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의 날 1
“여기 가을 햇살이 / 예순 두 해 전 일들을 기억하는 그 햇살이 / 그때 핏덩이던 할아비의 주름진 앞이마와 / 죽은 자의 등에 업혀 목숨 건진 / 수수깡 같은 노파의 잔등 위로 무진장 쏟아지네.”
프랑스 작가 르 끌레지오는 이 섬에 멜랑꼴리(mélancolie)가 있다고 했다. 강중훈 시인은 이를 ‘섬의 우수’라 표현했다. 우수. 그렇다. 제주도 곳곳에서 마주하게 되는 처연하고 먹먹한 감정을 표현할 이보다 적확한 단어는 없을 것이다. 모르면 몰라도 알게 된 순간부터는 모른 척할 수 없다. 한국에서 가장 사랑받는 관광지 제주도에 우수가 어려 있다는 것을 말이다. 길을 걷다 계속해서 마주치는 4.3 유적지, 위령비, 위령탑 앞에서 나는 매번 발걸음을 멈췄다.
제주도의 대표 관광 명소인 성산일출봉 곁에서 느낀 우수는 그 대비 때문에 더 짙게 느껴졌다. 고성리에 잡은 숙소를 나와 성산일출봉이 있는 성산리로 걸어가는 길에서다. 일출로에는 많은 관광버스와 렌터카가 오갔고, 승마 체험을 하는 관광객들도 보였다. 이들이 만들어내는 관광지 특유의 활기와 파란 바다 위에 우뚝 솟은 수성화산체 성산일출봉의 위용과 자태로부터는, 본토로 이어지는 길 위 터진목에서 70여 년 전 벌어진 일들을 좀처럼 상상할 수 없다. 그 옆 추모공원 비석에 적힌 생생한 증언들을 찬찬히 괴로워하며 읽고 나서야 우수가 현실로 다가온다. 동쪽에서 떠오른 태양이 성산일출봉을 비추기 시작할 때, 그 반대쪽 그늘에서 스러져간 수많은 사람들이 있었다. 그저 그곳에서 삶을 살아가고 있을 뿐이던 사람들.
그날의 바다도 이렇게 푸르렀을까? 그날의 윤슬도 이렇게 예뻤을까? 총을 든 군인들에 의해 트럭에서 내려져 익숙한 바다 앞에 섰을 때, 그들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 공포에 질려 아무 생각도 하지 못했을까? 다른 누군가를 걱정했을까? 억울했을까? 황망했을까? 슬펐을까? 아마도 살고 싶었겠지. 하얗게 이는 파도의 소리를 듣다 나는 조금 울었던 것 같기도 하다. 무고하게 희생된 개개인의 삶, 그 무게를 생각하면 ‘냉전 시대의 비극’이라는 표현도 가볍게 느껴진다. ‘악의 평범성’을 개념이 아닌 실체로 목도한 사람들이 가진 우수의 깊이에 몸서리가 쳐진다.
성산일출봉을 바라보며 발 닿는 데로 걷다 보니 서북청년회의 주둔지로 쓰였던 성산동국민학교의 옛터를 발견했다. 폐허였다. 그리고 남로당의 공격을 받았던 성산포경찰서 옛터가 불과 200m 남짓 떨어진 곳에 있었다. 현재는 성산파출소가 자리해 있다. 그 앞 벤치에 앉아 사거리를 오가는 다국적의 관광객들을 구경하고 있자니 또다시 70여 년 전의 참상이 아득해진다. 그러나 결코 아득해질 수 없는 것은 사실, 편 가르기와 혐오가 득세한 세상이 이미 오래전부터 눈앞에 펼쳐져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