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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타치는 권작가 Sep 27. 2019

용서라는 말의 함정

미운사람이 있을 때면 용서하라고 말합니다. 내가 괴로움에서 벗어나려면 상대방을 용서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행복하기 위한 여러 방법 중 하나가 용서라고 강조합니다. 맞는 말이긴 하지만 용서에 대해 생각해볼 것이 있습니다. 용서라는 말의 또 다른 얼굴에 대해서입니다.


인자함, 너그러움, 이해심, 넓은 아량, 대인배.

용서를 떠올리면 연상되는 단어들입니다. 용서는 분명 중요합니다. 삶에 있어서 필요한 언행이라 생각합니다. 하지만 용서에는 함정이 있습니다.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용서의 보편적 의미는 내가 상대방의 잘못을 너그럽게 이해해주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즉 용서란 말의 밑바닥에는 상대방이 잘못됐다는 의미를 깔고 있는 것입니다. 갈등이 생길 때 잘못은 상대방에게 있고 나는 옳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이런 생각은 상당히 위험할 수 있습니다.


타인과의 갈등은 대부분 한 사람의 잘못이라기보다는 서로 간의 입장 차이에서 발생합니다. 손바닥도 맞아야 소리나 난다는 말이 있듯이 양쪽 다 잘못된 부분이 분명 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내 생각에만 빠져서는 상대방이 잘못했으니 내가 너를 용서하겠다고 하는 것은 나 자신을 바로 보지 못한다는 말입니다. 내 잘못은 보지 못하고 상대방의 허물만 본다는 것입니다. 자신의 잘못은 인정하지 않고 상대방의 잘못만 지적하는 사람은 사람들과 원만한 관계를 맺기 어렵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말이 안 통하는 사람도 자신의 잘못은 인정하지 않고 상대방의 잘못만 얘기하는 사람일 것입니다.



Put yourself in my shose.

중학생 때 배운 영어 속담입니다. 새겨들을 만한 말이라고 느꼈는지 아직까지도 생각이 납니다. 의미를 직역하면 '너를 내 신발 안에 넣어봐.' 정도가 되겠습니다. 그 말인 즉슨, 내 입장에서 생각해보라는 뜻입니다. 제가 강조하고 싶은 말은 타인과의 마찰로 인해 화가 났을 때 내 입장에서만 생각하지 말고 상대방의 입장에서도 생각해보자는 것입니다. 상대방의 입장에서 나 자신을 바라보고 상황을 해석해보면 의외로 상대방의 언행이 이해가 가는 경우가 많습니다. 화가 난 감정때문에 내 입장에서만 생각하다보니 상황이 이해되지 않았을 뿐입니다.


상대방의 입장에 서서 "그럴 수도 있겠구나."하고 생각해볼 수 있어야 합니다. 그렇게 생각함으로써 상대방의 심정이 헤아려지면 화를 낼 것이 없습니다. 용서할 것도 없습니다. 모든 일에는 원인과 결과가 있습니다. 화가 날 이유가 없으면 용서라는 결과도 필요치 않습니다.  


상대를 용서한다는 것이 괴로움에서 벗어나고 상대방과의 관계를 매끄럽게 하는 데 도움이 될지 몰라도 결국엔 임시적인 방편에 불과합니다. 아무리 마음을 가다듬으며 상대방을 용서하려해도 상대방이 잘못됐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으면 화가 나는 감정이 다시 올라올 수밖에 없습니다. 중요한 것은 나를 봐야 합니다. 내가 무엇을 잘못했는지를 먼저 봐야합니다. 내 허물은 보지 못하고 상대방의 티끌만 찾으려 한다면 그런 사람은 발전할 수 없습니다. 그 어떤 내적인 성장도 이루지 못합니다.


물론 말처럼 쉽진 않습니다. 저도 상대방의 입장에서 이해해보려 아무리 노력해봐도 안 될 때가 있었으니 말이죠. 오랜 시간이 지나다보니 이제는 상대방의 입장에서 생각해보는 게 그리 어렵지만은 않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생각하면서부터 화낼 일이 줄어들었습니다. 이해되지 않던 일도 이해가 되기 시작했습니다.



이유없이 폭행을 당했다거나 가족 중 누군가가 살인을 당했을 때도 상대방의 입장에서 생각해보라는 뜻이 아닙니다. 그런 경우에는 어떻게 생각해도 이해가 안되고 용서할 수도 없겠지요. 법을 어기거나 상대방의 재산이나 재물에 피해를 주는 사람은 처벌을 받아 마땅합니다. 제가 이 글에서 말하는 용서는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흔히 겪는 갈등으로 인해 시도하는 용서입니다.




내가 옳다고 생각하며 나를 바로 보지 못하는 것이 용서만의 함정은 아닐 것입니다. 이 시대를 살아가는 많은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습관이라 생각합니다. 내 생각이 옳고 내 말이 맞다고 말합니다. 자신이 아는 것이 진실이라고 우기기도 합니다. 정치와 종교 얘기는 함부로 하지 말아야 하는 이유도 사람들이 자신의 생각만 옳다고 생각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허나 세상에는 완전히 옳은 것도 그른 것도 없습니다. 삶을 구성하는 많은 것들은 동전의 양면과 같습니다. 장점이 있으면 단점이 있고 좋은 것이 있으면 나쁜 것도 있기 마련입니다. 많은 사람들과 소통하고, 세상에 대해 배우고, 더 나은 내가 되려면 때로는 내 생각이 틀릴 수 있다는 것도 생각할 수 있어야 합니다. 손에 무언가를 쥐고 있으면 새로운 것을 잡을 수 없듯 내 생각으로만 가득 차 있으면 상대방의 생각을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나를 비워야 새로운 지혜가 열리는 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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