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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타치는 권작가 Aug 12. 2020

그때 그냥 여행을 다녀올걸 그랬어

사람들은 삶에는 다 때가 있다는 말을 흔히 한다. 주로 학창시절에 공부를 열심히 하지 않은 것을 두고 때를 논하는 경우가 많은데 공부뿐만 아니라 세상만사가 그런 듯하다. 나도 때가 있다는 말에 상당히 공감한다. 20대 시절 그 말의 의미를 크게 실감한 적이 딱 한 번 있었다.


스무 살 때였다. 그 당시 사귀던 동갑내기 여자 친구가 있었다. 한번은 나와 내 여자 친구 그리고 친구 커플과 함께 2박3일 강원도 여행을 떠나기로 한 적이 있었다. 여행을 계획한 며칠 전부터 차를 렌트하고 펜션도 예약했다. 여행을 떠난다는 생각에 설레기도 했지만 그만큼 걱정되는 부분도 있었다. 여행경비가 너무 많이 든다는 게 문제였다. 1인당 경비가 무려 20만 원이었다. 4명이면 80만 원이나 되는 셈이었다. 지금 그 돈을 주고 놀러 간다고 해도 부담스러운 금액인데 13년 전인 2007년 당시의 물가만 봐도 20만 원은 결코 적지 않은 금액이었다.


나를 제외한 나머지 세 사람은 마냥 기쁜 마음으로 여행을 기다리고 있었는지 모르겠지만 사실 나는 여행을 떠나기 일주일 전부터 고민에 빠졌다. 아무리 생각해도 돈이 너무 아까웠다. 통장에 여윳돈이 있었어도 아깝다고 느꼈을 텐데 그때는 주머니 사정이 여의치 않아 더더욱 고민을 할 수밖에 없었다. 더군다나 그때가 호프집에서 아르바이트를 할 때였는데 장사가 안 된다며 하소연하는 사장님께 사정사정해서 겨우 받은 돈이라 더 그랬다. 잠도 제대로 못 자고 밤낮 바뀌어가며 일해서 번 돈인데 이렇게 한꺼번에 다 쓰기엔 너무 아까웠다.


고민 끝에 결국 내 여자 친구와 친구 커플에게 다른 핑계를 대며 여행을 못 갈 것 같다고 말했다. 내 말을 들은 친구 커플은 단단히 화가난 듯했다. 예상은 했지만 그 이상으로 노발대발했다. 무슨 일 때문에 그러는지 나에게 물어보지도 않고 이미 예약해놓은 펜션이랑 렌터카는 어떻게 할 거냐며 나를 막 쏘아붙였다. 그럴 만도 했다. 여행가기 바로 전날에 내가 못 가겠다고 말을 했으니. 예약한 거 돈 다 물어내라며 큰소리를 치던 친구는 미안하다는 내 사과는 흘려 듣고 그대로 전화를 끊어버렸다. 나중에 전해듣기로는 친구 커플은 지인에게 이리저리 돈을 빌려 그 돈으로 둘이서 여행을 다녀왔다고 했다. 그 이후로 그 친구 커플은 만날 수 없었다.


그렇게 많은 돈을 들여서 놀러 갈 필요는 없는 것 같아 가지 않길 잘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보니 그때 놀러가지 않은 것이 조금씩 후회되기 시작했다. 몇 달 뒤 사귀던 여자 친구와 나중에 이런저런 이유로 헤어지게 되면서 후회의 골은 더욱 깊어졌다. 후회 속에는 이러한 아쉬움이 많이 묻어있었다.


'여행을 갔다면 즐거운 추억을 많이 만들었을 텐데.'

'여행을 통해 여자 친구와 더 끈끈해졌다면 인연의 끈도 그만큼 더 길어질 수 있었을 텐데.'

 

지금이라도 여행을 가면 되지 않냐고 말할 수도 있다. 물론 지금도 충분히 갈 수 있다. 그때보다 지금이 시간적으로나 경제적으로나 더 여유로워졌기 때문에 얼마든지 여행을 떠날 수 있다. 하지만 그때와 지금은 다르다. 지금의 나는 20대의 나보다 더 성숙해졌지만 어릴 때의 그 풋풋함은 찾아보기 어려워졌다. 친구들과 멋모르고 어울리며 놀았던 철없는 웃음도, 이성과 세상에 대한 낯선 설렘도 지금은 느끼기 어렵다. 제일 중요한 건 그때의 그 사람들이 지금은 없다는 점이다. 그때는 그 20만 원이 그렇게 크고 귀했는데 이제는 20만 원이 아닌 200만 원을 들인다 해도 그 시절로 돌아갈 수 없다. 


사실 여행을 갈지 말지 결정을 내리기 전에 이 문제에 대해 조언을 해준 사람이 있었다. 술자리 후 해장라면을 먹기 위해 자주 들르던 편의점의 (여)사장님이었다. 얘기하기를 좋아하는 젊은 감각을 지닌 사람이었다. 매사에 털털하게 얘기해주시는 게 좋아서 편의점에 들를 때마다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곤 했다. 내 고민을 찬찬히 듣던 사장님은 이렇게 말했다.


“그냥 갔다 와. 지금 너처럼 이렇게 마음 편하게 놀 수 있는 날도 앞으로 별로 없어. 놀 수 있을 때 놀아. 나중에는 갈려고 해도 못 간다니깐. 나 봐라. 맨날 일하느라 아무것도 못하잖아. 돈도 중요하지만 지금도 중요한 거야.”


사장님은 알고 있었다. 이만큼 살아보니 중요한 것은 바로 지금이라는 것을, 할 수 있을 때 마음껏 해봐야 나중에 후회가 없다는 것을 말이다.  


스무 살 때의 그 일이 나에게는 단순히 여행을 가지 않은 것에 대한 아쉬움을 토로하는 이야기에 불과한 것이 아니었다. 할 수 있을 때 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에 대한 교훈을 많이 느낄 수 있었던 경험이었다. 여행을 가지 않았던 그때의 일도, 사장님이 해준 조언이 지금까지도 종종 생각이 나곤 한다. 특히 어떤 선택의 기로에 있을 때 더 많이 떠오른다. 그럴 때면 멀리보고 결정하려 한다. 지금이 아니면 할 수 없는 일인지 한 번 더 생각해보고 행동하려 한다. 과거와 미래가 아닌 현재에 살기 위해 매 순간 최선을 다한다.


할 수 있을 때 하자. 공부도, 사랑도, 일도, 여행도 다 때가 있다. 나중에 나이 들어서도 얼마든지 할 수 있겠지만 그때 그 시절에만 느낄 수 있는 향수가 있는 것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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