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을 사는 건 고통스러운 일입니다. 아직 집을 사지도 않았지만, 전세를 월세로 전환한 뒤 시드 머니를 최대화하려 소비를 줄이고 있습니다. 먹고 싶은 것, 사고 싶은 것 못 사는 스트레스가 상당합니다. 아마 집을 사면 지금보다 소비를 더 줄여야겠죠. 서울 10억 아파트를 기준으로 LTV 50%를 받으면 20년간 한 달에 원리금과 이자로 약 300만 원을 갚아야 합니다. 조금 더 비싼 아파트를 산다면 한 달 기준 400 이상 나갈 수 있습니다. 거기에 취득세와 중개비, 인테리어 비용까지 더하니 감당하기 어려운 수준으로 올라가더군요.
전 이제야 알았는데 주변에 많은 K직장인이 그렇게 살고 있었습니다. 지난해 경실련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평균 임금 노동자(3600만 원)가 서울의 평균 30평형대 아파트(12억 8000만 원)를 살려면 36년을 한 푼도 안 쓰고 모아야 합니다.
서울 평균 전세 가격(5억 9천)을 기준으로 서울 평균 30평형대 아파트(약 12억 5000만원)을 매수할 때 대출 현황.
그래서 계속 제 자신에게 묻는 질문이 하나 있습니다.왜 나는 이런 고통을 감수하며집을 사야 하는 걸까. 양가 부모님은 왜 집을 사라고 할까. 집을 안 사도 되지 않을까. 전세로 교통도 학군도 좋은 곳에서 살면 너무나 편안하고 좋은데, 왜 집을 사야 하는 걸까. 그런 생각들 말입니다. 틈만 나면 집을 사자고 하던 아내도 "그냥 전세 살면 안 될까"라며 두려움을 토로하더군요.
왜 집을 사야 할까요? 개인적으론 두 가지 심정이 교차하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첫째는 "집은 사면 무조건 오른다"는 한국 사회의 지배적 패러다임에 올라타자는 자산 증식의 욕망입니다. 사이클을 잘 타서 2~3번 정도 아파트를 잘 사고팔면 월급으론 상상할 수 없는 돈을 만질 수 있다는 얘기를 너무 많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막상 부동산을 공부해 보니 1 주택자가 집을 사고팔며 돈을 버는 것은 어려운 일입니다. (물론 전세를 살며 갭을 끼고 산 집을 사고팔 수는 있겠죠.) 그래서 이 마음은 생각보다 크진 않습니다.
자산 증식의 욕망보다 조금 더 큰 건 두려움 같습니다. '무주택자'라 조롱받는 두려움 말이죠. 코로나19 시기에 집을 살 기회를 놓친 사람들에겐 '벼락 거지'란 딱지가 붙었습니다. 박탈감을 느낀 이들이 스스로에게 자책하듯 붙인 호칭이 시작이겠지만, 결국 언론을 통해 수차례 재생산되며 무주택자를 조롱하는 멸칭이 되었습니다. 여기서 벗어나고 싶은 마음이 가장 큰 것 같습니다. 18년도에 결혼하며 집을 사지 못한 (사실 그땐 돈이 없기도 했지만요) 그 끔찍한 실수를 다시는 경험하고 싶진 않습니다.
그 조롱이란 두려움에 아파트가 감당하기 어려울 만큼 올랐어도 조금만 떨어지면 수많은 2030 세대들이 추격 매수에 나서는 것은 아닐까 생각합니다. 지난 3월 서울 아파트의 2030 세대 매수 비중은 35.9%에 달합니다. 또한 그 두려움이 지금의 집값을 버텨주게 하는 것은 원동력일지 모릅니다. 수억 원의 대출을 내서 내가 살 집을 사는 것이 정말 맞는 일일지. 아직도 확신이 서진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