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큐를 예능으로 승화시키는 직장생활 속 나만의 유머
어릴 때 나는 굉장히 화가 많았다. 하루종일 짜증을 달고 살 정도로 예민하고 날카로웠다. 그러다 언젠가부터는 성격을 바꾸지 않으면 안 되겠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로부터 몇 년간의 노력 끝에 나는 바뀌었다. 예전 모습은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유한 성격으로 변해있었다. 내가 변하니 주위도 같이 변했다. 같은 상황에서도 내가 어떻게 말하고 대처하느냐에 따라 상황도 분위기도 예전과는 많이 달라졌다. 그러한 변화를 만드는 데 큰 영향을 미친 것은 바로 적절한 유머가 담긴 나의 언행 덕분이었다.
유머를 곁들인 직장에서의 나의 상황 대처법
현재 같은 사무실에서 일하는 반장님이 있다. 퇴직을 앞둔 머리가 희끗희끗한 반장님은 옛날 사람이라 그렇다고 해야 할지 아니면 그 사람의 생각이 그렇다고 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군대 안 갔다온 사람을 되게 무시하는 경향이 있었다. 언젠가 한 번은 내가 군대를 안 가고 산업기능요원으로 대체복무를 한 것을 알게 된 반장님은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군대도 안 갔다온 놈이 이 직장에는 뭐 하러 들어왔노?"
비록 군대는 안 갔지만 뭐라도 내세워야 할 것 같아 훈련소에서 상 받은 이야기를 이렇게 자랑삼아 이야기했다.(산업기능요원도 5주 훈련은 받는다.)
"저 그래도 훈련소에서 5주 훈련 받을 때 상 받았습니다. 사람이 한 200명 있었는데 그중에서 5명한테만 주는 상을 제가 받았다고요. 대단하지 않습니까 ㅎㅎ"
반장님이 내게 그 다음에 했던 말 때문에 사무실에 있던 모든 사람들이 폭소를 했다.
"그 병신들끼리 있는 데서 상 받으면 뭐하노."
그 말인 즉슨 신체에 이상이 있어서 군대에 못 간 사람들 중에서 잘해봤자 무슨 소용있냐는 그런 뜻이었다. 물론 신체는 건강하지만 각자의 사정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대체복무를 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하지만 반장님은 이유불문하고 대체복무자 자체를 마음에 들어하지 않는 듯했다. 반장님 스타일 자체가 원래부터 호통치듯이 말하곤 했고 또 간간이 장난을 치기도 했지만 스타일 반장님의 말이 썩 유쾌하게 들리지는 않았다. 그동안 군대를 안 갔다는 것에 대해 약간의 컴플렉스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더 그랬다. 하지만 나는 이 상황도 유머로 넘겨야겠다고 생각하고 이렇게 말했다.
"그래도 병신들 중에서라도 1등하는 게 안 낫겠습니까ㅎㅎ"
반장님은 어이가 없다는 듯이 웃었다. 그러곤 더 이상 내 말에 아무런 반박을 하지 못했다. 내가 기분 나쁘게 받아들이고 되받아쳤다면 분위기가 무거워질수도 있었지만 유머러스하게 말한 덕분에 반장님과 나 그리고 같이 있던 반원들 모두가 웃으며 상황을 마무리할 수 있었다.
직장에서 있었던 또 다른 일화이다. 점심식사 후 양치질을 하고 있을 때였다. 건물 뒤편에서 바깥풍경을 바라보며 이를 닦고 있었다. 바쁘게 움직이고 있는 오른손과 달리 왼손을 가만히 늘여뜨려놓기가 허전했던 나는 왼손을 주머니에 넣은 채 양치질하고 있었다. 편안하게 짝다리도 짚고 서 있었다. 누가봐도 다소 건방진 자세였다. 그 모습을 본 나보다 한참 고참인 한 선배가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와, 태혀이 봐라. 자세 좋네. 요새 애들은 그렇게 양치하는 가배."
여기서 내가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 잠깐 고민했다. 그 선배와는 평소에 친분이 있었기에 나를 비난하거나 비아냥거리기 위에서 하는 말은 아닌 것 같았다. 장난으로 건넨 말 같아서 "죄송합니다" 하고 말하기엔 선배가 무안해할 것 같았다. 선배의 말에 어느 정도 뼈가 있는 말 같아 "뭐 어떻습니까" 하고 장난으로 넘기기도 좀 그랬다. 순간 고민을 하다가 나는 이렇게 말했다.
"오잉? 내 왼손이 언제 주머니 안에 들어가 있었지? 아이고야 깜짝 놀랐네."
이렇게 말하며 주머니 안에 있던 손을 꺼내서 희한하다는 듯이 쳐다보는 연기를 했다. 그랬더니 선배가 피식하고 웃고 지나갔다. 내가 만약 그 선배를 별 걸 지고 시비를 건다며 꼰대취급 했다면 서로가 불편했을지도 모른다. 능청스러운 나만의 유머로 상황을 더욱 부드럽게 넘길 수 있었던 게 아닌가 생각한다.
이런 유머는 직장뿐만 아니라 집에서도 효과가 있었다. 집에서 부모님이 사소한 문제로 장난인 듯 아닌 듯 투닥투닥 하고 있을 때였다. 상황을 보니 엄마 말이 맞는 것 같다고 생각한 나는 중재를 하는 척하며 은근히 엄마 편을 들었다. 아빠는 그게 서운했는지 아니면 내 말에 딱히 할 말이 없으셨는지 나보고 이렇게 말했다.
"어휴. 니는 어째 그래 엄마랑 똑같노."
조금은 감정이 상한 듯이 말하는 아빠에게 나는 이렇게 대답했다.
"내가 엄마 뱃속에서 나왔으니까 엄마를 닮았지, 그럼 누굴 닮겠어요.ㅎㅎ"
전에도 이런 비슷한 상황이 있었다. 그땐 아빠가 나보고 엄마 닮아서 똑같느니 라는 식의 말을 하면 왜 말을 그렇게 하냐며 내가 날카롭게 반응을 했었다. 그러면 아빠도 괜히 기분이 안 좋아서 집 분위기가 가라앉곤 했는데 이번은 내가 유머를 곁들여 말했더니 제일 먼저 웃음이 터진 건 엄마였다. 엄마의 웃음에 나도 덩달아 웃음이 났다. 아버지는 별 희한한 놈 다 보겠네 하는 듯한 표정으로 무심하게 있었지만 아무 일 없던 듯이 웃으며 대화를 마무리 할 수 있었다.
어머니의 잔소리도 유머로 가볍게 넘긴 적이 있었다. 나는 태어날 때부터 몸이 약하게 태어났다. 평소 건강이 안 좋은 나를 어머니는 늘 걱정하셨는데 그래서 나의 식습관에 대해 염려를 많이 하셨다. 걱정을 넘어 잔소리로 들릴 정도로 늘 음식을 가려먹으라고 얘기하셨다. 평생을 같은 말을 듣고 살다보니 나도 노이로제가 걸릴 정도로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다. 그러다가 어머니를 바꿀 수는 없으니 나를 바꾸기로 했다. 굳이 좋게 생각한다거나 긍정적으로 생각할 필요가 없었다. 유머 하나면 충분했다. 예전에는 "피자, 치킨같은 기름진 음식 먹지 마라", "밤 늦게 먹지 마라", "과식하지 마라"와 같은 어머니의 말에 그만 좀 하라며 짜증을 냈지만 이제는 이렇게 말한다.
"이제 과식 안 할라고 했는데 엄마가 과식하지 말라고 해서 그냥 과식해야겠네. ㅎㅎ"
내 말에 웃음이 터진 엄마는 그때마다 나에게 이렇게 말하곤 한다.
"과식해라이. 오늘 꼭 과식해라이. 안 하면 안 된다^^"
유머가 결여된 경직된 사람들
요즘 주위를 보면 너무나 경직된 채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다. 예능을 예능으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다큐로 받아들이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다큐를 다큐가 아닌 연쇄살인극 정도로 받아들이며 민감하게 반응하는 사람들도 있다. 이게 다 먹고살기 힘들다보니 다들 여유가 없어져서 생긴 문제라 생각한다. 이 문제에 대한 해답 중 하나로 나는 유머를 꼽는다. 사람들은 유머를 너무 어렵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큰소리로 웃을 정도로 재밌는 것만을 유머라 생각하니 타인과 웃음을 공유하기 힘들어진다. 같은 상황에서도 조금만 비틀어 생각하면 일상 속에서도 얼마든지 소소한 유머를 찾아낼 수 있다. 긍정의 힘까지도 필요없다. 같은 것도 뒤집어도 바라보고 말할 수 있는 정도의 유머만 있다면, 그렇게 노력한다면 사람과의 관계가 더 윤택해질 수 있다. 삶의 무게도 더욱 가벼워질 수 있다.
직장에서 또는 가정에서 매번 똑같이 생각하고 똑같이 말하는 우리, 오늘 하루는 어떤 말로 상대방 그리고 나를 미소짓게 만들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