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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태인 Mar 08. 2020

기자는 45살이면 꺾인다

#기자는 이렇게 살고 또 이렇게 취재합니다

최근 한 선배를 만났습니다. 기자 생활을 하다 2016년 이세돌과 알파고의 대국을 본 뒤 충격을 받고 IT회사로 이직한 전직 기자입니다. '세상이 자신의 생각보다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고 생각했던 선배는 지금 AI를 연구하고 있습니다. 올해로 34살, 5년차 기자인 저에게 그는 이런 말을 해줬습니다.


"앞으로 10년 정도는 기자 생활을 재밌게 할 수 있을거다. 문제는 그 후가 문제다. 난 그 뒤부터 미래가 보이지 않았다"


AI를 공부했던 선배는, 지금 일하는 하루하루가 자신의 성장에 큰 도움이 된다고 했습니다. 전문성을 쌓을수록 연봉과 기회가 함께 증가하는 선순환 메카니즘에 올라탔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이 선배뿐만이 아닙니다. 많은 기자들과 오랜 기간 인연을 맺어온 한 외교안보 전문가도 술자리에서 이런 말을 해줬습니다. "박 기자님, 기자는 45살부터 꺾이는 것 같아요. 지금부터라도 공부해 학위라도 갖고 계셔야 합니다" 실제 40대 중반부터 꺾이는(?) 기자들을 만나 본 경험자의 분석입니다.


기자는 정말 40대 중반부터 꺾이나

이 전문가의 말을 조금 더 풀어보면 1. 기자는 30대나 40대에 하는 일이 크게 다르지 않다. 2. 40대가 되면 현장보단 내근으로 들어가며 재미가 없어진다 3. 40대 중반부턴 아이들은 크는데 다른 직업을 가진 친구들에 연봉이 밀리기 시작한다. 4. 40대 중반에 언론사에서 어중간한 위치에 있으면, 회사를 오래 다니기가 참 막막하다. (5. 앞으로 10년 후 언론사의 생존은 그 누구도 장담할 수 없다)


피라미드식의 언론사 승진 구조에선, 40대 중반부터 인사철 마다 씁쓸한 일들을 겪어야 한다는 조언입니다. 실제 현실이 꼭 그렇다고는 볼  없습니다. 많은 선배 기자들 그 나이와 연륜에 걸맞는 기사와 칼럼을  쓰고 있습니다. 승진과 자리는, 그것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에게만 중요한 가치로 국한되는 것이구요.


하지만 저는 이런 말을 들을 때잔뜩 긴장을 합니다. 집에 오는 길에 고민도 합니다. 다음날 아침이면 당장 써야하는 기사들에 허덕이며 모두 잊곤 합니다. 당장 오늘 저녁 술자리가 재밌고, 가끔 쓰는 단독 기사가 주는 짜릿함에 스물스물 올라오는 불안감들을 마음 구속으로 밀어내곤 합니다.

Photo by Jen Theodore on Unsplash

사실 기자는 참 재밌는 직업입니다. 특히 30대에 하기엔 이만한 직업을 찾기어렵습니다. 직위와 직업에 관계 없이 다양한 사람을 만나볼 수 있고, 또 많은 것들을 물어볼 수 있습니다. 이 과정에서  당연히 많은 것들을 배우겠죠. 공군 중위로 제대한 직후 국방부를 출입하며 3성 장군에게 거침없이 질문을 했을 때는 어찌나 짜릿하던지. 직업 자체가 역사 속 현장의 내밀한 이야기를 듣는 것이니 다른 직업을 가진 친구들과 비교할 때 훨씬 더 다양하고 풍부한 경험을 쌓을 수도 있습니다. 모든 언론사가 그렇지는 않지만, 제가 몸을 담고 있는 언론사의 연봉은 대기업 친구에 비해서도 뒤쳐지지 않습니다.


하루하루는 재밌지만 미래는 불안하다

하지만 많은 기자들은 한편으로 자신의 미래를 (극도로) 불안해합니다. 하루하루는 재밌지만, 조금만 더 멀리보면 답이  나오지 않는 답답한 현실과 마주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주변에 신문을 읽는 사람은 없고, 인터넷 기사는 돈이 되지 않고, 시청자들은 방송보다 유튜브를 선호하는 현실. 거기에 기사를 쓸 때마다 피해갈 수 없는 독자들의 '기레기 십중포화'를 견뎌내다 보면 무력해질 때가 많습니다. 미국에서 저널리즘을 공부하며, 수많은 언론사의 파산을 목격했던 저로서는, 한국에서 기자가 됐던 2016년 6월 1일부터 '이 회사는 내 월급을 언제까지 줄 수 있을까'라는 불안감을 달고 살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기자는 45살이면 꺾인다" "앞으로 10년은 재밌지만 그 뒤가 문제"라는 말을 들을 때면 (혹은 들은 순간에는) '내 인생 정말 큰일났구나'라는 조급함이 밀려오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그 선배처럼 시간을 쪼개 AI를 공부하거나, 외교안보 전문가의 조언처럼 대학원 학위를 딸 만큼 부지런한 것도 아니면서 그저 조급한 마음만 매일 동동 굴리는 것이지요. 코로나19와 같이 예상치 못한 재난으로 휘청하는 기업들을 볼 때면, 언론사도 내가 예상치 못한 순간에 우루루 무너지진 않을까 그런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US Newspaper Advertising Revenue Newspaper Association of America published data  [위키피디아]

미국의 파산한 언론사들 대부분도 점진적으로 쓰러진 것이 아니라, 어느 순간 쏜살같이 무너졌기 때문입니다. 저는 아직 이 문제에 대한 해결책을 찾지 못했습니다. 어느 날은 "하루하루 최선을 다해 살다보면 자연스레 길이 열릴 것"이란 생각을 갖다가도, 또 어떤 날은 "내가 미래가 아닌 현재에 너무 많은 투자를 하는 것은 아닐까"라는 회의감에 휩싸이기도 합니다. 그러다 또 어떠 날은 "외아들인데. 아빠랑 편의점이라도 하면 되지. 머 굶어 죽겠어"라는 근거없는 자신감을 내비치기도 하구요.


'기자만이 할 수 있는 일이 있다'

이 글을 읽는 직장인분들은 "기자뿐만이 아니라 모든 직업은 45살이면 위기를 맞는다"고 말하실지도 모르겠습니다. 미래가 불안한 것은 어떤 직업을 갖든 (전문직이 아니라면) 마찬가지라고 말이죠. 그래서 이직을 하고 또 이직을 하는 것이란 말씀에도 일부분 동감합니다. 하지만 전 기자라는 직업이 가진 특수성이 있다고 생각해, 기자들이 마주한 현실이 더 안타깝다고 생각합니다. 저희는 미래가 불안해 다른 직장을 갖는 순간 '기자라는 업(業)'을 포기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직장을 바꾸는 이직이 아니라 직업을 바꾸는 전직의 옵션만이 있다는 것이죠. 그래서 기자에서 또다른 대기업을 간 한 선배는 이런 말을 저에게 해주기도 했습니다. "기자가 아닌 다른 직업을 택했을 때 장점은 수십가지도 넘게 말을 할 수 있다. 하지만 그 수십가지의 장점이 '젊은 나이에 세상에 조금이라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기자의 장점 하나와 비슷할 수도 있다는 점'도 명심해야 한다"고 말이죠.


※미루고 미루다 다시 브런치에 오랜만에 글을 남깁니다. 다시 자주 쓰겠습니다. 공백이 길어 송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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