인내 따위는 잃어버리고 과학이 만들어낸 상품에만 의지하는 사람들이 많이 생겨나고 있다는 점이다. 그렇게 덥지도 않은 날씨에도 덥다며 에어컨 없으면 죽을 것처럼 구는 사람들 말이다. 이럴 때 보면 참 이상하다. 시원하고 쾌적하게 해주는 기계는 많아졌는데 그와 반대로 사람들은 오히려 참을성이 더 적어졌고 분노는 더욱 커졌다는 것이.


과거에 비해 전화, 문자, SNS 등 소통할 수 있는 매개는 많아졌지만 사람 간의 거리는 더욱 멀어지고 정은 사라졌다. KTX의 등장으로 인해 이동시간이 단축됐으면 더 여유로워져야 할 것을 오히려 더 조급해졌고 바빠졌다. 그런 점에서 조금만 더워도 신경질 내며 울상을 하는 사람들 역시 마찬가지라 생각한다. 그러니까, 사람을 이렇게 만든 건 결국 현대 문명의 발전이 한 몫 했다는 말이다. 발전과 발명이라는 그 화려함 뒤에 숨겨진 부작용이 사람들의 인내심을 갉아먹었고 더 예민하게 만들었다. 시원하게 누릴 수 있는 게 있으면 더위에 더 관대해지고 여유로워져야 할 것 같은데 오히려 반대다. 시원해지면 시원해질수록 사람들은 더 시원한 걸 요구하고 사소한 더위도 참지 못하는 것이다. 에어컨에 길들여진 사람들은 에어컨 바람을 쐴 때의 그 시원하고 쾌적한 상태를 기준으로 삼게 되니 조금이라도 그 기준보다 덥거나 습하면 불쾌하다고 느끼게 되는 것이 아닐까.


물론 날씨가 많이 더운 건 사실이다. 지구온난화로 인해 과거에 비해 여름이 더 많이 더워졌다. 더워서 못 살겠다고 아우성 치는 사람들의 심정 나도 충분히 이해한다. 나도 가끔은 이렇게 더워서 사람이 어떻게 사냐며 고개를 절레절레 힘들 때가 있으니 말이다. 사람마다 느끼는 온도가 다르기 때문에 내가 더위를 많이 타지 않는다고 해서 타인에게 이 정도 더위도 못 참냐며 비난해서는 안 된다.

그래도 왠지 좀 안타깝다. 조금만 땀을 흘려도 짜증을 내는 사람이, 조금만 습해도 신경질부리는 사람이, 춥다고 느끼는 사람이 있어도 오로지 자신이 더운 것만 생각하며 에어컨을 더 강하게 트는 그런 사람들이 말이다. 문명의 이기를 누리면서 여유로워지기보단 반대로 더 나약해지고 날카롭게 변해가는 사람들을 보고 있자니 어쩐지 좀 씁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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