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창시절, 나는 무엇이 되겠다는 목표가 없었다. 그래서 일찍이 진로를 정한 친구들이 부러웠다. 누군가는 미용을 했고 누군가는 미술을 했다. 요리를 하는 친구도 있었고 유도를 하는 친구도 있었다. 나는 아무리 생각해봐도 무엇을 하면 좋을지 알 수가 없었다. 벌써부터 자신의 꿈을 정해 달려가는 친구들이 마냥 부러웠다. '좋은 대학만 가면 뭐가 되어도 되겠지'라고 생각하며 공부에만 전념했다.
학교 졸업 후 사회생활을 시작할 때도 진로를 정하지 못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대학만 가면 인생 끝난다는 말만 믿고 공부만 했으니 스스로를 탐구할 시간이 부족했다. 일을 하긴 해야겠는데 어떤 일을 해야 할지 몰라 방황했다. 스스로가 답답했다.
나만 혼란스러운 20대를 겪어온 것은 아닐 것이다. 아마 이 시대를 살아가는, 특히 대한민국에서 살고 있는 대다수의 청소년들이 하고 있는 고민일 것이다. 다들 꿈이 없어 걱정이다.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몰라 염려한다. 우리 사회가 꿈을 가져야 한다고 강요하고 있으니 어쩌면 그런 걱정을 안 하는 게 이상하다. 그렇다면 꿈이 있으면, 그러니까 하고 싶은 일이 있는 것이 무조건 좋은 것일까? 반대로 하고 싶은 일이 없는 사람은 세상을 잘 살아가기 어려운 것일까?
꿈? 있어도 좋고 없어도 좋습니다
사람들은 꿈이 있는 게 무조건 좋은 거라 생각한다. 꼭 그렇지만은 않다. 꿈이 있으면 좋다. 하지만 없어도 좋다. 꿈이 없는 게 불안할 순 있지만 사실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 예를 들어보자. 누군가 피자가 먹고 싶어서 오늘 꼭 피자를 먹어야겠다며 피잣집을 찾는다고 했을 때 피잣집이 있으면 다행이지만 없으면 계속 찾아다녀야 한다. 제시간에 식사를 못할 수도 있고 늦어진 만큼 스트레스를 받을 수도 있다. 반대로 딱히 먹고 싶은 게 없는 사람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반드시 이 음식을 먹어야겠다고 정하지 않았기 때문에 아무 음식이나 먹어도 된다. 피자가 먹고 싶은 사람은 꼭 피자만 먹어야 하지만 피자든 뭐든 아무 음식이나 상관없다고 하는 사람은 아무 식당에 들어가서 어떤 음식을 먹어도 괜찮으니까 말이다. 꿈도 그렇다. 내가 꼭 요리를 하고 싶다고 정해놓으면 요리만 해야하지만 어떤 일을 하고 싶다고 정해놓지 않으면 아무 일이나 해도 된다. 그러므로 할 수 있는 일이 많아진다. 더 많은 걸 경험할 수 있다.
내가 어떤 일도 가리지 않고 다 할 수 있었던 이유
다양한 일을 경험하며 지내던 20대 때였다. 어느 날 어머니가 내게 말했다.
"엄마 친구 아들이 코카콜라 회사에 들어갈 거라고 준비중이라는데 그 회사 아니면 아무 데도 안 간단다. 그래서 입사지원서 넣어서 떨어지면 1년 쉬고, 또 떨어지면 또 1년 쉬고. 그렇게 몇 년을 맨날 놀고 있어서 엄마 친구가 걱정이라네."
코카콜라 회사 취직이라는 목표를 세운 것은 좋지만 그렇다고 그 회사 아니면 쳐다보지도 않겠다는 건 개인적으로 안타까워 보였다. 물론 나 역시도 어렴풋이나마 어떤 일을 하겠다는 생각은 있었으나 이 일 아니면 안 하겠다고 아예 못 박아두진 않았다. 항상 가능성을 열어두었다. 세상 모든 일이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다고 생각하며 아무 일이나 닥치는 대로 도전했다. 과일장사도 해보고 보험영업도 했다. 식품 배송, 윤활유 납품 등의 운전직 업무도 해보고 가구시공 업무도 해봤다. 공장에서 생산직으로도 일해보고 막노동도 적지 않은 기간 동안 경험했다. 호프집 및 고깃집 서빙, 피자배달, 전단지 배포, 가방 및 구두 판매 등등의 아르바이트까지 어떤 업종의 일도 가리지 않고 다했다. 내가 업종을 불문하고 아무 일이나 다 시도해볼 수 있었던 것은 꿈이 없었던 덕분에 가능했다. 내가 만약 엄마 친구 아들처럼 오로지 이 일만 하겠다고 생각했다면 이처럼 많은 일을 경험해보지 못했을 것이다.
꿈이 없는 게 더 좋다는 말이 아니다. 꿈을 가질 필요 없이 아무 일이나 대충 하라는 뜻도 아니다. 하고 싶은 일이 있으면 목표달성을 위해 일찍이 배우고 익힐 수 있어 좋다. 반대로 하고 싶은 일이 없으면 아무 일이나 경험해 볼 수 있어 좋다. 그러니 꿈은 있으면 있는 대로 좋고 없으면 없는 대로 좋은 것이다.
영화 <삼진그룹 토익반>에는 다음과 같은 장면이 나온다. 회사 사원인 심보람(박혜수)은 회사에서 부장으로 근무하다가 암 진단을 받고 병원에서 치료 중인 봉현철(김종수) 부장을 찾아가 회사를 그만두겠다고 말한다. 그런 사원에게 부장이 말한다.
- 하고 싶은 거 해.
- 저는 제가 뭘 하고 싶은지 모르겠어요.
- 좋은 걸 못 찾겠으면 그럼 아무거나 해, 아무거나. 뭐 그러다 보면 하나 걸리지 않겠어?
- 그냥 가만히 있으면 안 돼요?
- 그럼 재미가 없잖아
하고 싶은 게 있으면 그걸 하자. 하고 싶은 게 없으면 아무거나 해보자. 뭐라도 하다 보면 영화 속 부장의 말처럼 뭐 하나 걸리는 게 있을 테니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