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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타치는 권작가 Jan 23. 2024

비 맞고 밥 굶고, 험난했던 가구배송

https://brunch.co.kr/@taehyun0629/314


과일가게에서 1년동안 일해서 모은 1,000만 원을 가지고 혼자 45일 유럽여행을 떠났다. 여행 후 3개월을 쉬었다. 처음엔 쉬니까 좋더니 갈수록 마음이 불안해졌다. 일하러 갈 직장도 없이 집에 있으니 세상에서 소외된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늦잠 자느라 낮 11시가 넘는 시간에 일어나기라도 하면 그 불안감 배가 됐다. 잠에 취해 할 것 없이 있는 내가 패배자가 된 것 같았다. 친구들은 날 보며 집에서 쉬면 좋지 왜 불안하냐고 말했다. 그건 언제든 돌아갈 수 있는 직장이 있거나 꾸준한 수입이 있을 경우에 그렇다. 일 없고 돈도 없이 있어보면 얘기가 달라진다. 몇 개월을 불안하게 보낸 시간 때문인지 나는 지금 아무리 일이 힘들어도 몇 달 쉬고 싶다는 생각은 안 한다. 하루이틀이면 모를까.


일을 알아보던 중 중학교 친구인 C에게서 전화가 왔다. 내 안부를 물었다. 쉬고 있다고 하니 자기랑 같이 일할 생각 있냐 물었다. 무슨 일이냐 물으니 서랍장, 붙박이장, 침대, 식탁 등의 가구를 배송 및 시공하는 일이라 말하며 자신이 하고 있는 일이 얼마나 괜찮은지 나에게 어필했다. "오늘 오전만 하고 마쳤는데 오전에만 한 15만 원 벌었다. 이제!ㅎㅎ" 한 달 수입은 350~400만 원 정도 된단다. 자기 밑에서 처음 일 배울 때는 돈이 얼마 안 되지만 나중에 내가 사수가 되면 자기만큼 벌 수 있단다. 수입이 꽤 솔깃했다. 같이 일해보기로 했다. 돈도 돈이지만 예전부터 기술이 최고라는 어른들 말이 생각나 가구 시공 기술을 배워보고 싶었다.



출근 첫날이었다. 친구의 트럭을 타고 양산에 있는 한 물류센터로 갔다. 사무실에 들어가니 열댓 명의 사람들이 앉아있었다. 대부분 내 또래였다. 다들 한샘 로고가 박혀있는 조끼를 입고 있었다. 내가 일할 이 회사는 한샘가구의 배송과 시공을 맡고 있는 하청업체였다. 팀장님이 들어왔다. 낯익은 얼굴이었다. "어, 니였나. 난 또 누구라고. 오랜만이네." 자세히 보니 중학교 선배였다. 어색한 인사를 나눴다.


회의를 시작했다. 팀장 배송지역 제품내역이 적혀있는 서류를 팀원들에게 분배했다. 확인 후 물류센터로 내려가 각자 트럭에 자재를 실었다. 나도 친구따라 트럭에 자재를 차곡차곡 적재했다. 친구와 같이 2인 1조로 다니며 일을 배웠다. 나의 주업무는 포장 개봉 및 박스 정리였다. 친구가 곧바로 가구 조립을 할 수 있도록 포장을 개봉하고 같은 부품끼리 분류해뒀다. 친구가 조립할 때 나는 비닐, 스티로폼, 박스 등을 정리했다. 간단한 조립 정도는 직접 해보기도 했다. 하루에 서너 집 정도 돌았다. 보통 오후 3~4시쯤 퇴근했고 물량이 적은 날엔 오전에 일을 끝내기도 했다.



아이고 허리야

어떤 기술을 기대하고 갔지만 별다른 기술 없었다. 대부분 단순조립이었다. 붙박이장은 조금 달랐다. 장 틀을 몰딩 모양에 맞게 잘라 시공해야 했기에 어려웠. 시간 많이 걸렸다. 친구가 틀을 짜면 나는 붙박이장 안에 들어가는 선반이나 서랍 같은 간단한 것들만 조립하고 치했다. 붙박이장 시공의 경우 필요한 공구가 많아 친구가 요청하는 공구가 있으면 곧바로 가져다줬다. 가구 조립하랴 박스 정리하랴 공구 갔다주랴 정신이 없었다.


하루는 허리를 굽혔다 폈다 하며 얼마나 바쁘게 움직였던지 바닥에 떨어진 박스를 줍는 순간 갑자기 허리를 삐끗하고 말았다. 욱신거리는 정도가 아니었다. 꽤 심각한 통증이었다. 너무 아파 그 자리에서 주저앉아버렸고 십여 분 동안 움직일 수가 없었다. 아프다고 집에 갈 수는 없는 상황이었다. 어떻게든 몸을 움직여 이어서 일을 했다. 2인 1조로 일을 해야 했기에 다음날도 쉬지 못했다. 아픈 허리를 부여잡고 출근했다. 서른도 안 된 그 나이에 허리를 다친 게 얼마나 서러웠는지 모른다.



친구를 때릴 뻔했다

친구와 함께 일하니 재밌었다. 부담도 덜 했다. 친구라서 편하고 좋았지만 친구라서 더 화가 날 때도 있었다. 바로 친구에게 욕을 먹는 순간이었다. 루는 그날 배송 일정이 꼬이는 바람에 친구 기분이 좋지 않았다. 내가 잘못한 것도 아닌데 나한테 짜증을 냈다. 혹시라도 친구 기분이 더 나빠지지 않도록 평소보다 재빨리 움직였지만 친구는 "빨리 빨리 좀 하자!" 하면서 신경질적으로 말했다. 내가 잘못해서 짜증낸 거면 괜찮은데 자기가 기분 안 좋은 걸로 나에게 화풀이 하니 나도 슬슬 화가 나기 시작했다.


친구도 나도 열 받은 상태로 고객집에 들어갔다. 친구에 대한 분노 때문에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 당장이라도 때려치우고 집에 가고 싶었다. 터지려는 분노를 겨우 억누르고 있는데 허리를 굽힌 상태로 가구를 손보고 있는 친구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그때 갑자기 친구 얼굴에 싸커킥을 날리고 싶은 마음이 솟구쳤다. 이미 머리속에는 내가 친구를 때려 얼굴은 피범벅이 되고 집 안 전체가 피투성이가 되는 상황이 파노라마처럼 지나가고 있었다. 심장이 요동쳤다. 거의 발을 들어 올리기 직전까지 갔만 겨우 이성의 끈을 붙잡았다. 조립을 마친 후 집을 나왔다. 차를 타고 이동하는 중에 친구에게 말했다.


"너가 기분이 안 좋은 건 알겠는데 일이 꼬여서 기분 안 좋은 걸 내한테 짜증내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최대한 나긋나긋한 어조로 말했다. 친구가 조금이라도 화를 내거나 신경질적으로 답하면 그땐 진짜로 가방을 싸들고 집에 가려고 했다. 하지만 다행히 친구는 내게 사과했다.


"아, 내가 그랬나? 미안하다.."


만약 그때 내가 화를 참지 못하고 친구 얼굴을 발로 찼다면 어떻게 됐을 지금 생각해도 아찔하다. 이건 지금까지도 내가 정말 잘 참았다고 생각하는 일 중 하나로 꼽는다.



점심을 굶는 건 예사였다

점심식사를 거르는 날이 많았다. 일을 빨리 끝내면 그만큼 일찍 퇴근할 수 있었친구는 이른 퇴근을 위해 항상 고객과 방문약속을 타이트하게 잡았다. 점심시간은 생각지도 않았다. 이동중에 김밥이라도 사먹으면 다행이었다. 하는 것도 사람이 다 먹고 살자고 하는 건데 밥을 굶어가며 일하는 것을 나로서는 받아들일 수 없었다. 친구에게 말했다.


"아무리 바빠도 밥은 좀 먹고 했으면 좋겠다. 식당 가서 제대로 차려 놓고 먹자는 게 아니라 이동중에 김밥 하나라도 먹으면서 하자."


친구는 알겠다고 했다. 다음날이었다. 오전 일을 마치고 낮 12시쯤 되었을 때였다. 다음 배송지로 이동하는가 싶더니 친구가 말했다.


"오늘 OO식당 갈래? 널 위해 오늘 점심간을 따련했다ㅎㅎ"

 

점심 먹으려고 일부러 오후 배송 시간을 늦게 잡았다고 했다. 점심을 먹는 게 당연한 건데 당연한 걸 특별한 것처럼 말하는 게 조금 어이없었지만 어색하니 그러는가 생각했다. 오랜만에 여유롭게 점심을 먹을 수 있었지만 그날뿐이었다. 다음날부터는 또 다시 굶으며 일하는 날이 반복됐다.



불량한 사람들, 초라한 나

 손으로 자재를 옮겨야 했기에 비가 오더라도 맞으면서 일할 수밖에 없었다. 그날은 평소보다 빗방울이 굵었다. 아침부터 비를 맞기 싫어 우비를 입었다. 우비를 입은 채로 트럭에 자재를 실었다. 멀리서 직원 서너 명이 나를 쳐다봤다. 무리 중 한 명이 손가락으로 나를 가리키더니 다 같이 웃기 시작했다. 우비 입고 있는 내 모습이 우스꽝스러워 웃는 게 분명했다. 우비 입고 일하는 게 왜 웃기냐 할 수 있겠지만 거기서는 다 비를 맞으며 물건을 싣는다. 다 비 맞으며 일하는데 나 혼자 안 맞겠다고 보라색 우비를 입고 있으니 그 모습이 유별나 보였던 것이다. 나를 가리키며 웃는 그들을 보고 있자니 나 자신이 초라하게 느껴졌다. 나를 보고 비웃는 그들도 싫었다.


사실 처음부터 이 회사 직원들마음에 들지 않았다. 껄렁껄렁한 사람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이곳은 대부분 친구를 데리고 와서 일했다. 그렇다니 면접을 보지도 않았고 그 흔한 이력서도 확인하지 않았다. 그럴 만한 게 1인 사장 체제였기 때문이다. 회사에 소속돼 있지만 한 사람 한 사람이 다 사장이었고 나 같은 부사수가 그 사장의 직원인 셈이었다. 이렇듯 진입장벽이 낮다 보니 이상한 애들이 많았다. 대화 중 절반이 욕설이었고 행색은 불량했다. 몸에 문신 있는 사람도 있었다. 그리고 대부분 대학을 나오지 않은 사람들이었다. 그 당시 대학중퇴였던 내가 대학 운운하며 고졸인 사람을 낮잡아 말하는 게 되게 웃기지만 어쨌든 그런 그들이 되게 한심하게 보였다. 나 역시 같은 고졸에 별볼일 없는 사람이었지만 그래도 그들과 다르다는 생각, 그러니까 훨씬 나은 사람이라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똥 묻은 개가 겨 묻은 게 나무라는 꼴이었지만 그들의 겨보다 나한테 묻은 똥이 차라리 깨끗하다고 여겼다. 그래서 그런 사람들과 은 조직에 있는 게 불쾌했다. 주제 넘는 생각이었지만 당시 심정은 그랬다.



내리는 비에 흠뻑 젖었을 때 결심했다

이곳에서 오래 일하지는 못할 거라는 생각이 스멀스멀 올라올 때쯤 그 생각 불에 기름을 붓는 일이 있었다. 폭우가 쏟아지던 날이었다. 저번처럼 다른 직원들의 웃음거리가 되고 싶지 않아 우비를 넣어둔 채 비를 맞으며 트럭에 자재를 실었다. 머리에 맺힌 빗물을 털어내고 트럭에 탔다. 배송 가는 아파트에서만이라도 비를 맞지 않길 바라며 지하주차장이 집과 연결되어 있는 아파트이길 기도했다. 아파트에 도착했다. 지하 주차장이 있었다. 하지만 아파트로 통하는 엘리베이터가 없었다. 결국 지상 1층에서 비를 맞으며 자재를 옮겨야 했다. 아파트 입구 앞에 차를 대고 내렸다. 비가 얼마나 오는지 내리자마자 10초도 안 돼서 쫄딱 어버렸다. 옷 걱정은 할 새도 없었다. 자재가 비를 맞지 않도록 서둘러 아파트 안으로 옮겨야 했다.   


엘리베이터 안으로 겨우 자재를 다 실은 후 해당 층의 버튼을 눌렀다. 친 숨을 몰아쉬던 중 거울 속의 나와 눈이 마주쳤다. 샤워기를 틀어놓은 것 마냥 머리 위에서 물이 줄줄 흐르고 있었다. 옷, 신발뿐만 아니라 속옷까지 다 젖어있었다. 물에 빠진 생쥐 꼴이 이런 모습인가 싶었다. 그런 내 모습을 보고 있는데 갑자기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지금 여기서 뭐하고 있는 거지...'


거울 속의 내가 타깝다못해 처량해보였다. 이런 식으로 일하고 싶지는 않았다. 일을 그만둬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일을 시작한 지 4개월 만에 가구 일을 그만뒀다. 



엥? 계란배달을 한다고?

이제 또 무슨 일을 해야 하나 고민했다. 어떤 일을 해야 할지 보이지 않았다. 불안했다. 여러 일을 하다보면 분명 그 속에서 뭔가가 보일 거라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오히려 이것저것 해보니 더 용기가 나지 않았다. 불안한 날이 이어졌지만 잠시도 쉴 수 없었다.


일을 알아봤다. 한 구인광고가 있었다.

'계란배달 직원 구함' 

대리점에서 슈퍼마켓으로 계란을 배달는 일이었다. 계란 유통 경로를 배워 계장사를 해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 생각하면 계란배달이 웬말인가 싶다. 물론 안다. 직업엔 귀천이 없다는 거. 하지만 어떤 일을 한다고 했을 때 '엥?' 하고 반응하게 만드는 일들이 있다. 달걀배달도 그중 하나였던  같다. 내 주변 사람들의 반응이 다 '엥?'이었으니까 말이다. 어머니는 무슨 그런 일을 다 하느냐는 듯 한숨을 쉬었다. 지인들도 "계란배달한다고?" 하며 어이없다는 듯 되물었다. 가장 황당해했던 사람은 당시 만나고 있던 여자친구였다. 가구 시공 일을 한다고 했을 때도 탐탁지 않아 했던 그녀는 달걀배달을 한다고 하니 말문이 막혔는지 말이 없었다. 그럴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남자친구인 내가 이제는 자리를 잡고 자신과 결혼을 했으면 하고 바랐으니까 말이다.  

  

하고 싶은 일도, 마땅히 떠오르는 일도 없었다. 일단은 달걀배달 일을 해보기로 했다. 트럭에 계란을 가득 실은 후 거래처에 배달했다. 가구 일을 할 때보다 비도 덜 맞았고 밥도 덜 굶었다. 무거운 것을 들 일도 없어 딱히 힘든 건 없었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이건 아닌 것 같았다. 20대 중반에 생산 공장에서 일할 때 한 이모가 나에게 했던 말이 있다. "무슨 일이든 배울 수 있는 일을 하는 게 중요해. 공사장에서 미장을 하든 길거리에서 자판을 하든지간에 말이야." 계란배달로 내가 무엇을 배울 수 있을지 보이지 않았다. 결국 일한 지 일주일만에 달걀배달 일을 관뒀다.


업에 대한 고민이 극에 달한 상황이었다. 도저히 앞이 보이지 않다. 막막했다. 그러던 어느날이었다. 여자친구가 내게 공무원 시험을 쳐보는 게 어떻겠냐고 권유. 그때까지만 해도 여자친구의 그 말 한마디가 내 인생을 180도로 뒤바꿔 놓게  줄은 꿈에도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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