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기타치는 권작가 Dec 26. 2023

트럭 타고 윤활유 납품 1년을 하고 보니

2013년에 20년 가까이 살던 곳을 떠나 부산으로 이사갔다. 평생 살 줄만 알았던 고향 같은 동네를 떠나 마음이 싱숭생숭했다. 앞으로 어떤 일을 해야 할지 고민이 됐. 그때의 내 나이 26살이었다. 딱히 생각나는 일이 없었다. 때마침 그때 전 직장에서 같이 일했던 동생에게서 연락이 왔다.


"행님, 제가 일하고 있는 회사에서 사람 구한다는데 같이 일하실래요?"


어떤 일인지 물었다. 공장에 윤활유를 납품하는 일이라 했다. 트럭 타고 배달만 하면 되는 거라 편하다고 했다. 마땅히 할 일도 없어 일단 하겠다고 하고 며칠 뒤 회사에 면접을 보러 갔다. 


김해에 있는 회사였다. 원룸 같은 작은 사무실에 사장 포함 5명의 직원이 있었다. 사무실 옆에는 큰 창고가 딸려 있었는데 20L부터 200L까지 다양한 윤활유가 층층이 쌓여있었다. 사장과 면담 후 바로 출근하기로 했다.


출퇴근 차량을 받았다. 세단? 아니다. 트럭이다. 윤활유 납품할 때 타는 트럭을 출퇴근 할 때 타고 다니면 된다고 했다. 우리집까지 타고 가진 못했다. 거리가 꽤 멀었기 때문이다. 퇴근할 때는 트럭을 타고 지하철역 근처 골목에 주차한 후 지하철을 탄 다음 버스로 환승해 집에 도착했다. 1시간 30분 정도 걸렸다. 출근할 때는 버스 타고 지하철로 환승한 후 골목에 주차해놓은 트럭을 타고 회사로 갔다. 지금 생각하면 꽤나 험난한 출퇴근길이었지만 그땐 힘든 줄 모르고 다녔다. 

일은 간단했다. 그날 납품해야 하는 거래처를 확인 후 지역별로 나눈 다음 해당 수량만큼 트럭에 실어 납품하면 끝이었다. 오전에 한 코스 돌고 사무실에 들어와 점심식사를 한 후 오후에 한 코스 돌고 나면 그날 일은 마무리되었다. 공장마다 담당자와 물건 놓는 위치 등을 파악하는 게 조금 헷갈렸을 뿐 크게 어려운 건 없었다. 공장 위치도 내비게이션이 다 안내해주니 운전만 잘해면 됐다.


한두 달 정도 지났을까. 일이 어느 정도 적응되고 나니 이렇게 할 수가 없었다. 쉬는 시간이 많았기 때문이다. 윤활유 배달을 하고 나면 항상 시간이 남았다. 남는 시간은 주로 차에서 자거나 한적한 곳에서 산책하며 보냈다. 마트에 장보러 간 적도 있었다. 노래자랑에 나간 적도 있었는데 타이밍이 기가 막히게 좋은 날이었다. 



일하다 말고 웬 노래자랑 참석?


운전 중 진례도자기축제에서 노래자랑을 한다는 현수막을 봤다. '어머, 저건 무조건 참석해야 해!' 하고 속으로 외쳤다. 그때만 해도 동네 노래자랑부터 KBS전국노래자랑, 슈퍼스타K 오디션 등 노래를 부를 수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달려가던 때였다. 예선 참석 일자를 확인했다. 아쉽게도 평일 낮이었다. 체념하고 출근했다. 사무실에 도착해 납품해야 할 지역을 확인했다. 순간 '헉' 하고 놀랐다. 축제 노래자랑이 열리는 지역이었기 때문이다.

예선 참가할 생각에 신이나 콧노래를 부르며 차에 물건을 실었다. 평소보다 더 둘러 납품하고 시간 맞춰 예선장소로 갔다. 현장 접수 후 내 차례가 되어 무대에 올랐다. 내가 부른 노래는 녹색지대의 '준비없는 이별'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옷을 준비하지 않아 회사 점퍼를 입고 노래를 불렀다. 창피한 줄도 몰랐다. 예선참가자들의 노래가 다 끝난 후 본선 진출자를 발표했다. 결과는 탈락이었다. 아쉬웠지만 괜찮았다. 무대에서 노래를 부르는 것만으로도 만족스러웠다.



말 안 듣는 천방지축이었던 나


날을 거듭할수록 납품완료 시간은 더욱 빨라졌다. 더 많이 쉬기 위해 더 빨리 납품기 때문이다. 나중에는 일하는 시간 8시간 중 거의 절반은 쉬다시피 했다. 러던 어느 날이었다. 장이 나와 동생을 불렀다.


"물건 납품갈 때 물건만 딸랑 던져주고 오지 말고 제품 사용하면서 불편하거나 궁금한 건 없는지 좀 물어보고 그래라. 담당자들이 그러더라. 니들이 물건만 주고 바로 가버리니까 뭘 물어보질 못하겠다고."


알겠다고 말했지만 형식적으로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다. 이후로도 우리는 물건만 딸랑 던져주고 나다. 쉬는 것도 쉬는 거지만 그 일을 오래할 생각은 없었다. 지금 생각하면 부끄럽다. 잘한다는 소리는 못 들어도 적어도 욕은 안 먹을 정도로 했어야 했는데 철이 없었다. 평소 부장과 사이가 좋지 않았던 우리는 부장이 조금만 잔소리를 해도 창고에서 뒷담화를 했다.

그날로 평소처럼 창고에서 부장 욕을 하고 있는데 사무실에 있던 부장이 창고로 왔다. 우리에게 다가와 하는 말,


"일하는 데 불만이 많나? 뭘 그렇게 맨날 시바시바 거리노? 어?"


창고가 사무실이랑 연결되어 있었는데 사무실 창문을 통해 평소 우리가 욕하는 걸 자주 들은 모양이었다. 나는 속으로 '웃기고 있네.' 하고 비웃었다. 표정이 떨떠름한 걸 보니 동생 역시 나와 같은 생각을 하는 모양이었다. 매사 우리가 이런 식이다 보니 부장도 우리에게 웬만하면 말을 걸지 않았다. 그땐 부장이 이상하고 깐깐하고 피곤하고 재수없다고 생각했는데 어느덧 나도 30대 중반의 나이가 되고 보니 그때 내가 왜 그렇게 제멋대로 굴었나 싶다. 현재 직장에서 같이 일하는 동생이 말을 안 듣거나 표정이 조금만 안 좋아도 짜증이 나는데 그 부장은 나처럼 성질 더러운 직원을 만나 얼마나 피곤했을지 이제는 그 마음을 알 것 같 미안해진다.



나는 MZ보다 더 한 MZ였다


미안한 마음이 드는 건 부장뿐만이 아니다. 사장님에게도 너무 제멋대로, 무는 지지 않고 권리만 주장하는 너무나 MZ스러운 언행을 한 적이 있었다. 오후 납품을 마치고 사무실로 복귀해 퇴근을 기다리던 어느날이었다. 5시 30분이 되자마자 바로 사장에게 가서 "먼저 퇴근하겠습니다." 하고 인사를 했다. 사장은 눈을 끔뻑거리며 나를 쳐다 보더니 "어,어, 그래." 하고 말했다. 어이가 없었을 것이다. 회사 대표인 자신 퇴근 안 하고 앉아있는데 말단직원이 먼저 퇴근겠다고 하니 말이다. 하지만 나는 그때 사장이 왜 그런 반응을 하는지 지 못했다.


칼퇴근하는 날이 반복다. 그날도 평소와 마찬가지로 사장에게 인사하고 퇴근하려는데 사장이 었다.


"일 다 했나?"


무슨 말인 의던 나는 약한 멍한 얼굴을 하다가 이렇게 말했다.


"오늘 할 일은 다 했습니다."


사장은 한번 보자며 부장과 나를 데리고 창고로 들어갔다.


"이것도 좀 치우고 어? 이건 또 왜 여기 있노? 이것도 제자리에 놔두고.. 어쩌구 저쩌구.."


창고 안에 널브러져 있는 것들을 가리키며 일일이 지적했다. 칼퇴근 하기 전에 일에 좀 더 신경을 쓰라는 의미였을 것이다. 시키는 만 대강 정리하고 퇴근다. 사장의 의중을 파악했어야 했는데 눈치도 없이 나는 다음날에도 계속 칼퇴근을 했다. 사장 포기한 듯 더 이상 아무 말하지 않았다. 현재 직장에 있는 후배들을 보며 "요즘 애들 이렇니 저렇니~" 하며 혀를 찰 때가 있는데 그렇게 핀잔주다가도 뜨끔한다. 과거의 내가 떠오르기 때문이다.

 


또 다른 일화이다. 추석 명절을 두세 달 정도 앞둔 어느날이었다. 사무실에서 다같이 점심식사를 하던 중 명절 선물 얘기가 나왔다.


"이번 추석 선물로 내가 휴롬착즙기 준다!"


그 비싼 걸 명절 선물로 준다니, 기대했다. 추석이 다가왔다. 사장님이 아무 말이 없었다. 다들 눈치만 보고 있었다. 내가 나섰다.


"사장님, 이번 명절에 휴롬착즙기 선물하겠다고 하셨는데 어떻게 되셨을까요?"


사장은 눈을 끔뻑끔뻑 하더니 "아, 내가 그랬나?"라고 하며 기억이 나지 않는다는 듯 갸우뚱했다. 은근슬쩍 넘어가려 하길래 "지금이라도 해주시면 됩니다." 하고 말했다. 사장은 "요새 회사 사정이 어려워서.."라고 대답했고 곧바로 내가 대꾸했다.


"그건 사장님 재량이라고 생각합니다."


나는 봤다. 그 순간 사장님의 눈동자가 흔들리는 걸. 


"아 그래, 그건 그런데 아무래도 요즘 회사 사정이 어렵다 보니.."


사장님은 얼버무고 결국 착즙기 선물은 없던 일이 돼버렸다. 얼마나 어이가 없었을까.  제대로 안 하고 맨날 칼퇴하는 직원이 추석선물은 또 그렇게  따져물었으니 말이다. 어떻게 사장님에게 대놓고 그런 말을  금 생각해도 얼굴이 끈거린다.



그때를 생각하면 사장과 부장에게 죄송한 마음이 먼저 든다. 좀 더 열심히 할걸 하고 후회도 된다. 언젠간은 꼭 이렇게 말하고 싶다. 그때 너무 제멋대로 굴어서 죄송하다고, 더 열심히 하지 않아 송구스럽다고, 그땐 내가 어려서 철이 없어서 그런 거라고, 나도 이 나이쯤 되고 보니 사장님과 부장님의 심정이 어땠을지 조금은 이해가 간다고 말이다. 제쯤 이야기 할 수 있을까. 숙제다.



윤활유 납품 회사는 1년 일하고 퇴사했다. 하고 싶은 일이 생겼기 때문이다. 바로 과일가게였다. 사를 꿈꾸며 일했던 과일가게에서 나는 별의별 일을 다 겪으며 울고 웃어야 했다.





이전 05화 거짓말 보태서 때밀이 빼고 다 해봤어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