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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타치는 권작가 May 08. 2024

내가 군무원이 돼야만 했던 이유

"이번에 공무원 시험에 합격한 친구가 있는데, 자기도 공무원 시험 한번 쳐볼래?"


당시 만나던 여자친구권유였다.


"응? 공무원 시험?"


얼떨떨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내가 공무원 시험에 응시한다는 생각은 한 번도 해보지 않았 때문이다. 그 당시가 공무원 시험 붐이 일 때였고 다들 왜 그렇게 공무원 시험에 목매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많은 사람들이 좋아하는 걸 거부하는 기질이 있던 나는 더더욱 그 경쟁 대열에 합류하고 싶지 않았다.


싫다고 무조건 거부할 수는 없는 상황이었다. 여자친구와 만남을 이어가려면 공무원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직업이 교사였던 그녀는 대학을 나오지 않은 나를 못마땅해 했다. 대학을 중퇴했다고 말했을 때 그녀는 자신은 대학을 그만 둔다는 건 생각도 못해본 일이라고, 부모님이 다 대졸자인데 이렇게 해서 어떻게 우리 부모님에게 소개해 줄 수 있겠냐고 따져물었다. 그럴 만도 했다. 나는 서른이 다 되어 가는 나이에 대학도 안 나오고 모아둔 돈도 없고 자리도 못 잡은 채 이 일, 저 일 하고 있었으니 말이다.


비혼이었던 나는 그녀와 결혼하겠다는 마음으로 공무원 시험을 고려한 건 아니었다. 그녀에 대한 자격지심이 있었다. 괜찮은 직업이라도 얻으면 그 자격지심이 조금은 누그러질 거라 생각했다. 미래가 어떻게 될지 모르지만 일단 만나는 동안만이라도 마음 편하게 만나고 싶었다.


시험에 도전해보는 방향으로 신중히 고민해봤다. 시작은 할 수 있겠지만 내 머리로 합격까진 자신이 없었다. 내가 공부로 성공할 팔자는 아니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고등학생 때 열심히 공부했다. 야간자율학습을 밤 9, 10시에 마친 후 독서실에 가서 새벽 1, 2시까지 공부했다. 매일을 그렇게 보냈다. 주말에도 쉬지 않고 공부했다. 그렇게 공부했는데도 내신 성적만 괜찮았을 뿐 모의고사 성적은 높지 않았다. 수능 성적도 마찬가지였다. 그렇게 죽기살기로 공부했는데도 성적이 이 정도니 공무원 시험 역시 다를 바 없을 것 같았다.


고민하던 중 언젠가 지인 L에게서 군무원이라는 직업에 대해 얘기 들은 게 생각났다.

'커트라인이 낮다고 한 거 같은데..' 

L에게 전화를 걸었다. 군무원 시험에 대해 물어봤다. L의 친동생이 군무원이라 정보를 얻을 수 있었다. 학원 다니며 공부했다기에 나도 학원에 상담하러 갔다.


군무원 시험 역시 갈수록 경쟁률이 높아지고 있던 시기였지만 내가 응시하려는 직렬이 행정, 군수에 비해 커트라인이 낮아 공무원 시험보단 해볼 만할 것 같았다. 시과목은 국어, 국사, 기계공학, 전자공학 총 4과목이었다. 이 많은 걸 언제 다 외울지 한숨부터 나왔다. 특히 전자공학이 굉장히 난해했다. 과연 내가 할 수 있는 학문인지 의구심이 들었지만 고민 끝에 도전해 보기로 했다.



서른을 두 달 앞둔 2016년 11월 겨울, 고대하던 개강 첫 날이었다. 긴장된 마음으로 학원에 갔다. 가는 길에 생각이 많았다. 해낼 수 있을 거란 자신감보다는 두려움이 더 컸다. 아무도 없는 허허벌판에 혼자 남겨진 기분이었지만 이제와서 무를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본격적으로 공부를 시작했다. 틈틈이 여자친구도 만났다. 데이트를 오래 할 순 없어 잠깐 만나 밥 먹거나 커피 마시는 게 다였다. 도서관에서 같이 공부하기도 했다. 여자친구는 나를 응원해 줬지만 한편으론 서운한 마음도 있었던 것 같다. 자신이 시험 권유를 했지만 마음껏 놀지 못하는 게 싫었나보다. 하루는 날씨가 좋은 날에 차 타고 이동하던 중 여자친구가 "봄에 벚꽃 보러도 못 가고 이게 뭐야.." 하며 울먹거렸다.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꼭 합격해서 벚꽃 마음껏 보러 가자는 쉬운 말도 하지 못했다. 나도 그런 상황에 처해 있는 내가 싫었다.


처음 며칠은 걱정했던 것보다 공부가 할 만했다. 문제는 전공과목이었다. 전자공학이 너무 어려웠다. 도대체 무슨 말인지 이해할 수 없었다. 문제마다 끙끙거리고 있는데 별것 아니라는 듯 쉽게 문제를 풀어나가는 선생님이 괜히 얄미웠다.


이해가 되지 않으니 수업을 들을수록 짜증이 났다. 제일 앞자리에 앉아 집중하고 하나도 빠짐없이 필기해도 이해하지 못했다. 속에서 천불이 났다. 수업을 들으면 들을수록 이건 내가 할 수 있는 공부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시험에 합격한다는 건 불가능한 일이라는 상상까지 더해졌다. 할 수 없을 거라는 두려움과 불안감이 동시에 밀려오더니 갑자기 감정이 북받쳤다. 눈물이 날 것 같았다. 더 이상 앉아 있을 수 없었다. 수업 도중 강의실을 뛰쳐나왔다. 학원을 다닌 지 겨우 2주 만의 일이었다.


학원 건물 계단에 주저앉았다. 눈물이 쏟아졌다. 공부가 힘들어서도, 이해 안 돼 짜증이 나서도 아니었다. 그 눈물에는 복잡 미묘한 감정들이 뒤섞여 있었다. 시험에 합격하지 못하면 여자 친구와도 끝이라는 생각 때문에 두려웠다. 시험에 떨어져서 이별을 통보받고 슬퍼하는 내 모습이 그려졌다.


어머니의 얼굴도 떠올랐다. 어머니는 지금까지 내가 갖은 고생을 하며 일해 온 모습을 옆에서 안타까워하며 지켜보셨다. 그런 자식이 이제 시험에 도전해보겠다고 하는데 그 시험마저 떨어지는 걸 보면 얼마나 속상해하실지 그 표정이 자꾸 아른거렸다. 돈이 모자라면 얼마든지 보태줄 테니 돈 걱정하지 말고 공부에만 열중하라며 그렇게 나를 도와주시는데 그 믿음에 보답할 수 없을 것만 같아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눈물이 났던 가장 큰 이유는 나 자신에 대한 안타까움 때문이었다. 20대에는 진로를 찾기 위해 닥치는 대로 일했다. 공사장 막일과 같은 힘든 일도 마다하지 않고 여러 직종의 일을 경험해봤지만 도저히 어떤 일을 해야 할지 앞이 보이지 않았다. 결국 선택한 것이 군무원 시험인데 이 시험마저 떨어진다면 앞으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더 이상 없을 거라는 절망감이 몰려왔다. 그때는 군무원 시험이 단순한 시험이 아닌 내 인생의 마지막 기회라고 생각했다. 이 시험에 불합격하게 되면 낙오자가 될 것만 같았다. 세상이 너무 무서웠다. 진로에 대한 나의 고민은 그 정도로 심각했다.


그날 이후로 며칠 동안 학원에 가지 않았다. 공부도 하지 않았다. 그냥 쉬었다. 너무 힘든 시간이었지만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했다. 힘들어서 못 하겠다고 말을 하는 순간 스스로 구제불능인 사람이라고 인정하게 될 것만 같아서였다. 하는 일마다 꾸준히 하지 못하고 불평하며 그만두는 내가 문제라는 생각이 들었다. 실패자처럼 보일 내 모습을 정면으로 바라볼 자신이 없었다. 현실을 애써 외면하며 오롯이 혼자 견뎌내야 했다. 그렇게 시간은 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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