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생각하면 굉장히 부끄러운 일이다. 그러니까 내가 열혈 축구팬이라 자부하던 시절, 내게 축구는 남자축구뿐이었다는 것 말이다. 공중파 중계가 있었던 연령별 여자월드컵 몇 경기를 제외하고는 여자축구를 접할 기회가 없었고, 나는 굳이 찾아보려는 노력을 하지 않았다.
여자축구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매우 단순하면서도 필연적인 이유에서였다. 축구전문매체에서 일하게 된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여자축구 취재를 담당하게 됐기 때문이다.
남자축구에 비해 여자축구는 관심도가 현저히 떨어진다. 매체 입장에서는 소위 '기사가 팔리지 않는' 종목이다. 그래서 여자축구 취재는 '어쩌다 일정이 맞는' 기자가 돌아가며 맡는 경우가 많고, 인력에 여유가 있는 매체라면(드물지만) '막내급' 기자 혹은 '신참' 기자의 담당으로 떨어진다. '막내 신참 수습기자'였던 2014년 상반기의 나는, 더구나 '여기자'였던 나는 자연스럽게 여자축구를 전담하게 됐다.
첫 여자축구 취재는 2014년 4월 22일이었다. 한국여자축구국가대표팀이 2014 AFC 여자아시안컵을 준비하기 위해 소집했을 때다. 당시에는 몰랐지만 여자축구 취재 현장으로서는 흔치 않게 취재진이 많은 날이었다. 여자축구 간판 공격수 박은선이 4년 만에 대표팀에 복귀하는 자리였기 때문이다. 직전해 말 불거졌던 성별 논란(박은선이 WK리그에서 맹활약을 펼치자 타 팀 감독들이 합심해 한국여자축구연맹에 박은선의 성별 진단을 요구한 사건)의 상처를 딛고 새 출발하는 박은선을 취재하기 위해 많은 기자들이 '시간을 내' 파주에 위치한 국가대표팀트레이닝센터(NFC)를 찾았다.
그날은 내가 NFC를 방문한 첫날이기도 했다. 뉴스에서만 보던 장소에 처음으로 발을 디뎌 신기하고 설레는 마음이 컸지만, '수습기자답게' 같은 매체 선배를 따라 처음 보는 다른 매체의 선배 기자들에게 인사를 하고 명함을 돌리며 돌아다니느라 정신이 없었던 것 같다. 그리고는 박은선이 플래시 인터뷰를 위해 백드롭 앞에 섰을 때, 그를 둘러싼 기자들 사이에 꼼짝없이 바짝 끼어서 녹음기를 켠 휴대폰을 그를 향해 쭉 뻗고 있었을 것이다.
기억나는 것은 박은선이 무척 행복해 보였다는 것, 많은 취재진이 부담스럽지 않냐는 질문에 "원래 이런 것 좋아한다"고 답하며 웃은 것, "오랜만에 대표팀 유니폼을 입으니 태극마크가 무겁게 느껴진다"며 왼쪽 가슴 위에 있는 호랑이 자수에 손을 가져다 댄 것 등이다. 기자가 되기 전부터 박은선의 바람 잘날 없던 커리어를 뉴스로 접해왔던 나는 초면인 그에게 알 수 없는 유대감을 느껴 잠시 울컥하기도 했다.
인터뷰가 끝난 뒤에는 대표팀의 훈련을 지켜봤다. 봄이라 연두와 초록 사이 어느쯤 색깔인 잔디 위에서, 내 또래의 여자들이 달리고 공을 찼다. 한국에서 가장 축구를 잘하는 스무 남은 여자들. 훈련 분위기는 화기애애했고, 그들의 즐거운 표정과 웃음소리는 지켜보는 사람마저 충만하게 했다. 나는 문득 내 또래 여자들로부터 이런 생기를, 생동감을, 느껴본 지가 퍽 오래됐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날 이후 꾸준히 여자축구 취재를 하면서 관심은 애정이 됐다. 여자축구가 전해주는 기쁨과 즐거움, 대리만족, 심지어 슬픔과 분노, 억울함까지도 내게는 영감의 원천이자 기자 생활의 동력이 됐다. '아직도 축구기자'를 하면서 얻게 된 뜻밖의 수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