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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타치는 권작가 Dec 03. 2020

내가 경쟁하지 않고 심판보는 법

작가 이외수의 책 "뚝,"에는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나온다.

저는 아이들에게 "경쟁하지 말라"라고 가르쳤습니다.
아이들이 반발하더군요.

"아버지가 가르치는 대로 하면 경쟁에 낙오되지 않겠습니까?
그러니 아버지가 가르치는 대로 따를 수 없을 것 같습니다."

그래서 제가 이렇게 말해줬습니다.
"경쟁하지 말고 심판을 봐."

이 이야기는 이외수 작가가 무릎팍도사에 출연했을 당시에도 했던 이야기다. 이러한 일화를 처음 들었을 때 참 멋진 말이란 생각이 들었다. "이야~" 하는 감탄사가 나올 정도로 괜찮은 말 같았다. 하지만 경쟁하지 말고 심판보면 되지 않느냐는 그 말을 몇 번 곱씹어보다가 문득 이런 의문이 들었다.


'그래서, 어떻게 하면 경쟁하지 않고 심판을 볼 수 있단 말일까?'


겉으로 보기엔 마음을 건드리는 말 같았지만 실제 현실에서 어떻게 적용하면 될지 의아했다. 피부에 와 닿지가 않았고 왠지 뜬구름 잡는 식의 말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성공한 사람들이 으레 하는 뻔한 말로 치부하며 한 동안 잊고 살았다. 그러다 시간이 한참이 지난 뒤에 경쟁하지 않고 심판을 본다는 말의 의미를 깨닫게 된 적이 있었다. 바로 지하철을 탈 때였다.


지하철 정거장에 들어서면 사람들이 지하철을 타기 위해 노란줄 앞에 서있다. 스피커에서 지하철이 오고 있다는 것을 알리는 알림음과 안내멘트가 나오면 사람들은 지하철을 타기 위한 준비를 한다. 달려오던 지하철이 멈추면 사람들은 남들보다 먼저 타겠다는 일념으로 앞사람과의 거리를 바짝 좁힌다. 지하철 문이 열리기 직전에 사람들은 자리쟁탈을 하기에 앞서 옆에 있는 경쟁자를 파악한다. 문이 열릴 때 "푸시시~~" 하는 그 바람소리가 마치 경주할 때 출발을 알리는 총성인 것마냥 사람들은 지하철 문이 열리자마자 앞뒤, 양옆 생각하지 않고 안으로 우루루 달려간다. 지하철 안에 발을 들여놓자마자 곧바로 레이더를 세우고 빈자리를 탐색한다. 운 좋게 바로 자리를 잡는 사람이 있는 반면 옆에서 달려오는 사람과의 경쟁에서 밀려 눈 앞에서 자리를 놓치는 사람도 있다. 자리에 앉은 사람은 승리했다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 자리를 잡지 못한 사람은 패배했다는 아쉬움의 한숨을 내쉰다. 자리라는 한정된 자원을 얻기 위한 쟁탈전이 끝나고 나면 이윽고 기차는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서서히 출발한다. 우리가 흔히 보는 지하철 풍경이다. 


지하철을 탈 때 내가 경쟁하지 않고 심판보는 법

나는 지하철을 탈 때 경쟁하지 않는다. 줄을 서지 않고 멀찌감치 뒤에 떨어져서 사람들을 구경한다. 자리를 사수하기 위한 사람들의 무언의 싸움을 바라본다. 누가 누가 이기나 심판을 보기 시작한다. 지하철 정거장에는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다양한 선수들이 줄지어 서있다. 문이 열리는 순간 시합은 시작된다. 조금이라도 먼저 발을 들이밀기 위해 앞사람 발 뒤꿈치가 닿을 정도로 바짝 붙어 걷는 사람도 있고 주위에 있는 경쟁자를 의식하며 자신만의 전략을 세우는 듯 보이는 사람들도 있다. 나는 속으로 생각한다. 


'자, 과연 누가 이길지 한번 지켜볼까나.'


대부분 선의의 경쟁을 하지만 종종 반칙을 하는 사람도 있다. 앞사람의 발을 밟아 놓고 사과 하나 없는 사람도 있고 어깨를 부딪혀놓고 미안한 기색 없이 지나가는 사람도 있다. 그런 사람들에게 나는 경고를 준다. 자리를 사수하겠다는 욕심이 과한 나머지 사람들이 아직 다 안 내렸는데도 밖에서 안으로 후벼파듯 타는 매너없는 사람도 있다. 그들에게 나는 가차 없이 옐로카드를 날린다. 지하철 역에서 선수들간의 1라운드가 끝나고 나면 나는 여유롭게 지하철에 탑승한다. 그렇게 나는 지하철 정거장에서 심판이 된다. 


누군가는 이렇게 말할수도 있다.


"심판만 보다보면 결국 아무것도 얻지 못하는 것 아닌가요?"


일리가 있는 말이다. 사실 살면서 경쟁을 안 할 수는 없다. 경쟁은 피할 수 없는 숙명과도 같다. 더군다나 요즘같이 냉정하고 팍팍한 사회에서 자기 밥그릇도 못챙겼다간 굶어죽을지도 모른다. 갈수록 인구는 늘어나는 데 반해 자원은 한정적이다. 제한된 자원을 얻고자 한다면 타인과의 경쟁은 불가피하다. 나 역시도 경쟁 속에서 산다. 지금까지도 많은 경쟁을 하며 여기까지 왔다. 이외수 작가의 아들이 말한 것처럼 경쟁에서 낙오자가 될까 두려워 이기기 위한 노력을 부단히도 해왔다. 


하지만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심판도 그 나름 의미가 있다는 점이다. 원하는 것을 얻는다는 측면에서 경쟁도 의미가 있지만 심판을 보는 것 또한 장점이 있다. 자리를 얻지 못했다고 해서 속상해하지 않아도 된다. 내 앞에 있던 사람이 밍기적거리는 바람에 자리를 놓친 거라며 욕하지 않아도 된다. 자리를 차지했다는 기쁨에 의기양양해 하는 사람들을 미워하지도 부러워하지도 않아도 된다. 왜 하필 내가 서 있는 칸에만 이렇게 사람이 많은 거냐며 운을 탓할 필요도 없고 좌석을 왜 이렇게밖에 안 만들놨냐며 세상 탓을 할 필요도 없다. 그저 뒤에서 구경할 뿐이다. 사람들의 경쟁을 편안하게 바라볼 뿐이다. 


앉을 자리는 차지하지 못했지만 서 있을 자리는 있다. 지하철에서 나는 좌석보다 입석이 더 편하다. 서서가면 운동도 되고 좋다. 옆사람을 의식하며 몸을 웅크리고 있지 않아도 된다.(어디까지나 서울이 아닌 부산, 대구 지하철 기준이다.ㅋ) 주어진 상황에서 얻을 수 있는 좋은 점을 생각하며 그렇게 서서 간다. 자리를 차지하지 못한 자의 지나친 자기위안처럼 보일지 모르겠지만 처음부터 경쟁하지 않고 심판보겠다는 생각으로 사람들을 보고 있으면 심판 보는 게 어떤 느낌인지 알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심판의 가장 큰 장점은 마음의 여유를 가짐과 동시에 새로운 것을 보고 느낄 수 있다는 점이다. 경쟁을 하지 않으니 조급해하지 않아도 된다. 조급하지 않으니 여유가 생긴다. 여유가 생기면 경쟁할 때는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이게 되고 그것이 생각을 바꾸고 행동을 바뀌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어떻게 보면 경쟁을 해서 자리를 차지하면 앉아서 간다는 편안함 하나지만 심판을 보며 서서가면 얻을 수 있는 것은 더 많다. 


선의의 경쟁은 자신을 더욱 발전시키는 시발점이 되기도 하지만 너무 경쟁에만 목매지 말자. 때로는 심판도 보자. 과도한 경쟁을 하며 속도전에 내몰린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심판을 볼 줄 아는 여유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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