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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태정 Nov 21. 2022

배낭의 무게

제주의 날 3

 10월 제주 한 달 여행에 함께 한 짐

 배낭

 기기 : 아이패드 / 키보드 / 아이폰 / 에어팟 / 충전기들 / 필름카메라(고장) / 보조배터리

옷 : 반팔티 4 / 긴팔티 1 / 남방류 2 / 긴바지 3 / 잠옷(반팔티 2, 반바지 2) / 청자켓 1 / 바람막이 1 / 팬티 5 / 런닝 2 / 양말 5 / 캡모자 1

 신발 : 러닝화 / 크록스

 위생 도구 : 칫솔 / 치약 / 모아 뒀던 어메니티 세트 /  이상 비운 로션(얼굴,  겸용) / 자외선 차단제 / 집에 있던 마스크팩 / 핸드크림 / 립밤 / 손톱깎기 / 생리대 여분(모자라면 사기) / 샤워 장갑(?) / 마스크 여분(모자라면 사기) / 손수건 / 물티슈 / 빨래망

 기타 : 보조 가방(나다닐 때 들고 다닐 것) / 지갑 / 책(작고 얇은 것) / 텀블러 /  발포비타민 / 종합감기약 / 우산 / 작은 노트와 연필 / 선글라스 / 일회용 콘택트렌즈 10쌍 / 고체 향수


 캐리어가 아닌 배낭을 택한 것은 기동성을 위해서다. 렌터카를 쓰지 않고 대중교통과 두 발을 이용하는 여행에서 캐리어는 거추장스럽다. 비행기에서 내려 부친 짐 기다리는 시간 없이 공항을 나와 달달달 바퀴 굴러가는 소리 없이 길을 걷고 날쌔게 버스에 오르내릴 때면, 어깨가 좀 뻐근하더라도 ‘역시 배낭이 최고야!’ 싶다.


 한 달 배낭여행이 처음은 아니다. 대학생 때 유럽 배낭여행을 한 적이 있다. 그때는 오랜 로망이었던 ‘배낭여행’이라는 단어에 충실하고자 배낭을 택했다. 여름이었는데도 배낭이 16kg에 육박해 수하물 위탁을 했었다. 이번 제주 여행의 배낭이 8~9kg였던 것을 생각하면 참 대단한 패기였다. 젊긴 젊었나 보다. 숙소를 옮기고 국경을 넘을 때마다 낑낑대며 짊어졌던 배낭. 그 맥시멀 배낭의 대부분은 옷이었다. 암스테르담에서, 베를린에서, 로마에서, 바르셀로나에서, 파리에서, 그곳과 어울리는 예쁘고 멋진 룩으로 사진을 찍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었다. 하늘하늘 꽃무늬 원피스에 정성껏 화장을 한 얼굴로 긴 머리를 바람에 날리며, 같이 간 친구와 서로 사진을 찍어주느라 바빴던 여행이었다.


 10년이 훌쩍 지나고 다시 한 달 배낭여행을 했다. 옷이 줄고 화장품이 없는 배낭은 무게가 절반 가까이 줄었다. ‘예쁘고 멋진 룩으로 사진을 찍는 것’이 여행의 우선순위에서 저만치 멀리 떠내려가면서 생긴 변화다. 여행은 그 자체로 우선순위를 고민하게 있는 기능이 있고, 그래서 그 변화는 단지 배낭의 무게뿐 아니라 내 생활 전반에 대한 것이기도 하다.


 그 변화는 어느 한순간의 깨달음이나 어떤 계기로 발생한 것이 아니라 때로는 지지부진했고 때때로 흐지부지될 뻔하기도 했던 10년 넘는 시간 동안의 과정이다. 그 변화는 완료된 것이 아니라 진행 중인 것이기도 하다. 앞으로도 나는 매일 무엇을 덜어내고 무엇을 채울 것인지, 무엇에서 멀어지고 무엇에 집중할 것인지, 끝없이 고민할 것이다. 그렇게 배낭을 꾸리듯 내 생활을 꾸려갈 것이다.


 다음 여행에서는(더 많이 더 자주 여행하고 싶다!) 배낭의 무게가 더 줄어들기를 바란다. 이번 제주 여행에 함께 한 짐을 돌아보니 덜어낼 것이 눈에 띈다. 옷을 더 줄여도 될 것 같다. 솔직히 보온성에 비해 무거운 청자켓은 순전히 멋내기용이었다. 반팔티를 색깔별로 네 장이나 가져간 것도 좀 오버였다. 필름카메라는 괜히 가져갔다. 작동이 되는지 미리 확인을 했어야 했는데. 우산보다는 우비. 물티슈는 환경을 위해 여행에서나 집에서나 끊을 때가 된 것 같다. 그리고 빠른 시일 내의 충전기 통일을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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