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절 때마다 부모님께 용돈을 드린다. 정확히 얘기하면 아버지말고 어머니에게만 드린다. 아버지에게는 용돈을 줘도 그만, 안 줘도 그만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 시대의 많은 아버지들이 그렇듯 우리 아버지도 많~~이 무뚝뚝한 성격이다. 내가 어릴 때부터 아버지는 나에게 아무런 간섭을 하지 않았다. 처음엔 그게 자식을 믿기 때문인 줄 알았는데 그것이 존중이 아니라 무관심이었다는 것을 나중에 알게 되었다.
단적인 예를 들자면, 내가 코가 부러져 수술 후 병원에 입원했을 때 아버지는 병문안에 오지도 않고 나한테 괜찮냐는 연락 한 번 없었다. 나의 첫 책을 출간했을 때도 자식이 책을 출간했으면 관심을 가질 법도 한데 아버지는 책을 대충 훑어만 볼 뿐 읽지 않고 그대로 방치해뒀다.
또 친누나가 맹장수술을 하고 병원에 입원했을 때도 아버지는 병문안 갈 생각은 안 하고 집에서 티브이만 보고 있었다. "딸래미가 수술해서 누워있는데 병문안 한 번 안 가나?!"라는 엄마의 잔소리를 듣고 그제야 마지못해 누나의 병문안을 가긴 했지만 아무튼 이 정도로 우리 아버지는 가족에게 관심이 없다.
엄마에 대한 관심도 다르지 않다. 엄마가 밤 12시가 넘도록 집에 안 들어와도 전화 한 번 안 하고 혼자 술 마시며 놀다가 코를 골며 잠들기 일쑤였다.
아버지가 나에게 무관심하기 때문에 나 역시도 아버지에게 무관심해도 괜찮다고 생각했다. 어머니에게만 물심양면으로 잘해줄 뿐 아버지에게는 딱히 뭔가를 해주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했다.
그런 아버지를 미워한다는 뜻은 아니다. 무뚝뚝하고 매사에 무관심한 아버지의 성격이 자식으로서는 굉장히 편했다. 안부 연락을 안 해도 서운해하지 않는 아버지가, 명절이나 생신 때 돈 한 푼 안 줘도 서운한 기색하나 없는 그런 우리 아버지가 정말이지 참 편했다.
하지만 이번 명절만큼은 용돈을 드려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는데 그 이유는 한 권의 책 때문이었다. 아침마당의 방송작가인 남희령 작가의 《내 인생이 흔들린다 느껴진다면》이라는 책이다.
이 이야기를 읽으며 아버지를 떠올렸다. 어쩌면 우리 아버지도 내가 용돈을 줬을 때 앞에서 기분 좋은 내색은 안 해도 뒤에서는 사람들에게 자랑을 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책을 읽기만 하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읽고 느낀 것을 바탕으로 실천하는 것이 중요하기에 이번 명절만큼은 아버지에게도 용돈을 드리기로 했다. 오랜만에.
명절 날 밤에 준비한 돈봉투를 꺼냈다.
"명절 용돈입니더~."
엄마가 기뻐하는 것은 말할 것도 없었는데 의외로 아버지가 굉장히 좋아했다. 술만 마시면 마치 딴 사람이 된 것처럼 말이 많아지는 아버지는 때마침 술에 취해있었고 그래서 아버지는 자신의 기분을 숨김없이 마음껏 표현했던 것이다. 그런 아버지를 보며 '지금까지 아버지가 겉으로 표현하지는 않아도 속으로는 기뻐했겠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동안 아버지를 너무 몰랐다는 둥, 자식으로서 효도를 하지 못했다는 둥, 뭐 그런 식의 감성적인 생각이나 반성을 하려는 건 아니다. '앞으로 자주 용돈을 드리고 잘 챙겨드려야겠다.'라고 마무리 해야 훈훈한데 솔직히 그런 생각이 많이 들지는 않는다. 효도라는 게 그냥 뭔가 어색하고 낯부끄럽다.
여전히 '아버지에게는 용돈을 안 줘도 상관없겠지?'하는생각을 하며 내가 번 돈을 어디에 쓸지 생각하기 바쁘다. 내 돈은 아끼면서 어떻게든 부모님 덕을 보려고 하는, 아직 완전한 경제적 독립을 하지 못한 철 없는 아들이다.
앞으로 아버지에게 또 어떻게 할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이번 명절은
'아버지에게도 용돈을 드리길 참 잘했구나.'라는 생각이 들면서 스스로가 기특할 뿐이다.
글을 쓰고 보니 주제가 없다. 무슨 말로 끝을 맺어야 할지 모르겠다.
"나중에 돌아가시고 나면 해주고 싶어도 할 수 없다. 그러니 할 수 있을 때 하자."
뭐, 이 정도로 글을 마무리 하면 될려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