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과를 찾아갔지만 믿음이 잘 안 갑니다

by 기타치는 권작가

지금까지 정신건강의학과를 가본 적이 딱 한 번 있었다. 내 마음을 털어놓을 수 있는 누군가가 필요했다. 사실 정신건강의학과를 찾아가게 만든 결정적인 계기는 그 당시 만나던 여자 친구 때문이었다. 여자 친구를 만나면서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다. 연인과의 싸움은 흔한 일이지만 내가 겪은 일은 결이 조금 다른 싸움이었다.


그녀를 만날 당시 그녀는 교사였고 나는 백수였다. 국립대를 나온 그녀와 달리 나는 고졸이었는데 그녀는 대학을 안 나온 나를 못마땅해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내가 자주 자격지심을 느끼곤 했다. 그녀의 사소한 말에도 예민하게 받아들이고 스트레스를 받았다. 특히 그녀가 나를 힘들게 했던 것은 내가 하는 말을 일일이 고치려고 하는 습관이었다. 조금 틀리게 말해도 알아들을 수 있는 말을 그녀는 정확하게 짚고 넘어가려 했다. A라고 말하든 B라고 말하든 알아 들었으면 이해하고 넘어가줬으면 좋겠는데 그걸 꼭 '그건 A가 아니라 B야' 라는 식으로 굳이 고치려 했다. 처음엔 그러려니 했지만 반복이 되다보니 나도 점점 화가 났다. 그런 식으로 말꼬리를 잡히다 보니 속으로 '그래, 너 참 잘났다.'라는 생각이 들었고 이런 생각을 하다보니 그녀가 조금만 생소한 단어를 사용하거나 사자성어를 인용해서 말하는 것까지도 꼴사납게 보였던 것이다. 답답한 마음에 지인들에게 하소연도 해봤지만 그것만으로는 속이 풀리지 않아 정신건강의학과를 찾아갔다. 의사에게 말했다.


"여자 친구가 자꾸 말을 고치고 가르치려고 해요. 사소한 것도 바로 잡으면서 나를 가르치려 하고 또 가끔은 어려운 사자성어를 쓰곤 하는데 괜한 자격지심때문인지 사자성어를 쓰거나 생소한 단어를 말할 때마다 재수가 없어요."


의사가 말했다.


"어떤 어려운 말과 사자성어를 쓰는지 구체적으로 얘기해보세요."


기억나는 것들에 대해 얘기했다. 내 말을 들은 의사는 이렇게 말했다.


"그건 그렇게 어려운 단어나 사자성어가 아니에요."


예상치 못한 답변이었다. 내 생각에 먼저 공감해주고 내 마음을 어루만져줄 거라 생각했는데 의사는 전혀 다른 이야기를 했다. 순간 짜증이 났고 감정이 확 상해버렸다. 그게 어려운 사자성어인지 아닌지를 판단해달라고 정신과 의사를 찾아간 게 아니었다. 쉬운 사자성어라는 건 나도 안다. 하지만 그냥 내가 짜증이 난다는 말이다. 쉬운 표현도 많은데 굳이 어려운 말을 쓰며 잘난 척하는 것처럼 보이는 그녀가 꼴사납다는 말이다. 교사라는 타이틀을 가진 콧대 높은 여자 친구에 비해 나는 대학도 안 나오고 직업도 변변찮은 상황이라 그녀의 사소한 말 한 마디에도 자격지심을 느낀다는 게 현재 나의 심정이라는 것이다.


옳고 그름을 가려달라고 찾아간 게 아니다. 이런 내 마음을 좀 봐달라는 뜻에서 간 것이다. 그런데 의사는 내 감정을 먼저 들여다보고 이해해주기 전에 그런 단어나 사자성어들이 어려운지 아닌지를 먼저 판단하고 얘기했다. 그러곤 그게 그렇게 어려운 말들이 아니니 내가 너무 예민하게 받아들이는 거라고 얘기했다. 병원을 나오면서 생각했다.


'어디 뭐 내 성격이 예민한 걸 내가 몰라서 찾아간 줄 아나? 나도 압니다. 아는데 이런 내가 답답하다고요!!'


화가 나서 혼자 이렇게 중얼거렸다.


"그럼 그렇지 뭐, 부유한 환경에서 공부만 열심히 해서 의사가 된 사람이 뭘 알겠어!"


사실 예전부터 정신과 의사를 신뢰하지 않았다. 그런 데는 이유가 있다. 부유한 환경에서 공부만 열심히 해서 의사가 된 사람들이 모진 풍파를 맞아오며 살아온 사람들의 마음을 어떻게 공감할 수 있느냐 하는 의구심 때문이다. 고기도 먹어 본 사람이 맛을 안다. 아파 본 사람이 아픈 사람의 심정을 이해할 수 있다. 인생 경험이 많고 어려움을 많이 겪어본 사람이 힘들고 어려운 사람의 심정을 헤아릴 수 있는 법이다. 그에 반해 의사라는 직업을 가진 사람들은 대체적으로 순탄하게 살아왔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아픔이 많은 사람의 심정을 이해하지 못한다고 생각한다.


의사인 사람들은 대학교를 졸업하면 대학원을 나오고 대학원 졸업후에는 유학을 가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이후에는 병원을 개업할 텐데 이 모든 것이 가능한 것은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는 집안의 자녀라는 뜻이다. 부유하진 않더라도 공부에만 집중할 수 있도록 경제적 여건은 된다는 말이다. 그렇게 공부만 하고 살아온 사람이 어떻게 다양한 상황 속에서 괴로움을 겪고 있는 사람들의 심정을 헤아릴 수 있을지 솔직히 미심쩍다. 물론 아무리 공부만 하고 살았어도 그 과정속에서 누구나 겪을 법한 인생고가 없었겠냐마는 어쨌든 의사라는 직업을 가진 사람이 살아온 길은 평범한 직장인이 살아온 삶과는 환경부터가 다르다고 생각한다.


의사라는 직업은 사회 통념상 엘리트 직업군에 속한다. 좋은 환경에서 온실 속 화초처럼 공부만 한 사람들이 이 시대를 살아가는 대부분의 평범한 사람들의 아픔에 얼마만큼 공감할 수 있다는 말인가? 사실 이건 내가 가진 편견이라고도 생각한다. 인정하는 부분이다. 허나 단순히 좋은 환경에서 고생 없이 공부만 했다는 사실만으로 이러한 편견을 가지고 있는 건 아니다. 책으로 공부한 이론으로 사람의 마음을 어떻게 치유할 수 있는 건지도 솔직히 믿음이 안 간다.


인체를 치료하고 수술하는 의사에게는 이론이 중요할 것이다. 여러 치료 사례와 과학적 근거를 토대로 몸을 치료하는 것은 상당히 중요하다고 본다. 하지만 사람의 마음을 다루는 정신건강은 다르다. 눈에 보이지도 않고 어떠한 수치로 나타낼 수도 없다. 이러한 사람의 마음을 책에서 읽은 치료방법이나 연구 결과로 치료한다는 것이 얼마나 효과가 있는 건지 모르겠다. 이러한 생각을 더 강하게 가지게 된 건 전 여자 친구의 영향도 컸다.



심리상담학과를 전공한 그녀가 내가 한 말

전 여자 친구, 그러니까 나를 정신건강의학과로 가게 만들었던 그녀는 심리상담을 전공했다. 어느 날 내가 일 때문에 힘이 들어 그녀에게 하소연을 한 적 있었다. 내 얘기를 찬찬히 듣던 그녀는 이렇게 말했다.


"자기가 선택한 길이니까 자기가 견뎌야지"


말을 듣는 순간 뻥지고 말았다. 난 그저 내 얘기를 들어주길 바랐고 괜찮다고 위로해주길 바랐는데 그녀는 아무렇지 않은 듯이 이렇게밖에 말을 안 했다. 표정과 말투에는 고생을 한 번도 해보지 않은 듯한 느낌이 물씬 배어있었다. 그녀 스스로도 고생 없이 순탄하게 자랐다고 말을 했으니 뭐.


견뎌라는 그녀의 대답이 틀린 말은 아니었지만 어쨌든 이해와 공감이 전혀 없는 그 말은 상당히 충격적이었다. 심리상담학을 전공했다고 해서 공감 능력이 뛰어난 건 아니겠지만 그래도 이건 심하다 생각했다. 심리 공부를 하지 않은 보통의 지인들보다도 더 못한 대답이었다. 더군다나 그녀의 직업은 상담교사였다. 내가 뻥질 수밖에 없는 이유다.


전 여자 친구와 정신과 의사와의 이야기만 가지고 다른 심리상담사와 의사들도 다 똑같다고 생각해서는 안 될 것이다. 분명 사람의 마음을 잘 치유하는 좋은 상담가와 의사도 많을 것이다. 내가 겪은 한 부분만으로 전체를 규정하는 것은 오류라고 생각은 하지만 내가 가진 이러한 편견이 쉽사리 옅어지지는 않는다. 굳이 고치려고 하진 않는다. 아무렴 어떤가. 그저 내 생각일 뿐인데.


가끔 그런 생각을 해본다. 심리상담사나 정신과 의사는 고생을 다 해본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웬만한 인생고를 다 겪어본 사람이 그런 자리에 앉아야 한다고. 공부를 많이 하거나 관련 전공을 나온 사람, 자격증을 취득한 사람들이 그런 직업을 가지기에 현실적으로는 어려운 일이지만 그냥 그런 생각을 해볼 때가 있다. 조물주가 하늘에서 내려다보고 온갖 어려움을 다 겪은 사람을 상담사나 정신과 의사 자리에 앉히게 만드는 그런 상상.


사람의 마음을 치유하는 방법은 경청과 공감이다. 경청하려면 공감할 수 있어야 한다. 공감은 함께 느끼는 것이다. 함께 느끼려면 같은 경험을 해봐야 안다. 비슷한 경험이라도 해본 사람이 어려움을 겪고 있는 타인의 아픔에 공감할 수 있다. 결국 공감은 경험에서 우러나온다고 볼 수 있다.


어쩌면 세상 경험이 많고 평소 삶에 대한 고민을 많이 해오며 살아온 지인이 최고의 심리상담가 일지도 모른다. 훌륭한 정신과 의사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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