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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타치는 권작가 May 14. 2024

면접에서 쫄지 않고 자신이 있었던 이유

https://brunch.co.kr/@taehyun0629/331


17년 육군 군무원 필기시험에 합격 후 면접준비를 위해 학원에 갔다. 면접학원으로 유명한 스피치 학원이 있었지만 나는 내가 다녔던 군무원 학원에 등록을 했다.


군무원 필기시험에 합격한 다른 수강생들과 조를 꾸려 준비했다. 먼저 자기소개를 작성해서 달달 외웠고 학원에서 나눠준 예상 질문지를 받아 각자만의 생각을 정리했다.


우리 조원 6명이 돌아가면서 매일 모의면접을 봤다. 1명이 면접자가 되면 나머지 5명이 면접관이 되어 질문을 했다. 한 번씩은 면접을 준비하는 다른 조원들과 같이 섞어서 모의면접을 보기도 했다.



군대도 안 가고 대학도 안 나왔던 나

간간이 원장님이 들어와 조언을 해줬다. 원장님은 우리 중 나를 제일 걱정했다. 나는 대학도 안 나오고 군대도 안 갔기 때문이다. 대학을 안 나올 수는 있다. 군대를 안 갈 수도 있다. 하지만 대학도 안 나오고 군대까지 안 간 남자는 많지 않다. 성실함의 의심을 받을 수 있는 부분이었다. 학벌이 뭐가 중요하냐, 요즘 군대가 군대냐? 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그건 그렇게 말하는 사람들의 생각일 뿐이다. 아무 이유 없이 대다수가 하는 걸 하지 않게 되면 사람이 불성실해 보일 수 있다. 또한 군대라는 조직의 특성상 군대를 갔다 온 사람을 더 선호한다.

 

과거를 바꿀 순 없었다. 나의 단점은 가리고 장점을 부각시킬 수 있는 방식으로 말하는 연습을 했다. 한 달 동안 매일 모의면접을 봤다. 실제 군무원 면접 전날에는 원장님이 면접관이 되어 실제와 같은 방식으로 최종면접을 봤다. 이제 준비는 끝났다.



면접이 자신있었던 이유

면접 당일 날이었다. 정장을 입고 새로 산 구두를 신고 집을 나섰다. 비가 많이 내리는 날이었다. 얼마나 많이 내리던지 외출한 지 몇 분도 채 안 돼서 바지 아랫단이 다 젖어버렸다. 젖은 바지를 입고 있어도 긴장했던 탓에 찝찝한 줄도 몰랐다. 버스 타고 기차역에 도착했다. 대전행 열차에 몸을 싣었다.


면접 장소에 도착했다. 면접이 사람을 마주하는 일이라 필기시험보다 몇 배는 더 떨렸다. 특히 내 순서 바로 직전에 얼마나 떨리던지 진정이 안 될 정도였다.


드디어 내 차례가 되었다. 면접실 안으로 들어갔다. 면접관이 5명 앉아 있었다. 남자, 여자, 군인, 군무원이 다 있었다. 인사 후 의자에 앉았다. "자기소개 해보세요." 자기소개를 했다. 이후 12개 정도 질문을 받았던 것 같다. 희한했던 건 면접관이 어떤 질문을 하더라도 다 대답할 수 있다는 자신이 있었다는 점이다. 이게 다 면접 연습을 많이 한 덕분이다. 한 달 내내 사람들 앞에서 발표했다. 그간 받은 질문만 해도 수백 개는 될 것이다. 학원에서 모의면접 시 1명당 15분 내외로 진행했는데 나는 혼자서 40분 동안 문답을 한 적도 있었다. 이 정도로 연습하니 어떤 질문에도 막히지 않고 말이 술술 나왔던 것이다.


물론 긴장은 됐다. 떨려서 내가 지금 말을 잘하고 있는 건지 헷갈리기도 했다. 하지만 대답 못할 질문이 나오면 어떡하지 하는 걱정은 전혀 하지 않았다. 면접관이 질문하기 직전에 '어, 그래. 어서 다음 질문 해봐!'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자신있었다. 연습의 중요성을 느끼는 순간이었다.


면접이 끝나고 나왔을 때 필기시험 때와는 달리 후련했다. 이제 진짜 다 끝났다는 생각에 속이 시원했다. 내가 준비한 건 다 했다. 이제 결과만 기다리면 됐다.


한 달 뒤 최종합격자 발표가 있었다. 걱정반 기대반이었지만 예감이 좋았다. 합격자 명단을 확인했다. 내 수험번호가 있었다. 전국에서 16명(총포 직렬) 뽑는 시험에서 당당히 합격했다. 그렇게 나는 군무원이 되었다. 햇살이 유난히 따스했던 2017년 봄이었다.



군무원 합격 후 X에게 전화를 했다

최종합격 후 지인들에게 합격 소식을 전했다. 많은 축하를 받았다. 누구보다 부모님이 제일 기뻐했다. 군무원 시험에 도전할 수 있게 동기부여를 해준, 헤어진 전 여자친구가 생각났다. 연락해서 고맙다는 말을 전하고 싶었다. 하지만 용기가 나지 않았다. 다시 만나고 싶은 마음이 없었기에 전화한들 무슨 의미가 있나 싶은 생각도 컸다.


그럼에도 한 번씩 생각이 났다. 그러던 찰나에 지인이 내게 "그냥 한번 연락해보는 거지 뭐. 뭐 어떻노? 연락 해봐라."라고 말했고 그 말에 용기를 내 전화를 걸었다.


신호음이 울렸다. 그녀가 전화를 받았다. 시험에 합격했다고, 덕분에 시험에 도전할 수 있었다고, 그래서 고맙다는 말 전하려고 전화했다고 말했다. 5분 정도 통화를 했던 것 같다. 별 얘기는 없었다. 지내라는 인사를 끝으로 전화를 끊었다. 전화하고 나니 후련했다. 정리가 된 기분이었다.



이후로도 종종 그녀가 생각났다. 우리집과 멀지 않은 곳에 살고 있어 혹시나 마주치진 않을까 싶기도 했다. 솔직히 보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서로 맞지 않다고 생각했기에 다시 만날 생각은 없었지만 그냥 한번 만나 보고 싶었다.


이별을 고한 것을 후회하진 않는다. 그정도의 인연이라 생각한다. 나를 이렇게 만들어 주려고 만나게 된 인연이 아니었을까 싶기도 하다. 만약 공부하던 그때 헤어지지 않았다면 지금 나는 어떤 삶을 살고 있었을까? 지금보다 만족스러운 삶은 살지 못했을 것 같다.


내게 그녀가 고마운 사람이라 생각하면서도 나는 그녀가 행복하지 않길 바랐다. 그녀가 미워서가 아니었다. 나랑 만났다가 헤어진 사람은 다 못 지냈으면 하는 악심에서 비롯된 바람이었다. 이게 다 내 심보가 고약한 탓이다.


지금은 아니다. 그녀가 잘 지냈으면 좋겠다. 작년쯤 지인이 내게 연락이 왔다. "야, OO이 있잖아. 결혼하는 거 같던데?" 그러면서 내 그녀의 카톡 프로필 사진을 보내줬다. 하나는 다른 남자와 손을 잡고 있는 뒷모습이었고 다른 하나는 웨딩드레스를 입고 있는 사진이었다. '좋은 사람 만나서 결혼하는구나.' 미움도 질투도 부러움도 애뜻함도 없었다. 그저 벌써 이렇게 시간이 흘렀다는 세월의 무상함이 느껴졌을 뿐이다. 그땐 그랬었지 하며 지금보다 더 어리고 미성숙했던 나를 떠올리면서 말이다. 언제 어디서든 그녀가 행복하길 바란다.



18년 6월에 군무원에 임용되어 어느덧 7년차가 되었다. 내 인생을 군무원이 되기 전과 후로 나눌 수 있을 정도로 예전과 전혀 다른 삶을 살고 있다. 이제부터는 군대무식자가 바라본 군무원 이야기를 이어가 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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