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나던 여자 친구와 헤어졌다. 만난 지 5개월 만의, 공부 시작한 지 한 달 만의 이별이었다. 이별을 고하자마자 후회가 됐지만 나의 미래를 위해 붙잡아선 안 됐다.
이제 내가 해야 하는 건 공부다. 내게 남은 건 시험 합격이다. 독한 마음을 품고 다시 학원에 갔다.
이별 후유증이 남아 생각만큼 공부가 잘 되진 않았다. 오랜만에 하는 공부라 오래 앉아있기도 힘들었다.
설렁설렁 공부하던 내가 본격적으로 공부에 매진하게 된 계기가 있었다. 학원 수업이 오후 1시에 있던 날이었다. 낮 11시까지 늦잠을 자고 12시에 학원에 도착했다. 학원 엘리베이터에서 학원생 3명과 마주쳤는데 알고 보니 그들은 아침 7시에 학원에 도착해서 공부하고 이제 점심을 먹으러 나간다는 것이었다.
'쟤들은 저렇게 아침 일찍부터 와서 공부하는데 나는 뭐지..'
누군가는 열심히 공부할 시간에 세상 모르고 자고 있었던 나 자신이 짜증났다. 잠에 취해 있는 내 모습을 생각하니 스스로에게 화가 났다. 정신이 확 들었다. 그때부터 공부에만 전념하며 매일 같은 패턴으로 하루하루를 보냈다. 수업 시간이 몇 시든 상관없이 학원에 항상 1등으로 도착했다. 수업이 끝난 후 쉬지 않고 바로 스터디카페나 도서관에 가서 복습하고 정리했다. 하루도 쉬지 않았다. 어쩌다 약속이 있어 반나절 정도 놀더라도 바로 도서관에 가서 밤 늦게까지 공부했다.
분노는 나의 힘
전진이 없던 성적이 오르게 된 데는 나의 질투와 분노가 한 몫했다. 학원에서 한 달에 한 번 모의고사를 쳤다. 모의고사 다음날이면 학원 게시판에 성적표가 공개됐다. 1등부터 꼴찌까지 순서대로 나열돼 있었는데학원생 80명 중 나는 15등 언저리였다. 준수한 등수였음에도 명단에서 내 위에 다른 누가 있는 걸 보면 열이 받았다. 그때마다 ‘다음 시험 때 두고보자..’라고 생각하며 이를 갈고 공부했다. 그런 내 모습을 보고 같이 공부하던 지인은 왜 그런 걸로 스트레스 받냐고 핀잔을 줬지만 사실 이런 식의 질투와 분노가 나를 더 열심히 공부하게 만들었다. 질투와 분노는 곧 나의 성장 촉진제인 셈이었다.
나의 좌우명이 '핑계대지 말자'인 이유
현재 나의 좌우명은 '핑계대지 말자'이다. 학원다니며 공부할 때 다른 수험생들이 이런저런 핑계를 대는 걸 보고 그 핑계에 진저리가 나서 짓게 된 좌우명이다. 수험생들 중 공부를 어려워 하는 사람들이 하는 말이 있었다.
'나는 이과라서 국사가 어려워.'
'기계공학이랑 전자공학은 내 전공이 아니라서 이해를 못하겠네.'
'나는 대학을 안 나와서 공부가 너무 힘드네.'
'나는 나이가 많아서 머리가 잘 안 돌아가.'
물론 틀린 말은 아니다. 하지만 공부에 있어서 이유가 될 순 없다. 처음이 힘들 뿐이다. 꾸준히만 공부하면 나중에는 다들 비슷한 수준까지 올라간다.
나도 핑계를 대려면 얼마든지 댈 수 있었다. 고등학생 때 나는 언어영역이 어려워 다들 기본적으로 선택하는 언어영역을 포기하고 수학을 선택했다. 문과였음에도 불구하고 국사가 어려워 사회탐구 과목에서 배제하고 다른 과목을 쳤다. 남들 다 가는 대학도 중간에 그만둬서 가방끈이 짧았고 기계공학이나 전자공학과 같은 과목은 한 번도 접해본 적 없는 과목이다. 20대 초중반의 수험생이 많았던 것에 비하면 서른을 코앞에 둔 내 나이가 결코 어리다고 할 수도 없었다. 이렇듯 나에게도 핸디캡은 얼마든지 있었다. 하지만 나는 내 인생에 핑계 대고 싶지 않았다. 다만 묵묵히 공부할 뿐이었다.
수험기간이 나름 재밌었던 이유
8개월의 기간에 4개월 정도는 학원을 다녔고 나머지 4개월은 도서관에서 인터넷 강의를 들으며 혼자 공부했다. 매일 아침 6시에 일어나 도서관이 문 여는 7시에 도착해 밤 10시까지 공부했다. 매일 15시간을 도서관에서 보내며 도서관에 거의 살다시피 했다.
공부가 힘들다는 다른 수험생들과 달리 나는 공부하던 시간이 재밌었다. 4개월 동안 도서관에서 공부하고 먹고 자고 바람 쐬고 했던 모든 게 다 재밌었다. 하루 일과는 이렇다. 도서관에 아침 7시에 가면 내가 항상 앉는 구석 끝자리에 앉는다. 아무도 없는 이른 아침에 상쾌한 기분으로 공부를 시작한다. 낮 12시가 되면 도서관 식당에서 점심을 먹는다. 도서관 식당이라고 하면 식사가 대충 나올 걸로 생각하겠지만 그렇지 않다. 반찬이 기가막히게 잘 나온다. 내가 부산에 있는 여러 도서관에 가봤지만 이만큼 잘 나오는 구내식당을 본 적이 없다. 매 식사시간이 기대될 정도로 음식이 정갈하게 잘 나왔다. 웬만한 한정식집보다 나았다. 일부러라도 가서 먹고 싶은 그런 밥이다.
식사하고 나면 도서관 앞에 있는 가게에 가서 생과일주스를 사먹는다. 보통 딸기주스나 키위주스를 먹는다. 바람 쐬며 산책한 후 다시 도서관에 들어와 공부한다. 30분에서 1시간 정도 공부하면 잠이 쏟아진다. 취침시간이다. 팔베개 하고 낮잠을 잔다. 보통 1, 2시간 정도 잔다. 최고 많이는 3, 4시간 잔 적도 있었다. 정신 못 차리고 잘 때다. 가위에 눌리기도 한다. 잘 거 다 자고 언제 공부하나 싶어서 잠을 참아도 봤지만 참으면 나중에 어떻게든 자게 된다. 그래서 그냥 잠 올 때 잔다. 자는 시간 역시 일과에 포함했다.
낮잠 푹 자고 공부한 다음 저녁 6시쯤 되면 집에서 싸온 도시락을 먹는다. 영화나 예능 프로그램을 보면서 밥을 먹는 그 시간이 퍽 즐겁다. 천천히 식사하면 보통 20~30분이면 걸리지만 영화에 빠지다 보면 앉아서 1시간 동안 폰을 보고 있을 때도 있다. 빨리 올라 가서 공부해야 하는데 하면서도 계속 본다. 괜찮다. 이 정도는 나를 위한 휴식시간이라 생각한다. 도시락을 싸오는 다른 사람들 중엔 인터넷 강의를 들으며 밥 먹는 사람도 있는데 나는 저녁 먹을 땐 무조건 재밌는 프로그램을 봤다. 저녁 식사 후엔 도서관이 문을 닫는 10시까지 집중해서 공부했다.
공부에 전념할 수 있었던 데는 엄마의 도움이 컸다. 엄마는 내게 다른 거 신경 쓰지 말고 공부에만 열중하라며 매달 100만 원을 지원해줬다. 그래서 식사도 간식도 먹고 싶은 거 다 사먹을 수 있었고 주유비 걱정 없이 마음껏 주유한 덕분에 자차를 타고 편하게 이동할 수 있었다. 학원생들 중에는 타지에서 와서 고시원 살며 편의점에서 식사를 대충 때우는 사람도 있었고 가정이 있는 어떤 사람은 돈을 벌어야 했기에 일과 공부를 병행하는 사람도 있었다. 나는 돈 걱정 없이 공부만 하면 됐기에 호화스러운 수험 생활을 할 수 있었다. 이게 다 엄마 덕분이다.
공부하다 보면 힘들 때도 있었다. 그럴 땐 도서관 옥상에 올라가 바람을 쐤다. 도서관 바로 근처에 공항이 있어 이착륙하는 비행기를 자주 볼 수 있었다. 비행기를 볼 때마다 생각했다.
'시험에 꼭 합격해서 나도 꼭 저 비행기에 몸을 싣고 여행가야지.'
헤어진 전 여자친구를 떠올리며 의지를 다지기도 했다.
‘언젠가 그녀가 내 소식을 듣게 된다면 대학도 안 나오고 이일 저일 하며 반백수처럼 살던 내가 이만큼 해냈다는 걸 당당히 보여주고 말 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