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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타치는 권작가 Nov 26. 2020

복길이를 보며, 있는 그대로 인정하는 법을 배운다

우리집 고양이 복길이다. 2016년 6월쯤에 아버지가 새끼길냥이를 집으로 데리고 왔고 그날부터 복길이는 우리의 가족이 되었다. 키운 지 벌써 4년이 넘었다. 여기까지 오기까지 우여곡절이 많았는데 그중 하나가 깨무는 습관을 고치는 일이었다.


고양이는 개와 습성이 달라 몸을 만지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모든 고양이가 그런 건 아니지만 대체적으로 그렇다. 하지만 흔히들 알고 있는 것과 달리 주위를 보면 만져주는 걸 좋아하는 냥이들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SNS에 올라온 고양이 사진을 보면 한 번 쓰다듬어주면 싫어하기는커녕 오히려 더 만져달라고 머리를 부비는 고양이도 많다. 지난번에 셀프세차장에서 만난 한 고양이는 자신을 좀 만져달라며 드러누워서 배를 내밀기도 했다. 개보다 더 개같은(?) 개냥이들을 보면서 참 다양한 고양이가 있구나 생각했다.


우리가 키우는 복길이도 SNS에서 봤던 고양이들처럼 개냥이가 되길 바랐다. 먼저 와서 만져달라고 머리를 부비고 애교도 부릴 줄 아는 고양이가 되길 바랐다. 하지만 복길이는 조금 달랐다. 몸을 만지는 걸 싫어했다. 귀엽다고 살살 쓰다듬어줘도 복길이는 나의 손길을 거부했다. 그런 복길이를 보는데 속상한 마음이 들었다.


'다른 고양이들은 만지면 좋아하고 애교도 부리는데 우리집 고양이는 왜 이런 거야.'


처음에는 새끼라서 이갈이를 하는 건 줄 알았지만 1년, 2년이 지나도 변함이 없었다. 내가 습관을 잘못 들여서 손을 장난감으로 생각하고 깨무는 건가 싶어 혼을 내보기도 했다. 깨물 때마다 물을 뿌리기도 하고 손가락으로 콧등을 때려보기도 했다. 하지만 깨무는 습관은 바뀌지 않았다. 어떻게든 바꿔보려고 온갖 노력을 해봤지만 소용이 없었다. 그러다 어느 날 복길이에게 왜 자꾸 깨무냐며 혼내고 있는 내 모습을 바라보게 되었다. 그때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왜 복길이를 애교가 많은 다른 고양이와 비교하고 있는 거지?'

'왜 나는 다른 고양이의 귀여운 면만 보며 잘못한 게 없는 복길이를 계속 혼내고 다그치는 걸까?'


사람마다 성격이 다르듯 동물도 마찬가지다. 만지는 걸 좋아하는 고양이가 있고 만지는 걸 싫어하는 고양이가 있다. 애교가 많은 고양이도 없고 애교가 전혀 없는 고양이도 있다. 성격이 다 다른 건데도 나는 복길이에게 다른 고양이들처럼 만지는 걸 좋아할 것을 강요했다. 고양이의 습성을 무시한 채 더 많이 애교를 부리라며 큰소리쳤다. 애교가 많은 고양이를 기준으로 놓고 깨무는 습관이 있는 복길이 자체를 잘못된 존재로 규정지어 버렸던 것이다. 그렇게 나는 끊임없이 복길이를 다른 고양이와 비교하고 또 비교했다.


어떻게 하면 깨무는 습관을 고칠 수 있을까를 고민하다가 잘못은 복길이에게 있는 게 아니라 복길이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지 못하고 자꾸 다른 고양이와 비교하는 내가 문제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키운 지 3년도 더 지난 시점에서 겨우 이런 나의 어리석음을 깨달을 수 있었다. 그날 이후 마음을 바꾸기로 했다.


'복길이는 깨무는 습성을 가진 아이구나.'

'복길이 성격이 그런 거니까 있는 그대로를 인정해줘야겠구나.'


물론 다른 고양이처럼 만지는 걸 좋아하고 애교도 많으면 좋겠지만 어쨌든 복길이는 그런 성격의 고양이가 아니었다. 계속 바꾸려 하면 복길이도 나도 서로 스트레스만 받을 뿐이었다. 복길이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받아들이기로 했다. 다른 고양이와 조금 다를 뿐이지 틀린 게 아니라고 생각하며 바라보기로 했다. 그저 다를 뿐이라고, 복길이의 성격인 거라고 생각을 바꾼 뒤로부터는 복길이가 문제아라는 생각이 싹 사라졌다. 지금은 몇 번 쓰다듬다가 복길이가 깨물 것 같으면 미리 손을 뗀다. 복길이도 나도 너무나 평온한 요즘이다.



그런데 이게 나와 복길이만의 이야기는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세상 사람들 모두가 겪고 있는 이야기가 아닐까 생각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비교를 한다. 내가 복길이를 다른 고양이와 비교하는 것 이상으로 비교를 하곤 한다. 공부 잘하는 옆집 아들을 자신의 아들과 비교하고 돈 많이 벌어오는 능력있는, 친구의 남편을 자신의 남편과 비교한다. 자신의 부모를 돈이 많은, 친구의 부모와 비교하고 직장에서는 일을 잘하는 직원과 서툰 직원을 비교한다. 그러면서 공부 못하는 아들을, 능력이 부족한 남편을, 돈이 없는 부모를, 업무가 서툰 직원을 비난한다. 사람마다 능력이 다르고 생각이나 방식이 다른 것인데도 그것을 다른 것이 아닌 세상이 정해놓은 기준을 벗어난 사람이라며 손가락질한다. 그렇게 타인과 싸우고 갈등을 일으킨다.


더 큰 문제는 자기 자신을 타인과 비교하는 것이다. 나보다 좋은 집에 사는 사람과 나를 비교하고, 나보다 비싼 차를 타는 사람과 나를 비교한다. 나보다 예쁜 사람의 얼굴을 내 얼굴과 비교하고 나보다 더 건강한 사람과 허약한 내 몸을 비교한다. 그러면서 내가 사는 집과 내가 타는 집이 별 볼일 없다고 생각하고, 내 얼굴은 못 생겼으며 건강도 터무니 없이 약하다고 생각한다. 예쁘고 건강하고 좋은 집에 사는 그 사람이 세상의 기준이 아닌데도 말이다.


물론 비교를 잘 활용하면 나에게 성장의 밑거름이 될 수 있다. 나보다 더 나아보이는 사람을 보며 나 역시도 더 노력해야겠다고 생각하게 만들고 그럼으로써 행동을 바꾸게 만든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비교를 성장의 도구로 삼지 않는다. 자신을 비난하는 용도로 사용한다. 자신도 모르게 자존감을 깎아내리는 도구로 삼게 된다. 그 이유는, 상대방의 장점과 자신의 단점을 비교하기 때문이다.


비교는 우월감과 비굴함을 생산하기도 한다. 나보다 나아보이는 사람을 보며 비굴함을 느끼고 나보다 못해보이는 사람을 보며 우월감을 느낀다. 그렇다 보니 잘난 사람에게는 시기, 질투를 느끼며 미워하고 못난 사람에게는 그들을 더 강하게 비난하며 음지로 몰아버린다. 자신을 더욱 높여보이기 위해서다. 결국 이러한 것들이 사람관계를 힘들게 만들고 사회 전체를 어지럽힌다. 불행을 자초하는 것이 바로 비교인 것이다.




사람은 다 다르다. 생각이 다르고 말투나 행동도 다르다. 얼굴 생김새도 다르고 가치관이나 지향점 등도 다 다르

다. 그런데도 다른 것을 틀렸다고 말하며 타인의 장점만을 가지고 와서 아들에게, 남편에게, 나에게 심지어 반려동물에게까지 강요하는 것은 바람직한 행동이 아니다. 자기 눈에 좋아보이는 타인의 것들이 세상의 기준이 아니다. 상대방을 바꾸고 싶다고 하더라도 우선은 있는 그대로를 인정하는 데서부터 출발해야 한다. 나를 사랑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무작정 나를 사랑할 것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의 나를 먼저 바라보고 인정해야 이런 나도 괜찮은 사람이라고 사랑을 해줄 수 있는 것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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