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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태인 Sep 08. 2019

조국 수사, 개와 늑대의 시간

#기자는 이렇게 살고 또 이렇게 취재합니다

지난 6일 청문회장에 들어서는 조국 법무부 장관의 모습. 박태인

모두가 각자의 시각으로 한 사건을 바라본다. 그 상황에서 본질은, 진실은 중요하지 않은 것이 된다.


조국 법무부 장관 후보자의 인사청문회와 검찰 수사를 취재하며 생각입니다. 기자는 최대한 다양한 사람의 의견을 듣고 소화한 뒤 자신의 판단을 녹여 기사를 쓰는 직업입니다. 하지만 조 후보자를 겨냥한 윤석열 검찰총장의 수사를 취재할 때는 이 문제을 두고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제 주변 선후배와 기자는 물론 취재원의 생각이 이번 수사를 두고 상당히 엇갈렸기 때문입니다. 서로가 진영으로 나뉜 여야 국회의원과 보좌진의 평가는 말할 것도 없습니다. 제가 가장 좋아하는 선배 기자들의 생각도 저와 비슷한 듯 달랐습니다.


진실은 하나일 것인데 이젠 그 진실은 중요하지 않은 것이 버렸습니다. 윤석열 검찰총장이 조국 후보자에 대한 수사를 결정했을 때는 분명 특정한 판단이 전제가 됐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 판단의 실체와 진실은 더이상 윤석열 총장만의 것이 아닌 상황입니다. 그것을 해석하고 판단하는 수많은 사람들이 진실의 일부를 나눠갖게 됐고, 어떤 주장이 대중의 지지를 얻고 담론 싸움에서 우위에 서는지가 중요해졌습니다.

조국 후보자가 청문회장에 들어서자 더불어민주당 김종민 의원이 악수를 청하려 걸어가고 있다. 박태인

윤석열 검찰총장 수사 개시, 그때부터 판단은 엇갈렸다

지난달 27일 검찰이 조국 후보자와 관련한 각종 의혹을 파헤치려 30여곳에 대한 압수수색을 실시했을 때의 일입니다. 이때부터 정치권과 법조계, 기자들의 생각은 엇갈렸습니다. 처음 제기된 주장은 '조국 후보자를 둘러싼 과장된 의혹을 검찰이 서둘러 털어주려 수사를 한다'는 것입니다. 조 후보자를 도와주는 수사란 입니다.


기수를 파괴하면서 자신을 총장으로 만들어준 조국을, 윤석열이 취임 한 달만에 칠 수 있겠냐는 것입니다. 조 후보자가 대통령의 핵심 측근이기도 하니 말이죠. 하지만 전 당시 검찰 취재를 하며 이런 주장을 납득할 수 없었습니다.


검찰이 정무적 판단을 갖고 국민적 의혹이 집중된 사건을 봐주는 시대는 지났다고 생각했습니다. 게다가 수사의 주체가 서울중앙지검 특수 2부였습니다. 중앙지검 특수부는 총장 지시에 따라 한번 수사하면 검찰 명운을 걸고 끝까지 파헤치는 곳입니다. 특수부 출신의 부장검사 출신 변호사는 "봐줄 수가 없는 수사다. 특수 2부 검사 전원이 투입됐다는 건 검찰총장을 포함해 검찰 수뇌부가 끝까지 가라고 결정을 내린 것"이라 했습니다.


그렇다고 검찰 특수부가 항상 성공적 수사를 한다는 뜻은 아닙니다. 부장판사 출신 변호사는 "검찰 특수부가 달라붙은 피고인 변호를 할 때, 실제 혐의가 별게 없다면 변호사는 더 걱정이 된다. 검찰이 별건까지 탈탈 털어 작은 혐의라도 찾아낼 것이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실제 내부 검찰 분위기 역시 "끝까지 간다"였습니다. 당시 전 "조국 수사, 박근혜 때처럼 끝까지 파헤친다는 뜻"이란 기사를 썼습니다. 검찰 수사를 성급히 판단했다는 지적도 받았습니다. 하지만 수사가 진행된지 열흘가량 지난 지금 "윤석열이 조국을 도와주는 수사를 하고 있다"고 말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지난 6일 검찰은 조국 후보자 청문회 당일 그의 아내를 기소했습니다. 봐주는 수사는 이렇게 하지 않습니다.

Photo by Ray Hennessy on Unsplash

조국과 윤석열, 이젠 개와 늑대의 시간

수사의 의도와 판단에 대한 평가는 어느정도 정리된 모습입니다. 청와대와 여당이 검찰을 겨냥해 "미처 날뛰는 칼춤""내란 음모 수준의 수사""검찰 개혁에 대한 저항"이란 말을 쓰기 시작한 것이 그 반증입니다. 한 검사 출신 변호사는 "이제 개와 늑대의 시간이 됐다"고 했습니다.


개와 늑대의 시간이란, 사물의 윤곽이 희미해지는 시간대에 멀리서 오는 그것이 나에게 충성하는 개인지, 나를 죽이러 오는 늑대인지 구분하기 어렵다는 프랑스의 관용어입니다. 적절한 비유지만 전 늑대의 시간이 명확해졌다고 생각합니다. 검찰은 조 후보자의 주변뿐 아니라 조 후보자 본인도 겨냥하고 있습니다. 한 검찰 내부 인사는 "전직 대통령과 대법원장도 구속한 검찰이다. 범죄가 확인된다면 현직 장관도 얼마든지 구속할 수 있다"고 했습니다.


검찰 수사 자체에 대한 가치 판단

이제 남은 것은 검찰 수사의 목적과 조 후보자 청문회 전 검찰 수사 개시에 대한 가치 판단입니다. 여기서도 사람들의 생각은 엇갈립니다. 판단히 가장 첨예하게 나뉘는 것은 국회가 조 후보자에 대한 청문회 일정을 9월 2~3일로 합의한 직후(검찰 수사 뒤 여야는 다시 6일로 합의) 검찰이 수사를 개시한 판단이 적절했냐는 것입니다.


국민의 대표 기관임 국회가 법무부 장관 후보자에 대한 검증을 하겠다고 합의한 상황에서 검찰이 진상규명을 이유로 압수수색을 실시했기 때문입니다. 한 여당 중진 의원은 "검찰도 나름의 판단이 있었겠지만, 국민의 대표 기관인 국회에 대한 검찰의 월권이다"며 불쾌감을 드러냈습니다.


조 후보자 청문회에서 여당 의원 중 유일하게 조 후보자에 비판적이었던 금태섭 더불어민주당 의원도 "청문회를 앞두고 수사를 개시한 검찰의 행태는 비판받아 마땅하다"고 했습니다. 조 후보자가 청문회에서 국회와 국민에 대한 판단을 먼저 받은 뒤 수사를 하는 것이 순서에 맞았다는 것입니다. 검찰 수사로 조 후보자는 수사받는 장관 후보자가 됐습니다. 어찌보면 검찰이 먼저 '부적격 판단'을 내린 것일 수 있습니다.


인사 청문회를 마치고 아내가 기소된 사실을 알게된 뒤 입장을 밝히는 조국 후보자. 박태인

검찰 취재를 하는 입장에서 저도 이 부분이 가장 큰 고민입니다. 검찰이 다시 한번 정국과 정치의 전면에 서는 것, 검찰이 정치적 논란에 대해 옳고 그름을 가리겠다고 나선 것을 과연 정의롭다고 볼 수 있을지 판단이 서지 않습니다.


민주당 의원의 주장처럼 '정치의 영역을 검찰이 침범한 것은 아닐까'라는 생각도 합니다. 검찰 수사의 의도가 '국민적 의혹에 대한 진상규명'이라 설령 순수할지라도 그 결과를 두고 국민들이 갈라선다면 의도와 달리 수사 결과는 충분히 정치적일 수 있습니다.


"어차피 정치검찰이란 딱지 붙을거면 빨리하는게 낫다"

하지만 검찰의 반박도 만만치 않습니다. 검찰은 우선 수사의 관점에서 "더 늦게 압수수색에 들어갔다면 증거가 인멸돼 진상규명 자체가 불가능한 상황이 올 수도 있었다"고 했습니다. 청문회 일정까지 압수수색을 미룰 수 없는 현실적 요소가 있다는 것입니다.


두번째는 언제 수사에 들어가던 조국 후보자 찬반론자들과 정치권, 언론에선 검찰에 '정치 검찰'이란 딱지를 붙일 것이고, 청문회 뒤 수사를 한다면 '늑장 수사''봐주기 수사'라는 비판에 국민들이 수사 결과를 납득하지 않았을 것이란 이유입니다.


마지막으 다른 사건과 똑같은 잣대로 조국 후보자에 대한 정치적 수사를 하는 것, 살아있는 권력에 대한 수사를 하는 것이 문재인 대통령이 주장하는 검찰개혁이자 과거 정치검찰이란 오명에서 탈피하는 길이란 것입니다.


검찰과 검찰 수사를 반대하는 입장에서 모두 할 말이 있는 상황입니다. 다만 이번 수사로 문재인 정부의 검찰 개혁 과제에서 후순위로 밀렸던 검찰 특수부 축소, 직접수사 폐지가 다시 한번 개혁 과제 전면에 들어서게 됐습니다.


조국 후보자의 모습. 조국 페이스북

검찰개혁에 대한 검찰의 저항을 둘러싼 논쟁

조국 후보자 수사에 대한 마지막 쟁점으로 검찰이 조 후보자의 검찰 개혁에 부담을 느끼고, 혹은 검찰 개혁을 추진해 온 조 후보자에 대한 악감정을 가지고 수사를 하고 있다는 '검찰 개혁 저항론'입니다.


조 후보자에 대한 검찰 수사가 진행되는 상황에서 문재인 정부가 검찰 개혁을 하긴 어려울 것이란 분석도 함께 곁들여집니다. 조 후보자에 대한 여론이 부정적이고 검찰 수사가 여론의 지지를 받는 상황에서 정권의 검찰 개혁은 '검찰 탄압'처럼 비춰질 수 있다는 것을 검찰이 노렸다는 겁니다.


하지만 검찰은 "검경 수사권 조정은 이미 국회에 넘어갔고 지금 수사가 여당과 청와대를 격앙케하는데 자신들에게 유리한 것은 단 하나도 없다"고 반박합니다. 오히려 "국민 대 조국 구도를 검찰 대 조국 구도로 전환하려는 정치권의 노림수"란 지적도 나옵니다.


조국에 대한 검찰 수사, 실체보다 중요한 해석

검찰에 대한 조국 수사는 그 결과나 나온 뒤에도 서로 다른 진영과 입장에 놓인 국민와 정치권, 법조계, 언론에 의해 다른 평가를 받을 것으로 보입니다.


담론과 담론의 싸움이 부딪치는 과정에서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설득력을 얻는 주장이 이번 검찰 수사의 유력한 진실로 떠오를 가능성이 높습니다.


실체는 뒤로 가고 실체에 대한 해석과 주장이 더 큰 힘을 얻는 것입니다. 검찰 수사와 개혁의 성공 여부도 이 담론 싸움의 결과와 맞닿아 있을 것으로 봅니다. 


그리고 곧 다가올 내년 4월 총선의 결과에 따라 지금 정부도 최종적인 성적표를 받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기자는 이렇게 살아갑니다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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