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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타치는 권작가 May 13. 2024

찍기 신공으로 합격한 군무원 필기시험


필기시험 당일이 되었다. 드디어 결전의 날이 밝았다. 준비는 끝났다. 평소처럼 아침 식사를 하고 엄마의 응원을 받으며 집을 나섰다. 이런 기분, 수능 이후 처음이다. 너무 긴장이 돼 시험장까지 어떻게 갔는지, 학교는 어디 였는지 또 건물 외관과 내부 모습은 어땠는지 다 기억나지 않는다. 


학교 출입문에 붙어있는 수험번호를 보고 내가 시험 칠 교실을 찾아 앉았다. 앉자마자 책을 꺼내 요점만 빠르게 훑었다. 감독관이 들어왔다. 책상 위에는 필기구 제외하고 다 치웠다. 심호흡을 하며 대기했다. 그때의 그 떨림과 긴장감은 말로 표현할 수 없다. 시험지가 분배되었다. 종소리가 울리자마자 시험지를 펼쳤다. 시험이 시작됐다. 내 인생을 건 시험이. 



과목은 국어, 국사, 전자공학, 기계공학 총 4과목이었다.(18년부터는 국사가 한국사능력시험으로 대체 되었다.) 과목당 25문제로 4과목이니 총 100문제이다. 시험 시간은 100분. OMR카드까지 작성하려면 1문제를 1분 미만으로 풀어야 한다. 


문제를 풀지 않고 우선 문제 난이도 체크를 위해 4과목을 다 훑어봤다. 전반적으로 수준이 무난해 보였는데 한 과목이 문제였다. 기계공학이었다. 문제를 보는 순간 눈을 의심했다. 말도 안 되는 문제들이 수두룩했기 때문이다. 여기서 말하는 말도 안 되는 문제란 바로 계산 문제다. 기계공학을 공부할 때 계산문제는 애초에 내가 포기한 문제였다. 너무 어렵고 복잡했기 때문이다. 공식 몇 개 외워서 풀 수 있는 게 아니었다. 그런데 실제 시험에서 기계공학 25문제 중 계산 문제가 무려 18문제나 출제되었던 것이다. 문제마다 지문이 기본 7, 8줄 이상이라 문제조차 이해할 수 없었다. 당연히 손 댈 수 없었다. 지금껏 풀었던 문제집이나 학원 모의고사에서도 이런 식의 문제는 보지 못했다. 암담했다. 눈 앞이 캄캄했다.  


고민한다고 될 문제가 아니었다. 선택과 집중이 필요했다. 어차피 못 풀 거 붙잡고 있어봤자 시간만 허비할 것 같으니 대충 찍고 다른 과목에 집중하는 게 나을 것 같았다. 결국 7문제만 고민해서 풀고 나머지 계산 문제 18개는 다 찍었다. 고민해서 찍은 게 아니다. 문제는 아예 보지도 않고 ORM카드에 답만 다 마킹했다. 그렇게 기계공학을 10분 만에 풀었, 아니 정리했다.


다 찍어서 몇 개나 맞을지 걱정할 여유도 없었다. 서둘러 나머지 3과목에 집중했다. 국어와 국사는 무난했다. 도저히 내가 할 수 있는 공부가 아니라는 생각에 강의실을 뛰쳐 나가 눈물 쏟게 만들었던 전자공학도 풀 만했다. 


시험 종료 5분 전에 문제를 다 풀고 OMR 마킹까지 마쳤다. 과목마다 확실하게 맞는 문제가 몇 개인지 헤아려봤다. 국어와 국사, 전자공학 다 맞힌 문제수가 과락을 면하는 10개는 넘을 것 같았다. 관건은 기계공학이었다. 온전히 운에만 맡겨야 했다. 문제를 출제한 사람은 계산 문제 다 풀 줄 알고 출제 했냐고 물어보고 싶을 정도로 답답하고 야속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 이미 주사위는 던져졌으니 기다리는 수밖에. 


시험이 끝나면 후련할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오히려 허무했다. 지난 8개월간 쉼 없이 매일 바쁘게 달려오다가 갑자기 멈춰서니 뭔가가 텅 빈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같이 시험 친 사람들은 이제 좀 쉴 수 있겠다며 좋아했는데 나는 이제 무얼 하며 하루하루를 보낼지 고민이 됐다. 허전한 마음에 당장이라도 도서관을 가야 할 것 같았다. 답답한 마음에 좀 걷고 싶었다. 바로 지하철을 타지 않고 한참을 걸었다. 하늘이 유난히 파란 날이었다. 



한 달 뒤 필기시험 합격자 발표가 있었다. 발표일 전날 밤 너무 긴장이 돼 잠을 이루지 못했다. 발표 당일에는 긴장돼서 밥도 안 넘어갔다. 발표 시간이 되기 전부터 홈페이지 공지사항을 몇 번이나 새로고침하며 확인했다. 


드디어 고대하던 필기 합격자 명단이 떴다. 한글 파일을 열었다. '내 수험번호가 없으면 어떡하지?' 하는 걱정에 스크롤 바를 내릴 수 없었다. 심호흡을 크게 한 번 하고 마우스휠을 돌렸다. 심장이 미친듯이 요동쳤다. 내 수험번호를 찾기 시작했다. 빠르게 수험번호를 훑던 중 낯익은 번호가 눈에 보였다. "엇 있다, 있어!!" 끝에서 3번째에 내 수험번호가 있었다. 합격이었다. 믿기지가 않아 수험번호를 열 번 넘게 확인하고서야 합격을 실감할 수 있었다. 기쁘면서도 한편으론 얼떨떨했다. 내가 어떻게 합격할 수 있었는지 나조차도 신기했기 때문이다. 


이쯤에서 드는 의문 하나, '내가 합격했다는 건 기계공학이 과락을 넘겼다는 건데?' 기계공학 점수가 궁금했다. 맞힌 문제수가 10개 이상은 돼야 과락을 면한다. 다른 3과목을 다 100점 맞는다고 해도 나머지 한 과목에서 맞힌 문제수가 9개 이하이면 과락으로 불합격이다. 


홈페이지에서 과목별 점수를 확인했다. 점수를 보고 나는 입이 떡 벌어질 정도로 깜짝 놀랐다. 딱 10문제를 맞혔기 때문이다. 문제를 보지도 않은 채 OMR카드만 보고 마킹했는데 정확하게 10문제라니, 너무 신기했다. 한 문제만 틀렸어도 나는 불합격이었다. 얼마나 아찔했는지 모른다. 운이 좋았다. 그야말로 천운이었다. 살면서 누릴 행운을 이날 다 쓴 게 아닌가 싶은 생각마저 들었다. 


아직 축배를 들긴 일렀다. 준비해야 할 서류도 수두룩했고 최종적으로 면접이 남아있었다. 이제 겨우 산 하나 넘었다. 면접이라는 산 하나를 더 넘어야 한다. 면접까지 남은 시간 한 달, 면접 준비를 위해 나는 두 주먹 불끈 쥐고 다시 학원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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