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이 아파 힘들 때 힘과 용기를 주었던 이야기 한 편

by 기타치는 권작가

한창 몸이 안 좋아서 힘들 때 위로가 많이 되었던 책이 한 권 있습니다. 바로 김혜남 작가의 책 《오늘 내가 사는 게 재미있는 이유》입니다. 정신과 의사인 저자가 15년간 파킨슨병을 앓으며 깨달은 것들을 이야기하고 있는 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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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파봐야 아픈 사람의 마음을 안다고, 아픈 사람의 이야기라 그런지 공감되는 부분이 많았는데 여러 이야기들 중 제가 한창 병고에 시달렸을 때 현재의 모습에 감사하게 하고 용기를 북돋아주었던 이야기가 한 편 있습니다. 각종 질병으로 힘들어하고 있을 많은 분들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될 수 있을까 싶어 소개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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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1월 3일 아침 출근하려는데 이건 아니다 싶었다. 병이 조금씩 악화되어 그렇게 미뤄 왔던 치료제인 레보도파를 사용한 지 10개월째였는데 더 이상 환자를 진료하는 건 무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환자들에게 한 달만 쉬어야 할 것 같다고 양해를 구하고 출근을 포기했다. 첫 아이를 유산하고, 어렵게 두 아이를 낳고 키우는 와중에도 결코 포기한 적이 없는 출근을 내려놓은 것이다. 하지만 바람과는 달리 증상은 더욱 악화되었고 결국엔 병원 문을 닫고 체질 개선과 요양을 목적으로 제주도에 내려갔다.


선흘리에 있는 조그만 집에서 혼자 머무르며 치료에만 집중했는데 처음에는 진료도 그만두고 공기 좋은 곳에 내려가서인지 병세가 호전되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점점 몸을 움직이기가 힘들었다. 레보도파 약효의 지속 시간이 세 시간밖에 안 되어 하루의 반 정도는 누워서 약 먹을 시간이 되기만을 기다려야 했고, 땀이 비 오듯 쏟아져 하룻밤에도 옷을 세 번 정도 갈아입어야 했다. 게다가 약 기운이 떨어지면 자율신경계가 깨져서 심박동수가 120을 넘고, 몸을 움직일 수가 없어 돌아눕기도 힘들고, 이불이 무겁게 느껴져서 발로 차 내려고 해도 다리가 뻣뻣해 그것도 여의치 않았다. 다리를 1센티미터 옆으로 옮기는 것조차 내 맘대로 되지 않았던 것이다. 누군가 파킨슨병을 묘사할 때 온몸을 밧줄로 꽁꽁 묶어 놓고는 움직여 보라고 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했는데 그 상태를 직접 경험하는 것은 커다란 고통이었다.


가장 큰 문제는 화장실이었다. 파킨슨병 환자들의 경우 소변이 금방 마려워 화장실에 자주 가는데 밤에도 예외는 아니다. 겨우 눈을 붙였는데 소변이 마려워 잠을 깨고 화장실에 갔다 오면 한두 시간 잠들었다가 다시 화장실에 가는 일이 반복되었다. 그날도 그랬다. 새벽 한 시쯤 소변이 마려워 눈을 떴다. 힘겹게 일어선 다음 화장실에 가려고 발을 떼는데 몸이 앞으로 쏠리면서 꽈당 넘어질 뻔했다. 분명 내 다리인데 내 마음대로 움직여지지가 않았던 것이다. 화장실이 바로 코앞에 있는데 도저히 거기까지 갈 수가 없었다. 땀을 뻘뻘 흘리며 화장실 쪽을 바라보며 움직이려다 앞으로 넘어지길 몇 번, 이대로 주저앉아 오줌을 싸 버릴까 싶었다. 다 큰 어른이 바지에 오줌을 싸게 될 줄이야. 비참하고 고통스러운데 집에 나 혼자뿐이니 더 막막했다.


그러다 화장실 문을 바라보는 대신 발을 가만히 쳐다보았다. 그리고는 발을 한 발짝 천천히 떼었다. 신기하게도 발이 움직여졌다. 발을 쳐다보면서 다시 한 발짝 움직였다. 그렇게 한 발짝 한 발짝 나아가다 보니 어느새 화장실에 도착해 있었다. 보통 때면 2초 만에 갈 수 있는 화장실을 가는 데 5분 넘게 걸리긴 했지만 도착해서 볼일을 봤으니 그러면 된 것 아닌가.


'아, 한 발짝이구나.'


내가 가려는 먼 곳을 쳐다보며 걷는 게 아니라 지금 있는 자리에서 발을 쳐다보며 일단 한 발짝을 떼는 것, 그것이 시작이며 끝이다. 그렇게 한 발짝 한 발짝 내딛는 데 집중하다 보면 어느새 목적지에 도착해 있는 나를 발견하게 되는 것이다. 흔히 높은 계단을 오를 때 저 위를 보고 가면 못 올라간다는 말이 있다. 올라가다가 어디까지 있나 확인해 보면, 계단 끝까지 가려면 아직도 멀었다는 사실에 절망하여 주저앉기 때문이다. 주저앉아 언제쯤 저 끝까지 갈 수 있을까 생각하다 아예 올라가기를 포기하게도 된다. 그러나 도저히 못 갈 것 같은 순간에도 발을 쳐다보며 한 발짝 떼는 것은 언제든 가능하다. 그리고 계단 끝을 보며 올라갈 때는 “힘들다”라는 소리가 절로 나오고 올라가는 일 자체가 고통스러운데, 신기하게도 발을 쳐다보고 한 발짝을 떼는 데 집중하면 힘들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온 신경이 그저 한 발짝을 내딛는 데만 집중되기 때문이다.


(이후 생략)




용기를 내어 한 발짝만 더 내디뎌보라는 말로 이야기를 끝을 맺고 있으나 제가 말하고자 하는 내용은 여기까지면 충분하여 뒷이야기는 생략했습니다. 이 이야기를 읽고 어떤 생각이 들었을지 모르겠습니다. 제가 느낀 건 이랬습니다.


'저자는 화장실을 가는 것조차 쉽지 않은데 그래도 나는 내 두 다리로 걸어서 화장실은 마음대로 갔다올 수 있구나..'


오늘로서 백신 부작용 306일째입니다. 그동안 머리가 아프고 어지럽고 심장이 두근거리고 가슴이 답답하고 다리가 저리고 아파서 괴롭고 슬프고 죽고 싶기도 했지만 그 와중에도 저는 김혜남 작가의 이야기를 떠올리며 생각했습니다. 걸을 수 있음에 감사하고 어디든 갈 수 있어 감사하고 편히 잠을 잘 수 있어 감사하고 맛있는 음식을 먹을 수 있어 감사하고 세상을 볼 수 있어 감사하고 음악소리를 들을 수 있어 감사하다고 말이죠.


힘들수록 나보다 못한 사람을 봐야 한다고들 말합니다. 건강한 사람을 바라보며 부러워해봤자 내 마음의 고통만 더 커질 뿐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러므로 지금 처한 내 상황이 힘들면 힘들수록 위가 아닌 아래를 봐야 합니다. 그렇다고 타인의 고통을 보며 힘을 내자는 말은 아닙니다. 나보다 우월해보이는 사람과 비교하면 비굴해지기 쉽고 나보다 못해보이는 사람과 비교하면 교만해지기 쉽기 때문에 사실 비교 자체가 좋은 것은 아닙니다. 결국 비교는 나 자신과 해야 하는 게 아닐까 싶습니다. 지금보다 더 아픈 나 자신과 나를 비교하며 그나마 이 정도인 게 다행이라고 생각해본다면 오늘에 감사하는 마음이 생기고 내일을 살아갈 용기를 얻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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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발짝의 중요성을 말하고 있는 이 이야기가 특히 공감이 되는 이유는 저 역시도 비슷한 경험을 한 적이 있기 때문입니다. 2년 전쯤 깊이가 2m인 수영장을 처음 갔을 때였습니다. 물이 가슴팍까지 오는 낮은 깊이의 수영장에서만 줄곧 수영을 했던 터라 발이 닿지 않는 깊이 2m의 수영장은 제겐 공포 그 자체였습니다. 첫 날은 발만 담그다 나왔고 둘째 날은 몸 전체를 담갔으나 몸에 물칠만 하고 나왔던 것 같습니다. 그 다음날엔 겨우 용기를 내서 몇 번 헤엄을 쳐봤지만 10m도 전진하지 못하고 코스로프를 붙잡고 숨을 헐떡거렸지요.


깊이도 깊이지만 50m나 되는 거리도 큰 난관이었습니다. 저 먼 곳까지 어떻게 수영을 해서 갈 수 있을지 막막했던 것입니다. 매일 연습을 해도 50m의 반에 반도 가지 못하고 멈춰 섰습니다. 어떻게 하면 저 먼 곳까지 갈 수 있을지 고민을 하다가 방법을 바꿔보기로 했습니다.


'1m만 나아가보자.'


50m를 가야한다고 생각하며 수영할 때는 숨이 차고 무섭기도 해서 자꾸 중간에 멈췄지만 딱 1m만 움직이자고 생각을 하니 좀 더 편안한 마음으로 수영을 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한 마음가짐으로 며칠동안 꾸준히 연습한 결과 결국 저는 50m를 한 번도 쉬지 않고 완주할 수 있었습니다. 이후 다른 어떤 일을 할 때도 마음처럼 잘 되지 않을 때면 생각합니다. 한 걸음만 나아가자고, 한 개씩 쌓아올려보자고 말입니다.



백신 부작용으로 매일을 고통 속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우리 눈에 잘 보이지 않을 뿐 저마다의 증상을 겪으며 버텨가고 있는 사람들이 생각보다 많습니다. 마땅한 치료방법도 없이 하루하루를 견뎌내고 있는 사람들에게 필요한 것이 바로 이 1m가 아닐까 싶습니다. 왜 백신을 맞아서 이 모양 이 꼴이냐며 분노하고 원망하고 후회해도 바뀌는 건 없습니다. 괴롭기만 할 뿐입니다. 고로 후퇴밖에 안 됩니다. 당장은 원인 모를 통증 때문에 괴롭고 힘들겠지만 우리는 나아가야 합니다. 단단한 아스팔트 바닥에서도 새싹이 돋아나듯 숱한 고난 속에서도 우리는 희망과 감사라는 파릇파릇한 싹을 틔울 수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건강을 되찾아서 다시 평범한 일상을 누릴 수 있기를 진심으로 희망합니다. 당신의 1m를 응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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