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전 처음 수입차가 타고 싶어진 이유

by 기타치는 권작가

내 차는 SM3다. 오래됐다. 09년식이다. 주행거리 200,000km를 찍었다. 남자라면 보통 꿈의 차가 있기 마련인데 나는 없어서 지금 이 차를 앞으로 10년은 더 탈 생각이었다. 그래서 지인들에게 "한 300,000, 400,000km 찍지 뭐." 하고 농담식으로 말하곤 했다. 그랬던 내가 차를 바꾸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는 계기가 있었다.


소개팅 자리에서였다. 밥을 먹고 카페에서 얘기를 나눈 후 밖으로 나왔다. 뭐타고 왔냐고 물었더니 차를 가지고 왔단다. 나도 차를 가지고 왔다고 했다. 마침 우리 차가 근처에 있었다. 차가 있는 쪽으로 함께 걸어갔다. 그녀는 "저 먼저 갈게요." 하더니 차 문을 삐빅~ 하고 열었다. 차를 봤다. 순간 속으로 헉 하고 놀라고 말았다. 그녀의 차는 다름 아닌 벤츠였기 때문이다.


벤츠? 그래 탈 수 있다. 요즘 길거리에 차고 넘치는 게 외제차니까. 그런데도 나는 그녀의 차를 보고는 순간적으로 맥이 풀렸다. 개팅으로 나온 여성이 벤츠를 타는데 남자인 내가 14년도 더 지난 차를 타고 있다는 생각에 순간적으로 소위 쭈굴이가 되고 말았던 것이다.



지인에게 전화를 했다. 자초지명을 설명했다. 지인이 대답했다.


"야, 벤츠는 어렵다."


예상한 대답이었다. 다른 지인인 L에게 전화했다. 내 얘기를 듣던 L은 길게 한숨을 푹 내뱉더니 말했다.


"아 근데 여자가 벤츠면 어렵다..."


의외였다. L만큼은 다른 얘기를 할 줄 알았기 때문이다. L과 연애상담을 할 때가 종종 있었다. 내가 마음에 드는 여자가 있는데 시도해도 어려울 거 같다고 얘기를 하면 L은 "뭐 어때? 해보면 되지."라고 말하며 항상 나에게 자신감을 북돋아주곤 했다. 그랬던 L이 평소와는 다르게 벤츠타는 여자는 어렵다고 말하며 다소 회의적인 반응을 보인 것이다.


신분이 벽을 느꼈다고 표현하면 너무 자격지심이 되는 걸까? 아무튼 그런 걸 태어나서 처음 느꼈다. 아 물론 외모로 느껴본 적은 있다. 내가 다가갈 수 없을 정도로 예쁜 여성들을 보며 유전자의 차이를 실감한 적은 많았다. 하지만 돈에 관심이 없는 내가, 물욕 자체가 별로 없는 내가 비싼 차를 타는 여자를 보며 자격지심 비슷한 것을 느낀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물론 그녀는 남자가 무슨 차를 타든지 크게 신경쓰지 않을 수도 있지만 확률적으로는 어렵다. 사람이라면 보통 자신의 기준에 맞춰 상대를 보기 마련이니까 말이다. 때문에 자신이 외제차를 타면 그 기준에 맞춰 상대방의 차를 보는 게 일반적이다. 그래서 '그녀는 외적으로 사람을 판단하지 않을 거야. 내면을 볼 줄 아는 지혜로운 여자일 거야.'라며 마냥 천진난만하게 생각할 수는 없다. 내가 적극적인 스타일은 아니기에 그녀의 차가 보통의 국산차였어도 얼마나 적극적으로 다가갔을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그녀의 차가 벤츠라는 사실에 최소한의 사기마저 꺾여버린 것은 사실이다.



이제 나도 차를 바꿔야 하나 싶은 생각이 강하게 들기 시작했다. 이성의 마음을 얻기 위한 목적 때문만은 아니다. 나는 분명 남다른 재주가 많은 사람인데 내 차가 오래됐다는 이유로 나라는 사람의 능력, 이미지 따위가 저평가 될 수 있다는 게 싫었다. 오래된 차를 타는 사람보다는 신형차를, 저렴한 차보다는 비싼 차를 타는 사람이 왠지 더 있어보이는 건 사실이니까 말이다.


그렇다고 비싼 차를 타면서 실제 능력보다 더 있어보이길 바라는 건 아니다. 불특정다수에게는 관계없지만 이성에게는 그것도 부담이다. 예를 들어 내가 외제차를 탄다고 했을 때 그런 나를 보며 돈이 많은 사람으로 상대방이 기대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돈을 보고 접근하는 사람은 좀 별로다. 한 지인은 내게 "너가 돈이 좀 있다고 했을 때 그것 역시 너가 상대에게 어필할 수 있는 하나의 무기가 될 수 있잖아?"라고 말하기도 했지만 나는 잘 모르겠다. 겉이 아닌 속을 볼 줄 아는 진실된 사랑을 바라는 건 아닌데 능력 보고 오는 사람, 아직은 모르겠다. 돈이 많아보지 않아서 모르겠으니 일단 이건 패스.


차가 오래 되니 잔고장도 많이 발생하는데(물론 고치면서 타는 게 백 번 이익이지만) 이건 차를 바꾸고 싶은 핑계일 뿐이고, 사실은 이 나이쯤 되고 보니 내 차에 다른 사람들을 태울 때 상대방이 내 차를 보고 어떻게 생각할지 자꾸 신경이 쓰인다. 참고로 나는 88년생, 36살이다. 이 나이쯤 되면 SM5, K5, 소나타 정도의 중형차는 타야 될 것 같은데 말이다. 나보다 나이가 더 많아도 작은 차를 타는 사람들도 많지만 어쨌든 요즘따라 그런 걸 느낀다. 이런 내가 씁쓸하지만 어쩌겠는가.



차를 알아보기 시작했다. 중고차를 알아봤다.


'국산차 중에서는 그랜저 정도는 타야 폼이 좀 나겠지? 아 근데 지금 모델은 디자인이 마음에 안 든단 말이야. 그래, 제네시스로 가자. 역시 우리나라 차중에는 제네시스가 간지지. 좋아. 한번 볼까? 헉, 뭐지? 가격이 6,000만 원이나 하네. 와 이 돈이면 차라리 외제차를 타지.'


그래서 알아보게 된 게 중고 외제차였다. 처음엔 벤츠가 마음에 들더니 나중엔 BMW가 더 눈에 들어왔다. 그렇게 해서 돌고 돌아 결국 최종적으로 선택한 차량이 바로 BMW 5시리즈였다. 굳이 외제차를 고집한 이유는 가오, 즉 폼을 좀 내기 위해서였는데 소위 허세를 부리고 싶었던 것이다. 예전부터 이런 생각을 종종 했었다.


'언젠가는 외제차 타면서 허세를 한번 부려봐야 하는데 말이지.'


허세 가득한 그 꿈을 이제 이룰 수 있는 기회가 온 것이다. 비록 중고라도 말이다. 문제는 역시나 돈이다. 내가 본 모델의 가격은 약 6,000만 원. 처음엔 4,500만 원대의 차를 생각했는데 고르다 보니 결국 이 금액까지 와버렸다. 현재 내 수중에 있는 돈이 얼마 정도 되는지 확인했다. 얼추 6,000만 원이 되기는 하나 예금, 적금을 다 깨서 빡빡 긁어모아야 되는 돈이었다.


고민을 했다. 내가 한 1억이 있어서 그 중에 반을 차 사는 데 쓰는 거라면 모르겠지만 전 재산이 6,000만 원인데 그 돈을 차에 다 때려 박는다? 아무리 허세를 부린다지만 이건 뭔가 아닌 거 같았다. 차 구매 시 반은 일시불 하고 반은 할부로 할까도 생각했지만 할부원금과 기타 유지비 등을 계산해보니 내 월급으로는 빠듯했다. 할부가 끝날 때까지는 저축을 하나도 할 수 없는 것이었다. 이래서 사람들이 국산차를 타는구나, 외제차를 몰라서 못 타는 게 아니었구나 싶었다.


주위에 외제차를 타는 분들에게 의견을 물었다. 찬성과 반대가 거의 반반이었다. 차 구입을 찬성하는 사람들보다는 반대하는 사람들이 해준 말이 더 와 닿았는데 먼저 아우디를 타다가 최근 BMW 신차를 뽑은 지인 L의 말은 이랬다.


"네가 오래된 차를 타는 대신 만약 수중에 한 10억이 있다고 생각해 봐. 그럴 때 다른 사람들이 차가 오래됐다고 말하면 과연 위축이 될까?"


그럴 경우 전혀 위축되지 않을 것 같았다. 왜? 나에겐 10억이 있으니까. 돈이 없어서 못 사는 게 아니니까. 지금 사고 싶은 수입차를 10대를 사고도 남을 돈을 가지고 있으니 오래된 차를 타도 마음이 든든할 것 같았다.

그러니 당장 어떤 차를 타느냐가 중요한 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또 다른 지인은 이렇게 말했다.


"내가 32살 때 멋도 모르고 친구들 따라서 지금 타는 BMW를 신차로 할부 구매했는데 차 만족감은 되게 좋아. 좋은데 시간이 조금 지나고 나니까 후회가 되더라고. 내가 이제 마흔쯤 되고 보니까 차를 먼저 살 게 아니라 집을 먼저 사는 게 더 좋겠다는 생각이 든 거지. 그러니까 우선 순위가 차보다는 집인 거야."


또 다른 지인 J가 한 말도 기억에 남는다.


"허세? 좋지. 그런데 말이야. 네 얘기를 듣고 보니 지금 너가 차를 사는 건 진통제가 될 뿐 치료제는 아니야."


이런 얘기들을 며칠간 꼽씹으며 생각하다가 결정을 했다. 차를 사지 않는 것으로 말이다. 이 많으면 모를까 세 하나를 위해서 또는 주변 사람들로부터 좀 더 있어 보이기 위해 전 재산을 털어서 차를 사는 건 맞지 않는 것 같았다. 잘한 선택인 것 같다.


그래도 이번에 하나 느낀 게 있다면 돈에 관심을 좀 가져야겠다는 생각이다. 예전에 모임에서 사람들과 함께 돈에 관한 얘기가 나온 적 있었는데 돈에 관심 없다고 말하는 내게 누군가 이렇게 말했다.


"지금은 모르겠지만 나중에는 돈이 없어서 어려움을 겪는 순간이 올 수 있어요. 집을 구해야 하는 경우가 생길 수도 있고 병원비가 많이 필요하게 되는 상황이 있을 수도 있어요. 또 좋아하는 사람이 있을 때 내가 돈이 없어서 만날 수 없는 그런 일도 생길 수 있단 말이죠. 그래서 돈은 필요해요."

그 말에 나는 속으로 콧방귀를 끼며 이렇게 말했다.


"제가 돈이 없어서 싫다고 하는 그런 여자는 저도 만날 생각 없어요. 그러니까 저한테는 아무 문제가 없어요."

웃긴 건 이 말을 뱉은 지가 1년도 채 안 됐다는 것이다. 그렇게 멋모르고 허풍을 치던 내가 벤츠녀 때문에 수준이 맞니 안 맞니, 차를 바꾸니 마니 했으니 스스로에게 괜히 민망하다. 지금 생각하면 내가 뱉은 말이 너무나도 천진난만하게 느껴진다. 돈을 보고 오는 여자는 지금도 생각없지만 서로 진심으로 좋아하는데 여자집에서 내가 돈이 없다는 이유로 우리의 만남을 반대한다면 어떨까? 그런 일이 없으란 법 없다. 뭐든 그렇다. 내가 돈이 있는데 안 하는 것과 없어서 못 하는 것은 엄연히 다르다.



지금껏 돈 욕심없이 살았다. 물욕이 크게 없으니 돈에 관심이 없었다. 결혼을 안 했기에 내집마련과 같은 큰 돈이 들 일이 없으니 돈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는 게 더 정확할 것이다. 나는 물질보다는 자기계발을 통한 지적성장이 삶의 중요한 가치라고 생각했고 사람들과 함께 있으면서 돈 얘기가 나올 때면 '너희들 다 돈밖에 모르지? 나는 너희들과 다르게 돈 욕심이 없는 사람이야!!'라고 속으로 생각하며 내가 무슨 해탈이라도 한 사람마냥 특별한 사람임을 은근히 어필하곤 했다. 그래서 스스로의 발전 없이 오로지 돈만 밝히는 사람들을 보면서 다 돈에 미친 것 같다고, 세상이 이상하게 돌아간다며 쓴소리를 날리곤 했다.

그런 말들이 얼마나 멋모르고 한 말이었는지 지금에서야 실감을 하게 된다. 이제는 생각이 좀 바뀌었다. 어쨌든 돈이 있어서 나쁠 건 없다. 돈이 너무 많아 사람이 향락에 빠져사는 게 문제가 될 수 있을 뿐 돈이 없는 것보다는 있는 게 더 행복할 수 있다. 확률적으로 그렇다는 말이다.


차를 사야겠다고 마음 먹고 외제차를 한창 검색할 때만 해도 길거리에 그렇게 차밖에 안 보이더니 차 구매에 대한 생각을 버리고 나니 무슨 차가 지나가든 신경을 덜 쓰게 된다. 내 차를 보면 괜히 비교가 돼서 똥차처럼 보이고 마음에 안 드는 부분밖에 안 보였는데 다시 보니 그래도 아직 탈 만하구나 싶다. 14년 탄 차치고는 외관도 깨끗하고, 잔고장이 조금씩 발생하긴 하지만 그래도 큰 문제 없이 잘 굴러간다. 나와 함께 하는 그날까지 관리 잘해서 타야지.




시간이 좀 지나고 나니 그녀가 벤츠를 타든 말든 크게 개의치 않게 된다. 왜? 나는 재주가 많은 사람이니까. 여러 능력 중 최고로 꼽을 수 있는 건 역시 책 출간 이력이다. 수입차는 돈이 있으면 살 수 있지만 책은 돈 있어도 써지는 게 아니다. 대한민국에서 책 쓰는 사람이 1%밖에 안 된다고 하니 나는 대한민국 1%인 사람이다. 충분히 자랑스러워 해도 된다. 앞으로 능력을 더 키워야겠다. 남들이 뭘 가지고 자랑을 하든 꿀리지 않을 나만의 무기를 계속해서 개발해 나간다면 언제 어디서든 당당할 수 있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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