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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태정 Dec 12. 2019

몬트리올, 패치워크 속의 패치워크

*어지럽고 어색한 글이지만, 2015년 여름에 쓴 그대로 올린다. 2015 FIFA 캐나다 여자월드컵은 첫 해외 출장이자 첫 FIFA 주관 대회 취재였다. 기자 2년 차에 잡은 큰 기회라 걱정도 많았지만, 감동적인 경기를 펼쳤던 한국여자축구국가대표팀과 더불어 꽤나 긴 시간을 보냈던 도시 몬트리올 역시 좋은 기억으로 남아있다.


패치워크(patchwork). 수예에서, 크고 작은 헝겊 조각을 이어 붙여서 커다란 하나의 조각을 만드는 기법.


캐나다는 거대한 패치워크 같다. 퀘벡주는 그 패치워크를 이루는 가장 큰 조각이다. 몬트리올은 퀘벡주라는 조각 속에 다시 작은 패치워크를 이루고 있었다.


2015 FIFA 캐나다 여자월드컵 취재를 위해 몬트리올행 항공편을 예약하며 ‘어쩌면 이곳에 오래 머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한국여자축구국가대표팀이 조별리그 1, 2차전에 이어 16강전까지 이 곳에서 치렀으니 그 예상은 어느 정도 맞아 든 셈이다.


몬트리올에 대한 사전 정보는 많지 않았다. 중학교 과학 시간에 들어본 것 같은 몬트리올의정서(오존층 보호를 위한 국제협약)가 가장 먼저 떠올랐고, 퀘벡주에 속하며 프랑스어권 도시라는 것(이 정도로 프랑스어>>>영어일 줄은 몰랐다) 정도가 몬트리올에 대해 알고 있는 전부였다.



몬트리올의 첫인상을 보고 패치워크를 떠올렸던 이유는 거리의 풍경 때문이었다. 2년 전 방문했던 퀘벡시가 17세기 유럽을 그대로 옮겨놓은 느낌이고, 몬트리올로 오기 직전 경유했던 밴쿠버가 ‘이것이 북미다’의 느낌이라면, 몬트리올은 그 지리적 위치처럼 서쪽 멀리의 밴쿠버와 동쪽 가까이의 퀘벡 사이, 딱 그 정도의 느낌이었다.


작은 정원이 딸린 작은 집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고, 각 집마다 인도부터 현관까지 길게 이어진 계단과 발코니가 있었다(처음으로 묵었던 숙소는 150년 된 건물에 있는 민박이었는데 3층까지 여행가방을 들고 나르느라 낑낑댔다). 그러다가 네모 반듯한 현대식 건물이 나란히 붙어있기도 하고, 빽빽한 고층 빌딩 숲 사이에 중세 고딕풍의 성당이 들어서 있기도 하다. 그 사이사이 벽에는 색깔도 그림체도 다양한 그라피티가 그려져 있다. 생뚱맞은 듯 아닌 듯, 뻔뻔한 듯 자연스러운 듯, 몬트리올은 여러 가지 얼굴로 패치워크 돼있었다.



요상한 거리 풍경 말고도 당황스러웠던 것은 또 있다. 이곳 사람들이 이번 여자월드컵에 그다지 관심 있어 보이지 않은 것이다. 공항에서 올림픽경기장으로 가는 택시를 탔는데, 택시 기사는 당시(6월 5일~7일) 몬트리올 시내에서 열리고 있었던 F1 경기 ‘그랜드프릭스몬트리올’에 흥분해 있었다. “오늘이 마지막 날이고 결승전이 있으니 꼭 가보라”고 말했다. 여자월드컵을 보러 왔다고 했더니 “아~ 알고 있다”는 짧은 답변이 돌아왔다.


택시 기사의 말대로 몬트리올은 월드컵보다 F1의 열기로 가득했다. 경기가 열리는 올림픽경기장 옆에는 월드컵 일정을 알리는 현수막들이 눈에 띄었지만, 시내에는 각 상점들마다 체커기(F1에서 경기 종료를 알리는 깃발)가 나부꼈다. 대표팀 훈련장에서 만난 공격수 박은선은 “밤에 시끄러워서 잠을 못 잤다”고 했다. 밤새 자동차의 성능을 과시하는 엔진 소리가 시내를 가득 채웠기 때문이다.


월드컵 분위기를 느낄 수 있던 곳은 스포츠펍이었다. 몬트리올, 밴쿠버, 오타와 시내에는 많은 스포츠펍들이 있었다. 대형 스크린을 통해 스포츠를 보며 맥주를 마시는 것은 북미인들의 일상적인 여가인 듯했다. 축구, 야구, 농구 등 종목도 가리지 않았다. 월드컵 경기 시간이면 펍에 앉아 맥주를 마시며 경기를 즐기는 사람들이 많았다. 펍 바깥에는 여자월드컵 맞이 맥주 할인 행사 포스터가 붙어있었다.



사실 몬트리올은 북미의 도시 가운데 축구 인기가 적지 않은 곳이다. 몬트리올을 거닐다 보면 공원에서 축구를 즐기는 남녀노소를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또한, 몬트리올에는 북미 최상위 프로축구리그 메이저리그사커(MLS)에 참가하고 있는 축구팀, 몬트리올임팩트(프랑스어 명칭으로는 앵팍트드몽헤알)가 있다. 몬트리올 올림픽경기장 바로 옆에 위치한 사푸토스타디움(사진:수용인원 20,801명)을 홈구장으로 사용하고 있다. 큰 경기에 한해서는 올림픽경기장(수용인원 66,308명)을 사용하기도 한다.


주몬트리올총영사관 관계자는 “캐나다에서의 프로스포츠 비중을 따지면 70%가 아이스하키이고 나머지 30%를 야구, 농구, 축구 등이 나눠가지는 것인데, 몬트리올은 그중 축구의 비중이 가장 크다”고 했다. 16세기~18세기를 거쳐 프랑스와 영국의 지배를 받으면서 유럽 축구문화의 영향을 많이 받은 것을 그 이유로 추측할 수 있다.


몬트리올은 1976 몬트리올 올림픽을 치르며 엄청난 재정난을 떠안게 됐는데(부채를 갚는데 30년이 걸렸다고 한다), 이후 2005년 메이저리그베이스볼(MLB) 야구팀 몬트리올엑스포스가 워싱턴으로 연고 이전하고, 2010년 축구팀이 창단됐다는 점은 눈여겨볼 만하다.


월드컵 기간 중 대표팀 수비수 임선주가 호텔 헬스장에서 카카와 함께 찍은 사진이 화제가 됐었다. 올랜도시티SC 소속인 카카는 몬트리올임팩트와의 경기를 위해 원정을 온 것이었다. 6월 20일 열린 양 팀의 경기는 사푸토스타디움을 가득 채운 관중들 앞에서 홈팀의 2-0 승리로 끝났다.



몬트리올은 스포츠 역시도 크고 작은 조각들의 패치워크였다. 스포츠는 몬트리올 사람들의 일상을 채우는 큰 부분이었고, 그 인기의 크기는 다르지만 다양한 스포츠를 보고 즐기며 살아가고 있었다. 앞서 말했듯 캐나다의 최고 인기 스포츠는 단연 아이스하키다. 몬트리올에서 가장 인기 있는 프로 스포츠팀 역시 내셔널하키리그(NHL)에 참가하고 있는 몬트리올캐내디언스(프랑스어 명칭으로는 레카나디앵드몽헤알)다. 시내 거리의 기념품 가게와 공항 면세점에서도 이 팀의 상품이 가장 먼저 보일 정도다. 거리에는 이 팀의 유니폼을 입고 다니는 사람들도 많다.


몬트리올 주민의 절반 이상은 프랑스계 캐나디안이다. 몬트리올캐내디언스는 이들의 정체성을 대변한다. 1909년 창단된 몬트리올캐내디언스는 초창기에 프랑스계 캐나디안 선수만 계약이 가능할 정도로 지역색이 두드러지는 팀이었다. 1924년에는 영국계 캐나다인 커뮤니티를 기반으로 한 몬트리올마룬스가 창단됐고(14년 뒤 해체됐다), 두 팀은 살벌한 지역 라이벌 관계를 이루기도 했다. 1760년 영국의 침공으로 식민 지배를 받았던 프랑스계 주민들에게 몬트리올캐내디언스는 그들의 아픈 역사를 어루만져주는 존재였다.


다른 북미 지역에 비해 축구의 인기가 뜨겁다고는 하나, 몬트리올임팩트가 몬트리올캐내디언스의 아성을 위협하기에는 매우 모자라다. 몬트리올의 패치워크를 이루는 조각들 중 종목 자체의 인기 차이도 있지만, 몬트리올캐내디언스가 가진 역사와 정체성의 힘이 너무나 크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몬트리올 기념품으로는 메이플 시럽도 좋지만 몬트리올캐내디언스의 상품 역시 매우 적절하지 않을까 싶다(나는 왜 안 사 왔을까 후회 중이다).



한국 대표팀이 프랑스와의 16강전을 끝으로 한국으로 금의환향 한 뒤, 나는 비행기 일정 상 몬트리올에 더 남아있어야 했다(8강 진출을 기대하고 항공편을 예약했기 때문). 그리고 마침 몬트리올의 정체성을 직접적으로 볼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 6월 24일은 생장밥티스트데이, 일명 퀘벡데이였다. 전야인 23일부터 프랑스계 캐나디안들의 축제가 시작됐다. 거리에는 퀘벡주를 나타내는 파란색 백합기가 내걸렸다. 파크드아트 광장에는 축하공연이 시작됐다. 사람들은 거리공연을 즐기며 맥주를 마시고 음악에 맞춰 춤을 췄다. 축제는 밤늦도록 계속됐다.


몬트리올에서 2주에 가까운 시간을 보낸 터라 이 축제에 동화되고픈 마음이 들었다. 24일 당일이 돼서는 일부러 평소 잘 쓰지 않는 파란색 아이섀도를 칠하고 나갔다. 24일에는 일부 음식점을 제외한 모든 상점들이 문을 닫았다. 전야의 열기에 비해 너무나 조용한 분위기에 실망하며 사람들을 찾아 이리저리 헤맸다. 몽헤알 산 산책로를 돌아 플라토드몽헤알로 가자, 시내가 왜 그리 조용했는지 알 수 있었다. 사람들은 생드니가에서 열린 퍼레이드 행렬에 모여있었다.


온통 파란색이었다. 백합기에 그려진 백합은 프랑스 왕실의 상징이었고, 때문에 퀘베쿠와(퀘벡에 사는 프랑스계 사람)들은 캐나다 국기인 빨간 단풍기보다 파란 백합기를 더 소중히 생각한다. 이들은 몬트리올 올림픽경기장에서 연달아 열린 월드컵 16강전과 8강전에서 열렬히 프랑스를 응원했다. 마치 프랑스의 홈경기 같을 정도였다.


재미있는 것은 사실 프랑스인들에게 퀘베쿠와는 조롱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는 점이다. JTBC의 예능 프로그램 ‘비정상회담’을 보면 퀘벡 출신 캐나다인 기욤은 프랑스어로 이야기를 하고 난 뒤에 꼭 프랑스 출신 로빈과 벨기에 출신 줄리안에게 “괜찮았어?”라고 물어보며 눈치를 본다. 로빈과 줄리안이 기욤의 프랑스어 발음이 이상하다며 놀리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퀘베쿠와들은 자신의 뿌리를 사랑하며 캐나다라는 거대한(세계에서 두 번째로 큰) 땅 덩어리의 한 조각을, 꽤 튀는 한 조각을 담당하고 있다.



캐나다와 퀘벡은 ‘한 지붕, 두 가족’처럼 아슬아슬해 보이기도 한다. 퀘벡 분리주의는 캐나다 정치와 경제에 중요한 쟁점이자 변수다. 이미 두 차례의 주민 투표가 있었고(1995년 투표에서는 약 1% 차이로 독립이 무산됐다), 여전히 퀘벡의 분리독립을 외치는 이들이 많다. 패치워크의 가장 큰 조각이 언젠간 떨어져 나갈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패치워크는 이어진다. 몬트리올 시기를 보면 이 곳이 얼마나 다양한 민족성의 패치워크로 이뤄진 지역인지 잘 알 수 있다. 잉글랜드의 십자기를 중심으로 나눠진 네 구역에는 프랑스를 상징하는 백합, 잉글랜드를 상징하는 장미, 아일랜드를 상징하는 클로버, 스코틀랜드를 상징하는 엉겅퀴가 그려져 있다. 일례로 퀘벡데이에는 온 도시가 파란색이었지만, 아일랜드계 사람들의 축제인 세인트패트릭데이(3월 17일)에는 온통 초록색으로 물든다.


몬트리올은 알록달록하다. 1976 몬트리올 올림픽의 마스코트인 비버 ‘아미크’도 무지개 띠를 두르고 있다. 퀘베쿠와를 포함해 다양한 뿌리를 가진 사람들이 함께 모여 살며 저마다의 삶을 즐긴다. 크기도 모양도 제 각각인 조각들이 어색한 듯, 자연스러운 듯 어우러져 사는 것이 세상이다. 몬트리올은 그런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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