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지인이 서울에 있는 친구들 만나러 갈 거라며 했다. 오랜만에 가는 서울나들이라며 한껏 들떠 있던 그는 스마트폰으로 KTX 시간과 금액을 찾아보았다. 기차예매를 완료한 후 그는 마치 자문자답하듯 혼자서 이렇게 얘기했다.
"서울가는 3시간 동안 기차 안에서 뭐하지?"
"서울에 도착하면 친구들을 만나기로 한 시간까지 시간이 좀 남는데 그땐 또 어디가서 뭘 하면 좋을까?"
그 말을 듣는데 나도 모르게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그러곤 잠시 생각에 잠기게 되었다.
'시간이 여유로워지면 그만큼 그 시간을 여유있게 누려야 하는데 왜 남는 그 시간까지도 뭔가로 꽉꽉 채우려고 하는 걸까?'
사실 지인의 그런 혼잣말은 누구나 할 수 있는 말이다. 이동 시간이 지루할 수 있으니 그 시간에 뭘 할지 생각할 수 있고 오랜만에 서울에 왔으니 알차게 놀다 가야겠다는 생각으로 시간계획을 타이트하게 잡을 수도 있다. 평범한 생각임에도 불구하고 그날따라 지인의 그 혼잣말은 나를 상념에 빠지게 만들었다. 우리 모두가 무언가에 쫓기듯 너무 바쁘게 살아가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평소에도 자주 해왔기 때문이다.
현재 우리는 최첨단 시대에 살고 있다. 걸어서 움직였던 과거와 달리 현재는 버스, 지하철, 자동차를 타면 원하는 장소까지 금방 다녀올 수 있고 기차와 비행기를 타면 전국 어디든 하루 만에 갔다올 수도 있다. 교통의 발달로 인해 일일생활권에 접어든 것이다. 집에 가전제품이 고장났을 때는 전화 한 통이면 수리기사가 와서 단 몇 분만에 사용이 가능하도록 수리를 해준다. 보내야 할 물건이 있을 때는 직접 갈 필요 없이 택배를 이용하면 하루이틀 내에 원하는 곳에 배송할 수도 있고 최근에는 배달 앱 시장의 발달로 인해 음식도 집에서 쉽고 빠르게 배달시켜 먹는 등 시간을 더욱 절약할 수 있게 되었다. 어느새 세상이 이렇게나 빨라진 것이다.
여기서 드는 생각 하나, 세상이 빨라지면 빨라진 만큼 우리의 삶에 시간적 공백이 많아져야 한다. 예를 들어 업무를 서둘러 끝마치면 그만큼 누릴 수 있는 저녁시간이 많아진다. 학교숙제를 빨리 끝내면 그만큼 놀 수 있는 시간이 많아진다. 이렇듯 쉽고 편리해진 만큼 여유가 더 많아져야 하는 게 당연하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현대인들의 삶은 반대로 가고 있다. 우리의 일상은 더욱 바빠졌고 여유는 찾아볼 수도 없다. 바쁘다 보니 아침밥을 거르는 것이 일상이 되었고 점심이나 저녁을 제때 챙겨먹지 못하는 사람들도 많다. 매일 야근을 하며 일을 해도 모자라 주말까지도 일을 하며 정신없이 보낸다. 운전을 할 때도 조금이라도 더 빨리 가기 위해 속도위반을 서슴지 않고 신호위반까지 해가며 1~2분에 목숨을 건다.
왜 이렇게 된 걸까 생각해봤다. 빨라진 만큼 생겨난 그 공백을 다른 무언가로 자꾸만 더 채우려는 습관이 원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한 예로, 우리 어머니는 항상 약속 시간에 늦는다. 매번 왜 그렇게 늦는지 집에서 가만히 관찰해봤다. 약속 전에 다른 뭔가를 하기 때문에 늦는다는 걸 알 수 있었다. 그러니까 약속 시간까지 얼마 안 남았으면 아예 다른 일 다 제쳐두고 집을 나서는데 약속 시간까지 시간이 좀 남았다 싶으면 그때는 설거지, 빨래, 청소 등과 같은 집안일을 한다는 것이다. 하다보면 늦어지고 늦어진 만큼 약속 시간에 늦는 것이었다. 약속 시간은 늦었지만 그래도 낮에 미리 해놓으면 저녁 시간이 그만큼 여유로워지는 게 아니냐고 생각할수도 있겠지만 저녁 시간에는 그 나름 또 뭔가를 하느라 바쁘다. 결국 시간적 공백이 있어도 그 시간에 자꾸 뭔가를 하기 때문에 바빠지고 늦어지는 게 아닐까 생각한다.
초고속의 부작용
혹자는 바쁘게 사는 게 뭐가 문제냐고 말할지도 모르겠다. 내가 우려하는 것은 세상이 빨라지면 빨라질수록 사람들은 '더 빨리빨리'를 외치게 되고 그럼으로써 야기하는 문제가 많아질 수 있다는 점이다. 빠른 것에 익숙해진 사람들은 조금만 느려도 참지 못하고 아우성을 친다. 택배가 조금만 늦어도 택배기사에게 전화를 해서 언제 오냐고 닦달을 하고 제품 수리를 위해 서비스센터를 방문했을 때 시간이 조금만 지체되어도 언제 수리되냐며 신경질을 부린다. 스마트폰을 사용할 때 인터넷 속도가 조금만 느려도 왜 이렇게 늦냐며 엄지 손가락으로 될 때까지 몇 번이고 화면을 터치하고 병원이나 은행같은 곳에서 대기할 때도 단 몇 분도 기다리지 못하고 시간을 보며 초조해한다. 운전할 때도 마찬가지다. 조금이라도 차가 밀리면 인상을 찌푸리고, 더 빨라가기 위해 무리하게 끼어들기를 하면서도 다른 차가 끼어들면 경적을 울리며 짜증을 낸다. 이처럼 빨라질수록 사람들은 더 조급해졌고 조금만 느려도 불같이 화를 내는 사람들로 변하게 되었다. 이렇듯 초고속은 양보와 배려 결여, 인내심 저하, 사람간의 인정 상실 등등과 같은 부작용을 낳게 한 것이다.
브런치와 네이버밴드 페이지에서 북한과 남한의 간극에 대한 글을 쓰며 활동하고 있는 한 작가(필명 북한댁)가 말하기를, 북한에서는 먼 거리에 있는 사람을 만날 때 약속 시간을 정하지 않는다고 한다. 북한은 전기시설이 미비하여 기차가 중간에 멈추는 일이 잦고 다시 출발하기까지 몇 시간에서 길면 하루, 이틀이 걸릴 수도 있다고 하는데 이렇듯 언제 도착할지 모르기 때문에 약속 시간을 정하지 않는 것이다. 그래서 북한 사람들은 느리거나 시간이 많이 걸린다고 해도 짜증내거나 불평하지 않는다고 한다. 기차가 원래부터 느려 세월아 네월아 하며 여유있게 기다리기 때문이다.
마냥 느린 삶을 살자는 것이 아니다. 그저 바쁜 일상 속에서 최소한의 여유는 찾고 누리며 살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이렇게 바쁘게 살아도 살림살이가 나아지지 않는데 이보다 느리게 살면 어떻게 되겠냐며 큰소리치는 사람들도 있다. 그렇다면 지금 바쁘게 살면 나중에는 시간이 더 많아질까? 경우에 따라 다르겠지만 대체적으로 아니라고 생각한다. 돈이 많아도 돈의 즐거움을 누리지 못한 채 더 많은 돈을 벌려고 욕심을 부리는 것처럼 시간도 마찬가지다. 뭔가를 할 수 있는 시간이 주어져도 바쁨에 익숙해진 우리는 그 시간을 여유있게 보내지 못하고 계속해서 바쁘게 뭔가를 하려고 할 것이다.
언젠가부터 슬로우푸드를 먹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패스트푸드가 빠르고 간편해서 좋지만 그만큼 건강에는 해롭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시간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싶다. 느리지만 신선한 음식을 직접 해먹는 게 내 몸에 건강하게 만들 듯 시간도 패스트타임이 아닌 슬로우타임을 지향할 때 오히려 더 많은 걸 얻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