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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타치는 권작가 Jan 02. 2024

안녕하세요 과일 파는 27살 총각입니다

과일가게? 생각보다 재밌네

예전부터 장사에 관심이 많았다. 평소 사람을 좋아해 낯선 사람과도 얘기를 잘 하는 성격이라 사람 대하는 일과 잘 맞았다. 그래서 예전부터 해보고 싶었던 일이 장사였고 그 중에서도 과일가게였다. 과일과게로 성공한 사람의 이야기를 책으로 읽은 것이 내가 과일 장사에 관심을 갖게 하는 데 한몫했다.


어느날 일가게에서 직원을 구는 구인광고를 다. 막상 해보려니 망설였지만 마침 그때가 젊은 총각들이 과일을 파는 것이 유행하던 때라 나도 용기 도전해 보기로 했다. 때의 내 나이 27살이었다.


면접을 보러 갔다. 부산 센텀시티에 있는 한 과일가게였다. 사장님에게 들고 온 이력서를 건넸다. 회사부터 단기아르바이트까지 적을 수 있는 건 다 적었다. 사장님은 이력서에 있는 내용 중 '명품 가방 판매'를 보고는 "명품 가방 팔던 분이 이런 일 할 수 있겠어요? 완전 노가다인데 ㅎㅎ" 라고 말하며 껄껄 웃었다. 잘할 수 있다고 자신 있게 말하고는 며칠 뒤 첫 출근을 했다.


과일가게에서 2살 형인 점장님과 같이 둘이서 일했다. 사장님은 농산물 시장에서 떼온 물건을 갖다주기 위해 아침에 한 번, 오후에 한 번 들를 뿐 나머지 시간은 자신의 또 다른 가게인 슈퍼마켓에서 일했다.


과일 파는 게  있겠냐 할지 모르겠지만 보다 배워야 할 게 많았다. 나물 같은 식자재는 비닐봉지에 소분류해서 담고 당근, 감자 같은 채소는 무게를 측정하여 소쿠리에 나눠 담았다. 과일 역시 박스로 들어온 건 소쿠리에 나눠 담거나 팩에 담아 포장했고 상자째로 파는 상품은 과일이 고객 눈에 잘 보일 수 있도록 배치했다. 고객의 지갑을 열기 위해 신경써야 할 일이 꽤 많았. 그중엔 가격표에 글자를 예쁘게 적는 것과 상품을 소개하는 문구를 구상하는 일도 포함돼 있었는 이건 순전히 슈퍼마켓에서 일하고 있는 B점장 때문이었다.


과일가게 A점장보다 장사 경력이 많았던 퍼마켓 B점장은 내게 일을 가르치기 위해 종종 과일가게에 렀다. B점장은 가격표에 글자를 어떻게 적느냐에 따라 상품의 이미지가 달라질 수 있다며 가격표 작성을 강조했다. 그때부터 감자 5,000원, 고구마 5,000원과 같은 글귀를 예쁘게 적는 연습을 했다. 발전하는 글씨체에 만족스러워 하던 B점장은 어느날 갑자기 내게 이렇게 물었다.

 

"야, 너는 감자는 맨날 감자고, 고구마는 맨날 고구마냐?"


나는 고개를 갸우뚱했다. 무슨 말인지 이해 못하겠다는 나의 반응에 B점장은 "아니, 감자는 맨날 감자고, 고구마는 맨날 고구마냐고." 하며 똑같은 말을 반복했다. 래도 이해하지 못했다. B점장이 말했다.


"계속 똑같이 이름이랑 가격만 적지 말고 어떤 상품인지 부가적인 설명을 곁들여야지."

 

그러면서 예시를 보여주겠다며 채소 박스에 적혀있는 글귀를 가격표에 이렇게 옮겨 적었다.


'황토밭에서 자란 꿀고구마 5,000원'

'올해 수확한 강원도 햇감자 5,000원'


속으로 '저렇게까지 해야 되나' 싶은 생각 들었지만 시키는 대로 다보니 확실히 상품이 더 가치 있어 보이는 느낌이 들었다. 이러한 사소한 것들이 다 장사의 기술이었다. 지금 근처 과일가게를 가도 유심히 보게 되는 게 가격 판대기다. 제품 포장상태나 배열도 중요하지만 가격표에 어떤 글씨체로 무슨 글귀를 적었는지만 봐도 대충 사이즈가 나온다.


처음엔 손님에게 인사하는 것부터가 쑥스럽고 어려웠지만 어느 정도 적응을 하고난 뒤부터는 조금씩 일에 재미가 붙었다. 재밌었던 건 일보다도 사람이었다. 손님과의 대화였다. 사람과 얘기하는 걸 좋아했던 나는 손님과 대화하는 걸 즐겼다. 평소 여성적인 면이 많은 나는 남자보다 여가 대화가 더 잘 되는데 어머님들도 예외는 아니었다. 


처음엔 가게에 오는 어머님들과 형식적인 인사만 나눴지만 어느 정도 얼굴이 익고나서부터는 일상적인 얘기도 하며 편하게 대화했다. 장난끼 많은 나는 농담을 던지거나 말장난을 하기도 하고 결제한 손님의 신용카드를 마술로 없애며 웃음을 주기도 했다. 항상 "이모, 이모!" 하며 친근감 있게 다가갔고 나를 찾는 손님들도 하나둘씩 생기기 시작했다. 



이놈의 사람 스트레스!!


사람 때문에 웃었지만 나를 힘들게 하는 것 역시 사람이었다. 사람 대하는 일이다 보니 사람 스트레스가 만만치 않았다. 특히 기억에 남는 손님의 말이 있다. 바로 이거다.


"좋은 걸로 주세요."

 

일하면서 가장 듣기 싫은 말이었다. 이게 왜? 하고 의아할 수 있다. 그 이유를 말하자면 이렇다. 당근, 감자, 양파 고구마는 작은 소쿠리에 나눠 담아 쌓아놓는다. 손님이 온다. 한 소쿠리 달라고 한다. "좋은 걸로 주세요."라는 말을 덧붙이면서 말이다. 내가 여러 소쿠리 중 하나를 골라 봉지에 담으려고 하면 손님이 나를 제지하며 말한다. "그거 말고 옆에 있는 저걸로 주세요." 아마도 파는 사람이 골라주는 물건은 안 좋은 거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하는 말일 것이다. 나는 속으로 '그럼 처음부터 저걸로 달라고 하지.' 하고 투덜거리며 손님이 원하는 걸로 담아준다.


방법을 바꾸기로 했다. 처음부터 손님에게 마음에 드는 걸로 골라달라고 얘기하는 방법으로. 감자 한 소쿠리 달라는 손님에게 "어떤 걸로 드릴까요?" 하고 물었다. 그렇게 질문해도 손님은 "아무거나 주세요." 하고 대답한다. 손님 말대로 내가 아무거나 골라서 담으려 하면 손님은 또 이렇게 말한다. "그거 말고 그 옆에 있는 게 더 좋아보이네. 저걸로 주세요." '아무거나 달라며? 우쒸..' 하고 순간 짜증이 난다.


별것 아니라는 거 안다. 짜증낼 일이 아니라는 것도 안다. 손님들이 그렇게 말하는 것 충분히 이해한다. 내가 과일을 살 때도 똑같이 말할 때가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문제는 이거다. 손님에게는 한 마디지만 그런 손님을 상대하는 나에게는 열 마디, 스무 마디라는 거. 똑같은 상황을 매일같이 겪다보니 별것 아닌 걸 알면서도 짜증이 나는 거다.


짜증을 내어 무엇하리. 다시 방법을 바꿨다. 신중하게 고민하는 척을 하는 것으로 말이다. 감자 한 소쿠리 달라는 손님에게 "어떤 걸로 드릴까요?" 하고 먼저 묻는다. 역시나 아무거나 달라고 한다. 그때 아무거나 바로 집어 담지 않는다. 은 걸 골라주는 척한다. 일부러 "음~" 하는 소리를 내며 더욱 신중한 척한다. 이때 시간을 좀 끌어야 한다. 3초 정도가 적당하다. 제일 위에 있는 소쿠리는 손님들이 미심쩍어 하는 경향이 있어 이것저것 들추는 척하다가 중간쯤에 있는 소쿠리로 골라 담는다. 이렇게 했을 때 대부분 별말없이 받아간다. 해냈다는 기쁨도 잠시, 나는 '먹고 살기 힘드네.' 하며 혼자 실실 웃는다. 과일가게에서 일한 이후로 내가 과일을 살 때 "좋은 걸로 주세요" 라는 말은 절대 안 한다. 가게 직원에 대한 나의 배려다.



못생긴 양배추


특히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가 있다. 한번은 사장님이 양배추 10망을 가지고 왔다. 개수로는 30개였다. 대체로 선명한 초록빛에 속은 꽉 차 있었는데 개중에는 속이 갈라진 못생긴 양배추도 서너 개 있었다. 상품으로서 가치가 없었다. 공짜로 주기도 그렇고 버릴 수도 없었다. 일단은 거저주는 가격으로 저렴하게 팔아보기로 했다. 못난 양배추를 박스에 따로 담아 이렇게 적었다.


'못생긴 아이들 ㅠㅠ 500원'


 

손님들은 깨끗하고 예쁜 양배추만 사갈 뿐 못생긴 양배추에는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못생겼다고 천대받는 건 사람이나 먹거리나 마찬가지구나 싶었다. 두고 볼 수 없었다. 어떻게든 팔고 싶었다. 어떻게 팔지? 하고 고민했다. 못생긴 아이들이라고 적어 놓은 문구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얘네들이 이렇게 태어나고 싶어서 태어난 것도 아닌데 말이다. 기를 살려주고 싶었다. 문구를 고쳤다.


'우리가 인물이 없지, 가오가 없냐? 이 정도 값어치는 하자 500원'


그렇다. 영화 베테랑에서 배우 황정민이 했던 "우리가 돈이 없지, 가오가 없냐?"라는 대사를 패러디 한 거다. 이제 좀 만족스러웠다. 못생겼어도 주눅들지 않는 저 당당함이 퍽 마음에 들었다. 과일가게에 들른 B점장은 내가 쓴 이 글귀를 보고는 눈을 동그랗게 뜨며 물었다.


"허허허, 이거 니가 적었냐?"


그렇다고 하니 껄껄껄 하고 웃는다. 기가 찬다는 듯한 웃음이었지만 그 웃음에는 나의 기발함에 감탄스러워 하는 느낌도 있었다. 괜히 어깨를 으슥했다.


몇 분 뒤 한 아주머니가 못생긴 양배추 3개를 다 사갔다. 까만 비닐봉지에 담긴 채 멀어져 가는 양배추를 보며 속으로 생각했다. 다음 생에는 꼭 속이 꽉 찬, 예쁜 양배추로 태어나라고 말이다. 마트에서 장을 보다가 양배추를 볼 때면 종종 그때의 그 양배추가 생각난다.




처음 몇 달은 일이 아니라 놀다오는 것 같은 착각이 들 정도로 재밌었다. 계속 이렇게 재밌기만 할 줄 알았다. 하지만 이 일이 결코 만만한 일이 아니란 걸 본격적으로 알게 된 건 여름이 되면서부터였다.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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