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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태정 Apr 02. 2022

그 많던 '국뽕'은 어디로 갔을까

 애국가를 들으면 벅차오르던 때가 내게도 있었다.


 나를 매료시켰던 2002 한일월드컵의 광기. 그것의 팔 할은 '국뽕'이었다. 나는 '국뽕'에 취한 여느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Be the Reds!' 티셔츠를 입고 태극기를 목에 두른 채 거리를 활보했다. 지금이라면 정치적 성향을 오인받기 십상인 행위지만, 그때는 너무나 흔하고 자연스러운 모습이었다.


 그 여름, 축구 말고는 모든 것이 멈춘 듯했다. 한국남자축구국가대표팀이 조별리그에서 기대 이상의 선전을 펼칠수록 한반도 전체가 축구에 몰두했다. 뉴스며, 광고며, 예능 프로그램이며, TV만 틀면 월드컵에 관련된 이야기뿐이었다. 가장 기억에 남는 콘텐츠는 아무래도 짧은 시간 동안 강렬한 인상을 남기는 광고다. 배우 한석규가 "박수 다섯 번!" 하며 '붉은악마 응원법'을 알려주던 장면, 가수 장나라가 "황선홍 아저씨, 한 골만 부탁해요!" 하며 뽀뽀를 날리던(?) 장면으로 기억되는 양대 통신사 광고가 큰 인기를 끌었다.


 한국이 16강에 진출하자, 당시 내가 다니던 중학교는 교장 선생님의 재량으로 한국 경기가 있는 날에 교복 대신 빨간 티셔츠를 입을 수 있게 했다. 머리카락과 치마 길이를 밀리미터 단위로 단속하던 학교로서는 파격적인 결정이 아닐 수 없다. 나는 신이 나서 티셔츠를 리폼하고 응원 피켓을 만들었다. 티셔츠 뒷면에 흰색 접착테이프를 잘라 붙여 좋아하는 선수의 이름으로 수제(?) 마킹을 하는 정도였는데(예: N I KIM), 그것만으로도 친구들과 깔깔거리며 퍽 재미있게 놀았던 것 같다.


 물론 모두가 그 흥분에 동참한 것은 아니었다. 한국 경기가 있는 날에도 여전히 교복을 입는 아이들도 있었고, 학교의 결정을 영 탐탁지 않아하는 선생님들도 있었다. 특히 오후 3시 30분에 킥오프한 조별리그 2차전 미국전을 위해 수업을 일찍 끝냈던 것이 그들을 가장 어이없게 했던 것 같다. 민망하게도 나는 당시 나처럼 월드컵에 흠뻑 빠지지 않았던 사람들을 '애국심이 없다'고 여겼다.


 스포츠를 응원하는 것은 사람들에게 소속감을 느끼게 해 준다. 소속감은 사회적 동물인 인간의 정신건강에 꼭 필요한 요소다. 내가 축구에 빠져들게 된 것도 그런 연유일 테다. 뜨끈뜨끈했던 월드컵 응원 열기를 온몸으로 느끼며 '대~한민국'으로 하나 된 사람들 속에서 세로토닌과 옥시토신의 대잔치가 벌어졌다. 그리고 나는 그때 느낀 소속감을 애국심과 동일시했다. '국뽕'에 취한 나는 학교 조회 시간의 국민의례나 애국가 제창에서조차 가슴이 뛰고 눈물이 날 것 같았다. 외신에서 한국의 길거리 응원 문화와 응원이 끝난 뒤 뒷정리를 철저히 하는 투철한 시민의식(?)을 칭찬(?)했다는 소식을 들을 때마다 어깨가 으쓱댔고, '대한민국 국민으로 태어난 것이 자랑스럽다'는 간지럽다 못해 소름이 끼치는 말도 곧잘 하고 다녔다.


 '국뽕'에 취한 것도 축구 때문이었지만 스멀스멀 '국뽕'이 사라진 이유도 축구다. 월드컵을 계기로 축구라는 스포츠에 푹 빠진 나는 국가대표 경기뿐 아니라 K리그 경기도 챙겨보게 됐고, 조금 시간이 지나서는 유럽 리그에도 관심을 갖게 됐다. 지지하는 클럽이 생기고, 그 클럽의 역사를 배우고, 좋아하는 플레이 스타일을 정립해 가는 등의 수순을 밟았다. 그러면서 축구 응원이 주는 소속감만큼이나 축구 자체가 주는 즐거움의 비중이 커졌다. 소속감이라는 것 또한 국민에서 축구 팬, 축구 팬에서 특정 클럽 지지자로 그 대상이 구체화됐다.


 준거 집단이 특정되면 여집합의 집단과 위화감이 생기기 마련이다. 내가 잉글랜드 클럽인 리버풀FC를 응원하기 시작할 무렵, '해외 축구의 아버지(해버지)' 박지성이 리버풀의 라이벌 클럽인 맨체스터유나이티드(맨유)에 입단했다. '한국인이라면 당연히 맨유를 응원해야 한다'는 문화적 정서 속에서 수년간 "넌 (한국인인데) 왜 리버풀을 응원하냐"는 질문을 받았다. 그에 대한 내 대답은 "하하, 둘 다 응원하지"였다가 "박지성은 잘했으면 좋겠는데 경기는 리버풀이 이겼으면 좋겠어"였다가 "아니, 박지성이 맨유 가기 전부터 리버풀을 좋아했거든"에서 "어쩌라고"로 변화했다. 그래도 요즘은 조금 나아서 토트넘홋스퍼와 리버풀의 경기에서 손흥민의 부진을 바라더라도 대놓고 뭐라 할 사람은 없다.


 축구기자로 일하면서는 매스미디어의 일선에서 자연스레 축구와 내셔널리즘의 연결성에 대한 고찰을 하게 됐는데, 결론은 대체로 회의적이었다. 축구는 소속감을 기반으로 하는 팀 스포츠 중에서도 유독 내셔널리즘과의 연결성이 짙기에 혹자는 축구가 전쟁을 대체한다(완전히 대체할 수는 없는 것일까?)고도 표현한다. 역사적 과오에 대한 반성의 맥락에서 내셔널리즘의 기미만 보여도 화들짝 놀랄 독일 같은 나라조차 월드컵에서만큼은 검빨노 삼색기를 자랑스럽게 흔든다. 그 점은 축구의 매력인 동시에 함정이다. 소속감에 도취된 사람들이 집단으로 뿜는 광기의 반향은 긍정적일 때보다 부정적일 때 훨씬 더 치명적이다. 국가대표 경기에서 실수를 한 선수가 집단 비난과 조롱에 시달리게 되는 것이 단적이고 기본적인 예다.


 축구기자를 하면서 축구판을 이루는 구성원들을 개별적으로 인식하게 된 것도 '국뽕' 실종의 큰 이유다. 국가대표이거나 축구선수이기 전의 개개인과 만나면서 세상과 사람을 보는 시야가 넓어졌다. '국뽕'이 걷히자 더 많은 장면이 보였고 더 다양한 이야기가 들렸다. '국뽕'은 축구라는 콘텐츠를 소비하는 여러 방법 중 하나일 뿐, '국뽕' 없이도 축구를 마음껏 즐길 수 있고 국가대표를 응원할 이유도 수만 가지다.


 그래서 강렬했던 2002년 '국뽕'의 추억은 아름다운 그때 그 시절로 미화할 것도 부끄러운 흑역사로 치부할 것도 없다. 그 후 20년이 지나는 동안 이 나라를 좋아하지 않을 이유가 쌓이고 쌓인 것도 맞지만,  2002 한일월드컵이 내 인생의 큰 사건이었던 것은 변함없는 사실이고, 그때를 반추하는 것은 퇴행이 아니라 성찰이다. 지금 나는 '국뽕'이 0에 수렴하는 축구 팬이자 축구기자이며 대한민국 국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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