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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타치는 권작가 Dec 12. 2023

공사장에서 숙식까지? 막노동꾼 다 됐네

형 B의 권유로 타지에 있는 건설 현장에서 한 달간 함께 막노동을 하기로 했다. 짐을 싼 후 경상도를 떠나 충청도의 어느 한 건설 현장으로 갔다. 도착해서 보니 공사 현장 주위에 아무 것도 없었다. 허허벌판이었다. 아파트를 짓는 건지 뭔진 모르겠지만 이런 곳에 건물을 다 짓나 싶은 생각이 들 정도로 썰렁했다. 짐을 풀기 위해 먼저 막사 갔다. 허름한 문을 열고 들어갔다. 사 내부는 군대 내무반 같은 구조였다. 중간에 통로가 있고 양쪽으로 긴 침상이 있었다. 천장에는 아직 채 마르지 않은 옷과 수건이 주렁주렁 매달려 있었다. 짐을 내려놓고 바로 일하러 나갔다.  


당시의 현장에는 건설 중인 건물이 여러 개 있었다. 한 곳에서 며칠 일하다가 또 다른 건물로 옮겨다니며 일했다. 기술이 없던 나는 자재를 들고 나르는 일 위주로 했다. 공사장에서 소위 공구리 친다고 말하는 콘크리트 타설 작업도 해보고 교차된 철근을 철사로 묶는, 반생이 작업을 하루종일 하기도 했다. 형 B와 같이 일하는 날도 있었지만 각자 다른 동에서 일할 때가 더 많았다. 의지할 사람이 형뿐이라 어쩌다 지나가다가 마주치기라도 하면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었다.



일이 크게 힘든 건 없었다. 스라치게 혼을 내는 사람도 없었다. 아니다. 있었다. 1명 있었다. 바닥 콘크리트 타설 작업을 하던 날이었다. 정강이까지 오는 긴 장화를 신고 시멘트를 부어놓은 곳에 사람들과 같이 들어갔다. 손에 쥔 갈고리를 이용해 물과 잘 버무려진 시멘트를 평평하게 펴 발랐다. 어설픈 듯했으나 나름 잘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작업을 지켜보던 반장이 갑자기 소리를 질렀다. 깜짝 놀라 쳐다보니 나를 노려보고 있었다. 내가 하는 게 마음에 들지 않은 듯했다. 나는 더 열심히 갈고리질을 했다. 다른 사람이 하는 걸 보며 따라서 갈고리를 바삐 움직였다. 작업반장은 그래도 못마땅했는지 계속 소리쳤다. '다른 사람이랑 똑같이 하고 있는데 왜 저런대?' 뭐가 잘못된 건지 알 수가 없었다. 벌벌 떨며 일했던 거 같다. 타설작업이 완료되자마자 나는 도망치듯 숙소로 들어갔다. 20대 사회초년생이 잘하면 얼마나 잘하겠는가. 그거 하나 이해 못해주고 화내는 반장이 미웠다. 인상이 얼마나 심하게 구겨져 있던지 지금 그 얼굴을 떠올려 봐도 괜히 긴장된다.



이런 데 잠을 자라고?

숙소 내부를 보고 느낀 그 충격은 아직도 잊히지 않는다. 막사 내부는 굉장히 열악했다. 침상마다 이불과 바닥이 깔려 있었는데 하얀 이불이 얼마나 지저분하던지 누런 얼룩이 곳곳에 배어 있었다. 마치 고양이가 오줌을 눈 것 같은 모양새였다. 베개도 마찬가지였다. 누런 때가 찌들어 있었다. 새로운 인부가 왔다고 해서 침구류를 세탁해서 주는 게 아니었다. 앞사람이 쓰던 걸 그대로 받아썼다. 거기까진 차라리 나았다. 이제 자야지 하고 목까지 이불을 덮는데 얼굴로 뭔가가 떨어졌다. '이게 뭐지?' 헐.. 모래였다. 벌떡 일어나 이불 위를 자세히 보니 모래 알갱이가 흩어져 있었다. '이런 데서 자라고?' 하는 생각에 넋이 나갔다.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20명이 넘는 사람들과 함께 따닥따닥 붙어서 자야하는 것 역시 편치 않았다. 마음대로 불을 끌 수가 없다 보니 이불을 머리 끝까지 뒤집어쓰고 자는 날이 많았다. 또 안은 왜 그렇게 습한지 잠을 자는 내내 온몸이 눅눅해져 있었다. 이런 곳에서 어떻게 한 달을 보내야 할지, 한숨이 나왔다.


첫날밤은 잠을 이루지 못했다. 우려와 달리 둘째날부터는 잘 잤다. 잘 잘 수밖에 없었다. 일이 너무 고됐기 때문이다. 아침 7시쯤 일을 시작해 오후 5시쯤 마치는 보통의 건설 현장과 달리 아침 6시쯤 일을 시작해 밤 8, 9시가 다 돼서야 일을 마치곤 했다. 매일 12시간 넘게 일하니 몸이 여간 힘든 게 아니었다. 루 일과를 마치고 나면 씻고 자기 바빴다. 전등이 켜져 있어 눈이 부셔도, 웅성웅성 거리는 사람들의 이야기 소리에 시끄러워도 신경 쓰지 않고 잤다. 지금 다시 그곳에서 자라고 하면 못 자겠지만 그땐 희한하게 잘잤다.



샤워할 수 있어 감사합니다

놀거리도 없고 오직 일만 하며 지냈지만 그곳에서도 나름의 즐거움은 있었다. 처음으로 제대로 씻었을 때의 그 쾌감은 아직도 생생하다. 처음에 일을 시작했을 당시만 해도 막사의 세면장은 상당히 열악했다. 샤워시설이 없었다. 한 사람이 들어갈 수 있을 정도의 큰 고무대야에 물이 받아져 있었는데 바가지로 그 물을 퍼서 씻어야 했다. 몸을 씻기는커녕 머리 한번 시원하게 감을 수조차 없었다. 손, 발 씻고 세수하고 양치질하고, 그렇게 며칠을 보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워장이 생겼단다. 작업자를 위한 샤워장은 아니고 건물 내부에 만들기로 한 시설이었는데 마침 그 시기에 작업이 완료된 것이다. 그날 작업을 마친 후 사람들과 함께 샤워시설로 달려갔다. 허물 벗듯 순식간에 옷을 벗어놓고 샤워장 안으로 들어갔다. 샤워기를 틀었다. "쏴아~" 물이 쏟아져 나왔다. "우와~ 진짜 시원하다!" 모든 사람들이 탄성을 질렀다. 머리 위로 물이 떨어지는데 시원하고 개운하다못해 너무 행복했다. 처음으로 씻으면서 쾌락을 느껴는 순간이었다. 머리에 샴푸를 잔뜩 바르고는 거품을 내어 미친 듯이 긁었다. 거품칠한 타올로 몸 구석구석을 씻었다. 샤워장 안의 사람들 웃음이 끊이질 않았다. 평소엔 아무것도 아닌 샤워가 그땐 그렇게 감사할 수가 없었다. 샤워 후 막사로 가는데 바람은 또 어쩜 그렇게 시원한지, 그곳에서 보낸 밤 중 가장 행복한 밤이었다.


훔쳐 먹던 과자가 그렇게 맛있을 수가 없었다

특히 기억에 남는 일이 있다. 처음에 일할 때만 해도 뭔가를 먹고 싶은 생각이 없었다. 그러다 일하는 날이 늘어날수록 피로감 때문인지 단 게 당겼다. 하지만 그곳에는 하루 밥 3끼 말고는 먹을 수 있는 게 없었다. 뭔가를 사 먹을 수 있는 곳도 없었다. 어느 날이었다. 반대편 침상에 있는 누군가가 과자를 먹고 있었다. 네모난 쌀강정이었다. 눈이 휘둥그레질 정도로 놀랐던 건 과자의 양이었다. 한두 봉지가 아니었다. 한 포대였다. 사람 한 명이 들어가고도 남을 정도로 큰 비닐 포대였다. 그 안에 쌀강정이 가득 들어있었다. 과자의 주인은 밤마다 포대를 열어 맛있게 쌀강정을 먹었다. 너무 먹고 싶었다. 평소엔 쳐다도 안 보는 과자인데 먹을 게 없는 그곳에서는 그마저도 감지덕지였다. 하나만 주면 안 되냐고 물어볼까 생각도 했지만 용기가 나지 않았다. 둘만 있으면 모를까 여러 사람 눈치가 보여 더더욱 말을 붙일 수 없었다. 체념하고 일에 전념했다.

 


그날도 평소처럼 일에 몰두하고 있었다. 가져올 물건이 있어 막사 안에 잠깐 들렀다. 가방 안에서 물건을 꺼낸 후 밖으로 나가려는데 침상 위에 놓여있는 쌀강정 포대가 눈에 들어왔다. '와 진짜 맛있겠다..' 나도 모르게 입맛을 다셨다. 눈을 질끈 감고 돌아서려다가 다시 멈춰섰다. 고민이 됐다. '잠깐만, 양이 저렇게나 많은데 한두 개 먹는다고 해서 티가 나진 않겠지?' 결국 딱 한 개만 꺼내먹기로 했다.


주위를 둘러봤다. 인기척이 전혀 없는 걸 확인하고는 침상 위로 올라갔다. 꽁꽁 묶여있는 비닐 매듭을 풀었다. 쌀강정의 달달한 향이 코를 찔렀다. 마약에 중독된 사람마냥 그 향에 빠졌다. '딱 한 개만 먹는 거야. 딱 한 개만..' 과자를 꺼내 한 입 배어먹었다. "바사삭" 하고 입 안에서 과자가 부서졌다. 순간 과자에 발라져 있던 달달한 꿀이 입 안 구석구석에 들러붙었다. 정말 달고 맛있었다. 정신이 혼미해질 정도였다. 딱 한 개만 먹겠다던 결심은 온데간데없었다. 정신을 차렸을 때 이미 입 안 가득 과자를 쑤셔넣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날로 끝이 아니었다. 이후로 나의 과자 도둑질(?)은 멈추지 않았다. 아니 멈출 수 없었다. 쌀강정의 달달함에 제대로 중독됐다. 한 번 열면 멈출 수 없다는 프링글스도 잘만 멈추는데 쌀강정은 달랐다.

   

꼬리가 길면 잡힌다고 했던가. 하지만 다행히도 나는 들키지 않고 몇 날 며칠동안 과자를 훔쳐먹었다. 양이 너무 많아 줄어드는 티가 덜 났던 덕분이다. 어려움에 처했을 때 사람을 살 수 있게 하는 건 용기도 자신감도 아니요 바로 희망이다. 쌀강정이야말로 내가 타지에서의 막노동 생활을 버틸 수 있게 해준 희망이었다.  




드디어 한 달 간의 막노동이 끝나는 날이었다. 고속버스를 타고 집으로 갔다. 창밖을 보며 생각했다. '내가 여기서 무엇을 배우고 얻고 가는 걸까' 딱히 생각나는 게 없었다. 그래도 자신감 하나는 얻고 갈 수 있었다. 사회에 나가면 무슨 일이든 다 해낼 수 있을 거라는 자신감이었다. 이렇게 열악한 곳에서 숙식까지 하며 밤낮으로 힘들게 일했으니 나가서 뭔들 못하겠는가. 그런 용기와 자신감을 가지고 나는 막노동계를 떠나 새로운 일터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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