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박태인 Sep 15. 2019

기자는 금방 바보가 된다

#기자는 이렇게 살고 또 이렇게 취재합니다

Photo by Austin Distel on Unsplash

"이렇게 취재하다 바보가 될 것 같다"


기사를 쓰다보면 문득 이런 생각이 들 때가 있습니다. 매일 새로운 경험을 하고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것이 기자란 직업일 듯 하지만 꼭 그렇지도 않습니다.


자기 출입처(담당 부서)에 매달려, 출입처와 관련된 기사를 쓰고, 출입처 관계자들과 어울려 술을 마시고, 또다시 기사를 쓰는 일상이 반복되다 보면, 많은 기자들은 출입처 외의 일은 잘 알지 못하는 바보가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제2외국어 공부는 차치하고라도 영어 공부조차 할 여유가 없는, 기본적인 엑셀 사용 방법도 모르는 기자들도 많습니다. 한국과 같이 뉴스가 매일 터지는 곳에서 기자들은 자신의 루틴을 소화하는 것만으로도 벅찬 것이 사실입니다.


아직 기자들에게 '취재 능력'과 '글쓰기 능력' 이외의 것을 요구하는 언론사가 많지 않은 점도 기자들이 다른 회사원에 비해 자기계발 동기가 적은 이유일 수 있습니다. (물론 이 모든 것은 지극히 제 주관적 경험이라 동의하지 않는 분도 많으실 것입니다. 제 주변에는 많진 않지만 시간을 쪼개 다양한 공부를 하는 선후배 기자들이 있습니다)


영어를 잘했던 한 선배 기자는 "영어를 잘한다는 이유로 내가 원치않는 출입처(국제부 등)에 끌려가는 경우가 많았다"고 했습니다. 그만큼 언론사에 영어를 잘하는 기자가 아직 드물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일에 60만 투자하라"는 선배 "일과 삶은 분리될 수 없다"는 선배

저 역시도 주말, 혹은 잠깐 휴가를 낼 때마다 자기계발에 대한 고민을 합니다. 어디까지 일에 투자하고, 어디까지 내 자신에게 투자할지, 기자에게 두 가지는 분리될 수 있는 것인지도 아직 잘 모르겠습니다.


한 선배가 저에게 "100을 기준으로 일에는 딱 60의 노력만 투자하라"고 하더군요. "그래야 오래갈 수 있다. 나처럼 조로하면 안된다"는 조언도 해줬습니다. 제가 일에 너무 많은 것을 걸고 있다는 지적이었습니다.


하지만 또 다른 선배는 저에게 이런 말을 해줬습니다. "기자란 직업은 일과 삶이 분리되기가 사실상 불가능한 직업이다. 그래서 일에서 행복을 느껴야 한다"고 말이죠. 일에 투자하고 그 안에서 성과를 내는 것과 삶의 행복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주장입니다. 전 이 두 가지 조언을 두고 고민과 (재)선택을 하는 과정을 반복하고 있습니다.


어느 날은 이젠 저녁 시간이라도 계발에 투자하자고 결심합니다. 하지만 어느 순간에는 저도 모르게 취재원과 저녁 약속을 잡고 있습니다. 약속이 없는 날이 오면 불안합니다. "내가 지금 일을 잘 하고 있는 것일까""취재원과 술이라도 마셔야 하는 것 아닌가"와 같은 또다른 불안감이 몰려옵니다.

Photo by AbsolutVision on Unsplash

변화한 언론환경, 과거와는 달라진 기자의 커리어 코스

자기계발에 대한 불안감이 계속 드는 것은(직장인으로서 사실 당연한 것이지만) 현재 언론 산업이 처한 어두운 현실 때문이기도 합니다. 2016년 첫 직장으로 매일경제, 이후 경력직으로 중앙일보에 입사했을 때도 저는 "이 회사가 내 월급을 언제까지 줄 수 있을까"란 생각에서 벗어날 수 없었습니다.


미국에서 저널리즘을 공부하며 망해가는 수많은 언론사를 목격했고, 한국으로 돌아와 신문은 읽는 사람을 찾기 어려웠던 점, 인터넷 기사로 종이신문 수익을 대체할 방법을 발견한 언론사가 나타나지 않은 영향도 있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지금 저와 같은 평기자와, 간부급(국장, 부장) 기자와의 커리어 경로는 달라질 수밖에 없습니다. 과거엔 오로지 기자 생활만 열심히 해정경사(정치, 경제, 사회부) 코스를 밟은 뒤 주요 부서 부장 →국장 or 논설위원으로 올라가는 커리어만으로도 기자는 미래를 보장받을 수 있었습니다. 내 출입처 취재만 잘하는 바보 기자가 되어도 괜찮았다는 뜻입니다. 주요 언론사의 부장이란 사회적 지위도 그때는 그리 나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현재 상황은 많이 달라졌습니다. 제가 부장이 될 시점(15~20년 후)에도 독자들이 여전히 신문을 볼지, 신문이 사라졌을 때 언론사들이 대체 방안을 찾을 수 있을지도 장담하기 어려운 것이 현실입니다. 대체지를 찾지 못한다면 현재 규모의 언론사가 15년 후에도 존재하는 것은 불가능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기자의 사회적 지위 역시 과거와는 많이 달라졌습니다.

Photo by Jen Theodore on Unsplash

편집국장이 되겠다는 기자는 없다

지금 제 동료 기자들 중 "A신문사에 편집국장이 되겠다"고 생각하는 기자는 거의 없습니다. "지금 내 일이 재밌고, 또 기자라는 직업이 좋지만 언젠가는 내려놓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나. 한때 언론사에 몸 담았다 대기업으로 옮긴 전직 고참 기자는 "언론사 수익구조상 신입 기자를 뽑는 사실 불가능한 상황"이란 말도 전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출입처 취재에 몰입하며 제 시간을 대부분을 쏟고, 또 그 과정에서 가끔 특종을 하면 기분이 좋다가도 문득문득 "이러다 바보가 되는 것 아닌가"라는 불안감에 휩싸입니다.


그래서 다른 분야의 책을 사거나(읽지는 않고) 영어 신문을 (보지는 않고) 구독합니다. 이렇게 브런치에 제 흔적을 남기고 독자들과 소통하는 것도 그런 불안감에서 비롯됐을지 모릅니다.


한 10년간은 자기 분야에 몰입하고 경력을 쌓는 것에 집중하며 '어떤 기자가 될 것'인지 천천히 스텝을 밟아가면 된다고 조언해주시는 분들도 계십니다. 타당한 조언입니다. 하지만 문득문득 밀려오는 불안감은 현재 신문 사업에 종사하는 기자 입장에선 상당한 부담일 수밖에 없습니다. 


기자는 이렇게 살아갑니다 바로가기

매거진의 이전글 조국 수사, 개와 늑대의 시간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