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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태인 Sep 02. 2019

유능함이란 해악에 관하여

#에이스 직장인의 역설

Photo by Jungwoo Hong on Unsplash

모든 회사에는 이른바 에이스 직원들이 있습니다. 여기서 에이스의 기준이 조금 모호할 순 있지만 (1. 능력이 뛰어난 2. 상사에게 이쁨을 받는 3.기타 등등) 우선 '일을 잘하는 유능함'이라 정의하고 글을 시작해 보겠습니다.


언론사 역시도 다른 회사 마찬가지로 '에이스' 기자들이 있습니다. 모두 어려운 시험을 뚫고 언론사에 입사했지만 기자간의 능력 차이는 분명 존재합니다. 오히려 그 차이가 일반 회사에 비해 더 크게 드러날 가능성이 높습니다. 기자는 조직원이면서 업무 특성은 자영업자에 가깝습니다. 본인의 노력이 직접 쓰는 기사에 매일 반영되기 때문입니다.


유능한 기자란 무엇인가

그렇다면 '유능한 기자'란 어떤 기자를 뜻하까요. 여기서부터 문제가 조금 복잡해집니다. 유능함의 정의가 그 기자가 처한 입장과 상황에 따라 달라지기 때문입니다.


선배와 후배 기자 입장에서 정의하는 유능함 역시 다른 의미를 지닙니다. 취재를 잘하거나 글을 잘쓰는 기자 유능한 기자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기자의 유능함이 곧 좋은 기사를 보장하는 것은 아닙니다. 유능한 기자도 '나쁜 기사'를 쓸 수 있습니다.


가끔 잘못된 지시가 내려오거나, 위에서 A를 가져오라고 했는데 A가 없다면 "못하겠다"고 하기보다 어떻게든 A와 비슷한 A'라도 가져오는 기자들이 있습니다. 유능한 기자들입니다. 하지만 그 기자가 쓰는 기사가 진실에 가까울지, 사회에 도움이 될지는 아무도 장담할 수 없습니다. A와 A'는 비슷한 듯 하지만 본질은 완전히 다른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그래도 유능한 기자들은 취재에 나섭니다. 한번 유능함이란 중독에 빠진 기자들은 그 굴레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유능함과 인정의 세계의 발을 들인 기자가 무능함과 질책의 세계로 돌아가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Photo by 창비.

유능해지길 포기한 판사

오늘 '유능함'에 대해 글을 쓰고자 마음먹은 건 같은 회사 선배권석천 논설위원의 저서 '두 얼굴의 법원'에 나온 유능함에 관한 내용 때문입니다. 이 책은 이탄희 전 판사의 사직서에서 시작된 양승태 대법원의 이른바 '사법농단 사건' 추적기입니다. 하지만 저에겐 다른 무엇보다 '유능함' 다룬 구절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유능해지길 갈망하는 판사와, 유능해지길 거부하는 판사를 보며 '직장인 판사' 생활을 들여다 볼 수 있었습니다.


"유능함을 가치있는 것으로 여기지만 실은 유능한만큼 인간에게 해를 끼치는 것도 없다. 유능해야 할 때 유능해야 하는데, 무능해야 할 때 유능할 때가 많다...유능하지 않기로 마음먹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무능하다'는 말을 듣고 싶은 사람은 없다"


이탄희(41) 판사는 법원의 최고 엘리트(에이스) 판사발령된다는 법원행정처 기획2심의관으로 배치된 뒤(법원에도 이런 보직 개념이 존재한다는 사실이 당황스럽지만) 법원행정처에서 '판사 뒷조사 파일'을 관리한다는 사실을 듣자 고민 끝에 사표를 던집니다. 판사가 판사의 뒷조사를 할 수는 없었기 때문입니다. 권 논설위원은 이를 "이탄희가 유능하지도 무능하지도 않기로 결심한 것"이라 말합니다.


뱀같이 지혜롭고 비둘기처럼 순결해야 된다

사표를 내기 전 이탄희 판사는, 비슷한 고민을 했던 선배 판사에게 이런 말을 듣습니다.


"작년에 너무 힘들었는데 의지할 데가 없었다. 마음이 통하는 심의관이 있었는데 그도 성경 구절을 얘기하더라. '뱀같이 지혜롭고 비둘기처럼 순결해야 된다'라고. 다 어쩔 수가 없다"


'어쩔 수 없다"는 말을 듣고 결국 이탄희는 사표를 던집니다. 남아있는다면 해선 안될 일을 유능하게 해낼 자신이 보였기 때문입니다.


선배와 동료들의 만류에 그는 2017년 2월  대법원 법원행정처가 아닌 수원지방법원 안양지원으로 돌아갑니다. "인사권자에게 보은해야 한다"며 축하 인사를 들었던 법원행정처 인사 발령 열흘만입니다. 그는 한때 존경했던 선배 판사에게 "출세는 포기하고 재판만 열심히 하라"는 말을 듣죠.


이 판사는 올해 1월 양승태 대법원장이 구속되고 며칠이 지나 다시 사표를 내고 법원을 떠납니다.


"내 자신을 지켜야 되겠다. 이게 핵심이었어요...지금까지의 모습이 망가지지 않으려면 나만 희생하면 된다. 내가 얻을 것, 행정처에 들어가서 출세를 하고 높은 자리로 가고, 사람들한테 인정받고, 판사로서 외부 사람들한테 대접 받고 이런 것들이 나의 이익이잖아요. 그것만 버리면 되는 거니까 그렇게 생각했어요"(이탄희, 두 얼굴의 법원 중)


전 이 유능함에 관한 구절 판사뿐 아니라 제가 만난 외교관과 정치인, 보좌관, 공무원, 군인, 검사, 변호사, 교수, 기자에게 모두 적용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사실상 모든 직장인에 대해 말이죠.


유능했던 많은 사람만나봤고, 그때마다 출세에 대한 그들의 욕망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들이 끼친 해악도 목격했습니다. 아마 그 사람들도 저에게 비슷한 욕망을 느꼈을지 모릅니다. 그래서 더 가까워졌을 수도, 서로를 멀리했을 수도 있습니다.


Photo by Samuel Zeller on Unsplash

"엘리트의 유능함, 사실 무서운 겁니다"

정부 부처의 한 공무원은 이런 취지의 말을 전했습니다. "엘리트의 유능함, 그거 무서운 겁니다. 우선 일을 잘하잖아요. 일을 잘하는 사람이 유능하기까지 하면..." 엘리트의 유능함은 한편으로 명령에 순응하는 '복종'과 가깝다는 말도 했습니다. "주위 사람들 둘러보면 모두 모범생 같아요. 해서는 안되는 일을 못하겠다고 말하지 못합니다"


전 청와대가 산하기관에 임원으로 앉히라고 요구한 낙하산 인사가 공모 과정에서 서류 탈락을 한 뒤 청와대에 반성문에 가까운 경위서를 써낸 공무원을 취재한 적도 있습니다. 그 경위서에는 "이런 사태가 발생하면 어떠한 처벌도 감수하겠다"는 내용이 담겨있었다고 합니다.


물론 이탄희 판사처럼 "못하겠다"며 함부로 사표를 쓰는 것이 쉬운 선택지는 아닙니다. 그걸 권장하겠다는 것도 아닙니나. 판사에겐 '변호사'라는 플랜B가 있어 생계를 유지할 수 있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그렇지 않은 경우가 많습니다.


"못하겠다"의 대가는 무엇일까

하지만 우리가 대부분 '못하겠다'는 말을 해야할 때 감당해야 할 대가는 '퇴사'가 아니라 '무능함과 면박'이란 생각이 들 때도 있습니다. 그것조차도 잃어버릴까 너무 두려운 것이죠


어찌보면 이탄희 판사처럼 지켜내야 할 자신에 관한 그 무엇인가가 충분히 형성되지 않아 유능함의 욕망, 유능함의 해악을 거부할 수 없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내가 잘못된 선택을 해서, 나의 유능함이 사회에 해악을 가져올 때 내가 중시하는 가치가 '유능함과 인정(출세)'에 불과하다면 순응 외 다른 옵션은 있을 수 없습니다.


렇기에 전 유능해지기에 앞서, 혹은 유능해져가는 과정에서 직장인으로서 내 가치를 형성하고 그것과 배치되는 것엔 조금씩 선을 그어가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어디까지 내가 버틸 수 있을 것인지, 어디까지 유능함의 요청을 수용할 수 있을 것인지, 왜 나는 유능해지려 하는지.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정리고 찾아가는 것. 그것이 유능함의 해악을 막는 출발점이라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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