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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왜 이렇게 차가워졌나요?

감정실종의 시대에 대하여

by 정태인

출근길 지하철에서 문득 주위를 둘러봤다.

모두가 스마트폰 화면에 시선을 고정한 채

무표정하게 앉아있었다.

물론 내 얼굴도 크게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언제부터 우리는 이렇게

감정을 드러내지 않게 되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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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글거린다"라는 말이 나오고 감성이 사라졌다.

진심을 표현하는 것이 부끄러워지고,

감동을 나누는 것이 창피한 일이 되었다.


"선비"라는 말이 나오자 절제하는 사람이 사라졌다.

원칙과 신념을 지키려는 이들이 꼰대로 취급받고,

가치관을 말하는 것이 시대에 뒤처진 것처럼 여겨졌다.


"나댄다"라는 말이 나오자 용기있는 사람이 사라졌다.

누군가를 돕겠다고 나서면 '오지랖'이라 불리고,

남의 일에 관심 갖는 것은 '참견'이라 여겨진다.

각자도생의 시대에 타인에 대한 관심은

불필요한 간섭이 되어버렸다.


"설명충"이라는 말이 나오자

자기가 아는 지식을 나누려는 사람들이 사라졌다.

열정을 가지고 뭔가를 설명하는 사람은

귀찮은 존재가 되었고,

깊이 있는 대화는 'TMI'라는 이름으로

피해야 할 대상이 되었다.


감수성을 표현하는 것도 '중2병'이라는 딱지가 붙고,

무슨 영화를 봤냐는 질문에 "울었어"라고 하면

"그 정도에 울었어?"라는 반응이 돌아온다.

감동하고, 슬퍼하고, 기뻐하는 감정들이

모두 유치한 것으로 취급된다.


하지만 문득 생각해본다.

정말 그것이 성숙일까?

타인의 고통에 무관심한 채 자신의 일만 챙기는 게

어른스러운 걸까?

아름다움에 감동할 줄 모르는 마음이

정말 '프로페셔널'한 것일까?


예전에는 아파트 이웃들과 인사를 나누고,

김장철이면 서로 김치를 나눠 먹던 정이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옆집에

누가 사는지도 모른 채 수년을 살아간다.

엘리베이터에서 마주쳐도 고개를 숙이고

휴대폰만 바라보는 게 일상이 되었다.

어린 시절 골목에서 친구들과 뛰어놀던 풍경은

이제 추억 속에만 남아있다.


그런데 가끔 일상 속에서 작은 온기를 느낄 때가 있다.

버스에 오를 때 "안녕하세요"라고 반갑게 인사하는

기사님을 만나면 갑자기 마음이 따뜻해진다.

편의점에서 "감사합니다, 좋은 하루 되세요"라는

말 한마디에 하루가 밝아지기도 한다.

이런 작은 교류가

우리의 일상에서 얼마나 귀해졌는지 모른다.


겉으로는 차가워 보이는 우리 모두의 내면에는

따뜻함과 여린 마음이 있다.

무표정한 얼굴 뒤에는

누군가에게 인정받고 싶은 마음,

관심 받고 싶은 마음,

사랑받고 싶은 마음이 숨겨져 있다.

우리는 모두 상처받기 쉬운 존재이기에

그 상처를 감추려 더 단단한 껍질을 만들었는지도 모른다.


한국 사회는 빠르게 변화했다.

그 과정에서 효율성과 편리함을 추구하다 보니

'불필요하다'고 여겨지는 감정의 표현들은 모두 잘려나갔다.

하지만 그 대가로 우리는 점점 더 외로워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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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진정한 성숙은

감정을 숨기는 것이 아니라

표현할 줄 아는 용기,

무관심이 아니라 관심을 표현하는 따뜻함,

무덤덤함이 아니라 감동할 줄 아는

감수성을 가지는 것일지도 모른다.


이 각박한 도시에서도,

우리는 조금 더 따뜻한 사람으로 살아갈 수 있지 않을까?

당신이 먼저 작은 관심과 따뜻함을 표현해본다면,

누군가에게는 그것이

오늘 하루를 살아갈 용기가 될지도 모른다.


잊지않았으면 좋겠다.

당신은 원래 따뜻했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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