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어딘가 조금 고장 난 것 같아.
심리상담을 받아봐야겠다고 처음 마음먹었을 때의 생각은 그런 것이었다. 어딘가 조금 고장 난 것 같은데, 그것을 혼자 고치기 어려우니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봐야겠다는 생각. 그리고 1년 넘게 심리상담을 받은 현재, 나는 그때의 생각이 완전히 틀렸다는 것을 깨달았다.
나는 어딘가 조금 고장 난 것이 아니었다. 나는 엉망진창이었다.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나의 심리상담 경험은 그런 것이었다. 심리상담을 진행하는 동안 셀 수 없이 나의 못남과 구림을 만났다. 그동안 생각하지 못했던 약점도 있었고, 알고 있었지만 모른 척했던 치부도 있었다. 그 못나고 구린 녀석들은 서로 얽히고설켜 시작과 끝을 알 수 없을 정도였는데, 그 거대한 엉망진창을 목도했을 때 두려움보다 후련함이 느껴진 것은 지금 돌이켜 생각해도 놀라운 일이다.
그 녀석들을 내 입으로 불러내 내 눈으로 마주하고 내 손으로 쓰다듬었다. 그 녀석들을 나의 일부로 인정하는 과정이었다. 그것만으로도 퍽 편안해졌다. 내 넘치는 자기애도 차마 미치지 못한 어두운 구석에 볕이 들었다. 그동안 사랑해 마지않았던 한편의 나와, 사랑하지 못했던 그 뒤편의 내가, 서로를 알아차렸다.
선생님은 내가 무척 건조하다고 했다. 로봇 같다고도 했다. 나도 동의할 수밖에 없어서 크게 웃었다.
아이러니하게도 나는 나의 무기력이 늘 축축하다고 느꼈다. 때때로 끈적한 늪이 나를 끝없이 빨아들여 지구 내핵까지 데려가는 것 같다고 느꼈다. 중력을 이기지 못해 꼼짝없이 이불 속에 누워 아무것도 하지 못할 때, 나는 깃털처럼 보송해지고 싶다고 생각했다.
내 안 깊은 곳에 있는 어둡고 습한 공간이 보송해지기는 아마 힘들 것이다. 오랫동안 닫아둬 곰팡이가 슬고 이끼가 가득하다. 대신 나는 환기창을 냈다. 건조해 바스락거리는 바깥과 축축해 질척거리는 안을 연결하는. 바람이 불어 들고, 바람이 불어 나간다. 사실 이끼는 습도 조절 능력이 탁월하다.
세속적인 제목에 그렇지 못한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