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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태정 May 21. 2022

사람은 싫지만 인터뷰는 좋아

 기본적으로 혼자 있는 것을 좋아한다. 이른바 '집순이', MBTI로 따지면 극 I형. 일이든 놀이든 사람(들)을 만나고 집에 돌아오면 '휴~ 오늘도 내가 수고가 많았다'하며 휴식에 돌입한다. 사람(들)과 있을 때는 말 수가 적은 편인데, 거기다 대체로 목소리가 낮고 말투가 느리다 보니 종종 상대를 답답하게 한다. (나는 안 답답해서 괜찮다.)


 급한 성미가 예의를 이기는 사람들로부터 "말 좀 해", "말해봐", "말할 줄 아니?" 같은 소리를 하도 많이 들어 이골이 났지만, 축구기자를 하면서부터는 조금은 다른 종류의 이야기를 듣기 시작했다. "너 도대체 인터뷰는 어떻게 하는 거야?", "질문은 하니?", "혹시 독심술 하니?" 가끔은 정말 궁금해서 물어보는 사람들도 있기에 이것마저 무례함으로 퉁칠 수는 없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나는 인터뷰를 좋아한다. 그리고 꽤 잘한다. 인터뷰를 잘한다는 것이 무엇인지는 주관적인 견해에 따라 조금씩 달라지겠지만, 내게 좋은 인터뷰란 상호 작용이 잘 일어나는 인터뷰다. 인터뷰어(interviewer)와 인터뷰이(interviewee)의 좋은 상호 작용은 진심의 이야기를 끌어낸다. 말을 안 하고 어떻게 상호 작용을 하냐고? 그렇게 묻는 사람이 있다면(정말 있다!), 이렇게 답할 것이다. "나 말 해. 너랑 말하고 싶지 않은 거야."


 물론 모든 인터뷰나 인터뷰의 모든 과정을 좋아하는 것은 아니다. 인터뷰어가 다수인 플래시 인터뷰나 기자회견은 좋아하지 않는다. 웬만하면 질문 없이 구석에 있는 편이다. 좋아하는 것은 1대1 인터뷰다. 인터뷰이가 2~3명으로 늘어나는 것은 괜찮다. 가장 중요한 것은 내가 선택하고 기획한 인터뷰여야 한다는 점이다. 상사나 클라이언트가 주문해서 하는 인터뷰에서는 재미를 찾기 어렵다. 그리고 인터뷰 약속을 잡기 위해 첫 컨택을 하는 순간은 솔직히 늘 괴롭다. 적절한 타이밍을 고민해 전화를 걸어 나를 소개하고 인터뷰 의사를 묻는 과정은 몇 번을 해도 어색하고 거북하다. 약속 당일이 돼 집을 나서 약속 장소로 향하는 동안도 조금 불편하다.


 그렇게 피곤해하면서도 인터뷰가 좋은 이유는 호기심이다. 극도로 내향적인 내가 그나마 바깥 생활을 영위할 수 있는 이유도 호기심일 것이다. 나는 궁금한 것이 많고, 관찰하는 것이 재밌고, 이해할 수 없는 것이 싫다. 20대 초반까지 내 호기심은 대체로 '우주와 나'라거나 '우주의 나'라거나 '나의 우주'를 맴돌았는데, 좀 더 나이가 들면서는 서서히 '타인의 우주'에도 관심을 열게 됐다. 아니, 더 솔직하자면, '나의 우주'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타인의 우주'를 이해하는 것도 필요하다는 것을 깨닫게 됐다. 언제나 나는 내가 가장 궁금하다. 어찌 됐건 이해하고자 하는 우주가 확장됐다는 사실은 내가 현실에 발 딛고 사는 데 매우 긍정적인 영향을 줬음에 틀림없다.


 인터뷰는 '타인의 우주'를 이해하는 좋은 수단이다. 저마다의 우주에서 각자가 주인공인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는 것은 무척 흥미롭다. 대다수의 사람들은 적절한 판만 깔리면 자기 이야기 하는 것을 좋아한다. 나는 큰 노력 없이 좋은 리스너(listener)가 된다. 매번 그렇지는 않지만 구체적인 질문지를 준비해 가는 것보다 '나는 당신이 궁금합니다' 하는 기운을 뿜어내는 것이 인터뷰에 더 중요한 역할을 하기도 한다.


 인터뷰이가 "이런 얘기는 처음 하는 건데..." 내지는 "이런 얘기까지 하게 될 줄은 몰랐는데..." 같은 말로 운을 떼는 것은 좋은 신호다. 모든 인터뷰이가 뛰어난 스토리텔러인 것은 아니기에 때로는 내가 언어를 정돈해주고, 그러면 그가 "맞아요. 그 말이에요!" 하면서 이야기를 계속한다. 그렇게 수다처럼 이어지는 인터뷰는 나중에 녹취를 풀 때 꽤나 고생스럽기는 하지만, 그것을 감수할 만큼의 뿌듯함과 보람이 있다.


 저마다의 성취와 결핍, 굴곡, 동기를 가진 사람들이 저마다의 생활감이 담긴 언어로 들려주는 이야기는 가장 개인적인 것이 가장 보편적인 것이 될 수 있다는 말을 실감하게 한다. 때로 나는 내가 절대 경험해본 적 없는 우주를 탐험하며 그 우주의 주인공과 동화된다. 어쩔 때는 그의 이야기에 그보다도 먼저 눈물이 핑 돌아 당황스럽기도 했다. 가장 개인적인 경험이 불러온 가장 보편적인 감정으로 인터뷰어와 인터뷰이가 연결된 순간에는 침묵도 인터뷰의 일부가 된다. 아, 독심술 하냐는 질문이 꼭 틀린 것만은 아니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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