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기타치는 권작가 Jan 09. 2024

내가 과일장사하면 잘할 줄 알았지

"너무 재밌다. 하루종일 놀다 오는 기분인데ㅎㅎ"


하고 있는 과일가게 일이 어떻냐는 어머니의 물음에 내가 한 대답이었다. 자식이 기뻐하면 어머니로서 덩달아 기뻐할 만도 한데 어머니는 이상하리만치 별 반응이 없었다. '좀 더 해봐라. 하다보면 마냥 그렇게 재밌을 수만은 없을 거다'라는 뜻이었을 거라는 걸 그땐 몰랐다. 계속 이렇게 재밌기만 할 줄 알았다. 이 일이 결코 만만한 일이 아니란 걸 본격적으로 느끼게 된 건 무더운 여름이 되면서부터였다.


여름은 수박, 복숭아, 포도 등 사람들이 좋아하는 과일이 많이 나는 계절인 만큼 과일가게를 찾는 손님이 많았다. 손님 응대하느라 바쁜 건 괜찮았다. 문제는 배달이었다. 날이 더워 과일을 들고 가기 힘드니 손님 대부분이 배달을 요청했다. 그렇게 한 명, 두 명 배달을 받다 보면 어느새 배달 가야 할 장바구니가 금세 쌓이곤 했다.


평소 같으면 한 번에 두세 집 정도는 배달이 가능한데 여름엔 그럴 수 없었다. 수박과 박스포장된 포도, 복숭아 때문이었다. 무겁고 부피도 많이 차지하다 보니 오토바이에 장바구니를 여러 개 실을 수가 없었다. 한 번에 겨우 한 집 배달하기 바빴다.

 



아파트 복도에서 잠들어 봤니?


유난히 배달이 많았던 날이 있었다. 햇볕이 뜨거운 어느 여름날이었다. 손님마다 수박, 포도, 복숭아는 빠지지 않고 구매했고 대부분 배달을 요청했다. 손님 응대하랴 배달하랴 눈코 뜰 새 없이 바빴고 배달 가야 할 장바구니가 대여섯 개가 넘어가면서부터는 배달만 했다. 손님이 얼마나 많은지 잠시도 쉬지 못했다. 그 상황에서 점심식사는 사치였다. 배를 쫄쫄 굶어가며 뛰고 또 뛰었다.


저녁쯤 됐을 땐 거의 녹초가 되었다. 한 끼도 못 먹은 탓에 몸은 지칠 대로 지쳐있었다. 배달하던 중 아파트 복도에 잠깐 퍼질러 앉았는데 얼마나 피곤했던지 벽에 등을 기댄 채 나도 모르게 잠이 들어버렸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갑자기 휴대폰이 울렸다. 점장님이었다.

 


"무슨 일있나? 왜 이렇게 안 오노?"


"아, 아닙니다. 빨리 갈게요!"


얼른 정신을 차리고는 먼지 묻은 바지를 툭툭 털고 일어났다. 서둘러 가게로 가서 점장님에게 상황을 설명했다. 점장님은 내가 안쓰러웠는지 식당에 가서 저녁식사를 하고 오라고 했다. 거절할 수 없었다. 배가 너무 고팠다.


허겁지겁 밥을 먹었다. 그날 먹은 첫 끼였다. 식사를 마친 후 곧바로 가게로 갔다. 역시나 나를 기다리고 있는 건 노란 장바구니들이었다. 결국 퇴근 시간까지 계속 배달을 해야 했다. 배달만 하다가 하루가 다 갔다. 퇴근 후 집에 어떻게 갔는지 기억나지 않을 정도로 힘든 하루였다.



태풍이 불던 날 과일바구니를 패대기쳤다

 


여름날 뜨거운 햇볕을 견뎌가며 배달하는 게 보통 힘든 일이 아니었는데 비 오는 날도 예외는 아니었다. 태풍으로 인해 비바람이 심하게 몰아치던 어느날이었다. 날씨 탓에 길거리에 사람이 거의 없었다. 오늘 하루는 조용하겠다며 여유롭게 일할 생각에 기분이 좋았다.


조용하던 가게 전화기가 갑자기 울린 건 그때였다. 배달 주문 전화였다. 손님이 주문한 과일과 채소를 메모한 후 전화를 끊었다. 순간 짜증이 났다.


'무슨 이런 날에 배달 주문을 다 시킨대? 태풍 부는 날에 배달하다가 다치기라도 하면 자기가 책임질 건가? 어휴 진짜..'


날씨 안 좋을 때 배달 주문하지 말라는 법 없다는 걸 알면서도, 오히려 비 올 때 주문하는 경우가 많다는 걸 알면서도 화가 났다. 이런 날씨에 배달시키면 어쩌자는 거냐며 한숨 쉬는 점장님을 보며 주문을 취소해주길 기대했지만 나보고 조심히 다녀오라고만 할 뿐이었다.


과일과 채소를 가득 담은 장바구니를 들고 가게를 나왔다. 배달지가 바로 앞에 있는 아파트라 오토바이 대신 우비를 입고 걸어갔다. 막상 비바람을 마주하니 더 화가 났다. 갑자기 분노가 머리 끝까지 치밀더니 홧김에 장바구니를 길 한복판에다가 내동댕이쳤다. 과일과 채소들이 우르르 쏟아지더니 바닥에 나뒹굴었다. 혼자 욕을 하며 한참을 씩씩거렸다. 아스팔트 바닥에 내팽개쳐진 과일과 채소들이 얼마나 짜증나던지 발로 다 밟아 뭉개버리고 싶은 심정이었다.


화낸다고 달라지는 건 없었다. 배달은 가야 했다. 이성의 끈을 겨우 붙잡은 나는 분을 가라앉힌 다음 바닥에 떨어진 과일을 집어들어 장바구니에 담았다. 그런 내가 너무 없어 보였지만 어쩔 수 없었다.


배달 장소에 도착했다. 아주머님이 현관문을 열고 나오더니 "아이고, 비 오는 날 주문해서 미안해요." 하고 말했다. 나는 아무 대꾸도 하지 않고 나왔다. 뭐 그렇게 화낼 일이라고 과일바구니를 바닥에 패대기치기까지 했나 싶지만 다시 그때로 돌아가도 아마 행동이 별반 다르지 않을 것 같다.



몸보다 힘든 건 마음이었다


몸이 힘든 것보다 더 괴로웠던 건 마음이 힘들 때였다. 스스로에 대한 초라함이 종종 나를 짓눌렀다. 한번은 30대로 보이는 남자 3명이 우리 가게 앞을 지나갔다. 점심을 먹고 회사로 복귀하는 직장인인 듯 보였다. 길가에 쭈그려앉아 야채를 진열하던 나와 눈이 마주쳤다. 그들은 아무 생각 없이 나를 봤겠지만 나는 '젊은 사람이 무슨 이런 허드렛일을 하고 있대?' 하고 느꼈다. 깔끔한 정장을 입고 있던 그들과 달리 나는 등산복 차림에 땀을 뻘뻘 흘리고 있었는데 그때 나 자신이 얼마나 초라하게 느껴졌는지 모른다. 일하다 보면 과일가게 바로 옆 식당에서 식사하는 내 또래 손님과 눈이 마주칠 때도 있었는데 그때 역시 나 자신이 부끄러워 고개를 돌릴 때가 있었다.  


배달할 때도 그랬다. 가게 주변이 다 고급아파트였는데 아파트 엘리베이터에서 주민이라도 만나면 장바구니 들고 배달하는 나를 어떻게 생각할지 신경쓰였다. 비 오는 날 엘리베이터 거울 안에 젖은 우비를 입고 있는 내 모습을 볼 때도 그런 내가 안쓰러웠다.


일할 땐 재밌으면서도 퇴근하고 집에 갈 때면 항상 마음이 무거웠다. 언제까지 이 일을 해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 때문이었다. 주말에 친구들을 만나서 먹고 마시며 재밌게 놀다가도 밖에 나와 어두운 밤하늘을 보고 있으면 앞으로 무슨 일을 해야 할까 하는 막막함 때문에 급격히 우울해지곤 했다.


장사를 하면 잘 할 수 있을 거란 생각으로 시작한 일이지만 막상 일해보니 과일가게가 생각보다 보통이 아니었다. 무엇보다도 매일 새벽 4시에 일어나 과일을 공수해 올 자신도, 밤 늦게까지 일하다못해 공휴일까지 일할 자신도 없었다. 손님 응대를 잘하니 장사가 맞겠다고 생각했지만 그건 사업에 있어 중요한 요소 중 겨우 하나일 뿐이었다. 과일판매 경험을 통해 지금까지 구체적인 계획도 없이 장사를 꿈꿨던 그 막연한 생각에 종지부를 찍을 수 있었다.




과일가게는 1년 일하고 그만뒀다. 힘들기도 했고 다른 일을 찾아보기 위함도 있었지만 그전에 당장 하고 싶은 게 있었다. 유럽여행이었다. 평소에 사람들이 "유럽배낭여행! 유럽배낭여행!" 하고 떠드는 이유가 궁금했다. 부러웠던 나는 '그놈의 유럽배낭여행 나도 한번 가보자'라는 생각으로 훌쩍 독일로 떠났다. 아무 일이나 막 하다가 대책없이 그만두는 평소 스타일처럼 여행 역시 딸랑 비행기 티켓만 예매해놓고 대책없이 떠났다. 그렇게 아무 계획 없이 혼자 45일 동안 7개국 20개 도시를 누볐다.


문제는 여행을 다녀온 이후였다. 이번엔 또 어떤 일을 해야 할지 막막했다. 나이도 이제 서른이 다 되어가다 보니 아무 일이나 할 수 없었다. 그 당시 새로 만나게 된 여자친구가 있어 더욱 어깨가 무거웠다. 찾다 찾다 하게 된 일이 한샘 가구 배송과 시공 그리고 달걀배달이었다. 새로운 일터에서 나는 과일가게에서의 고생은 아무것도 아니었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적지 않은 고생을 겪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