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일러 스위프트 (Taylor Swift)
“테일러 스위프트, 스태프에 통 큰 보너스… 1인당 1억 원 이상”
얼마 전 이런 제목의 기사들이 나의 SNS에 올라왔다. 세계적인 팝스타 테일러 스위프트(Taylor Swift)가 지난 3월부터 미국에서 콘서트 투어를 진행 중인데, 자신의 콘서트를 돕고 있는 스태프들 중 50명의 화물트럭 운전기사들에게 각기 10만 달러(우리 돈으로 약 1억 3천만 원)를 특별 보너스로 지급해서 화제가 되고 있다는 것이다. 트럭 운전사에게뿐 아니라 공연에 참여한 모든 스태프에게 빠짐없이 보너스를 지급했는데 총 5500만 달러(약 715억 원)나 된다고 했다. 게다가 공연이 열리는 도시마다 지역 자선단체에 거액의 기부까지 해서 가는 곳마다 미담이 넘쳐난다.
테일러 스위프트는 내가 한창 미국에서 일하던 2006년에 혜성같이 등장했던 가수다. 당시 16세의 어린 소녀였던 테일러는 자신이 직접 작사작곡한 노래를 부르는, 재능이 뛰어난 싱어송라이터였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내 기억에 강하게 남아 있는 그녀의 인상은 보통 자기 또래의 아이들과는 다르게 시골 아재들이 좋아할 만한 컨트리 뮤직을 유쾌하게 잘 부르는 무척 특이한 소녀의 모습이었다. 주로 곱슬머리를 하고 카우보이 신발을 신고 커다란 기타를 둘러매고 딩가딩가 노래하는 소녀.
‘아니 우리 테일러가 도대체 어떤 공연을 하고 있길래, 그리고 돈을 얼마나 벌었길래 이런 상여금을 지급한다는 거지?’
나는 갑자기 궁금해져서 관련 기사를 좀 더 찾아보았다. 이번 공연의 이름은 The Eras Tour. 테일러 스위프트가 처음 데뷔한 2006년부터 지금까지 그녀가 십수 년간 최정상에 있으면서 내놓은 10개의 앨범들 중에서 최고의 히트곡들을 골라, “시대(era)” 순서대로 부르는 형식의 공연이기 때문에 붙인 이름인 모양이다.
기사에 따르면 지금까지 이 공연은 전무후무한 대 성공을 거두었다고 한다. 전 세계 투어에 나서기 전 미국에서만 5개월에 걸쳐 53차례 공연을 했는데 이를 통해 무려 1조 원이 넘는 수익을 올렸다고... 그 정도면 700억 원대의 특별보너스는 충분히 줄 만 하다. 우리 테일러 능력 있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이게 다가 아니다. 일부 추산에 따르면 그녀의 이번 콘서트가 미국 경제에 가져다주는 영향은 무려 5조 원에 달할 것이라고 한다. 그도 그럴 것이 공연이 열리는 도시마다 수만 명의 팬들이 커다란 스타디움을 가득가득 메우고, 가는 곳마다 해당 도시의 경제가 살아나는 효과가 있어서 “스위프트노믹스(Swfitnomics)”라는 신조어까지 생겨났다고 하니 말이다. 얼마나 많은 팬들이 몰려드는지 시애틀(Seattle)에서는 공연 당시 인근의 지진관측소에서 진도 2.3 규모의 진동이 감지되기까지 했다고 한다.
테일러 스위프트가 2008년에 발표한 두 번째 앨범 ‘Fearless’에는 ‘Love Story’와 ‘You Belong With Me’라는 엄청난 히트곡이 포함되어 있었다. 당시에 그 노래가 얼마나 인기였는지 나는 어디를 가나 그 노래를 들을 수 있었고, 그 때문에 이 두 노래는 자연스럽게 나의 머릿속에 각인이 되어 버렸다. 나의 플레이리스트에 들어있는 몇 안 되는 팝송 중에 이 두곡이 포함되어 있음은 말할 것도 없고, 최근에 딸아이와 노래방을 갔을 때도 둘이서 같이 이 노래를 열창하기도 했다.
나는 미국을 떠난 이후로는 딱히 테일러 스위프트의 노래를 들을 일도 없었고, 굳이 찾아서 들을 만큼 사생팬도 아니었기에 그녀를 잊고 지냈다. 그러다가 이번에 그녀와 관련된 기사들을 접하게 되면서, 마치 오래전에 알았던 소녀의 소식을 오랜만에 들은 것처럼 그녀가 그동안 어떻게 살아왔는지가 궁금해졌다. 그래서 테일러의 근황에 대해 좀 더 알아보던 중 넷플릭스에 그녀에 관한 다큐멘터리 영화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Miss Americana. ‘옳다구나’하고 찾아서 주말 동안 시청했다.
내가 기억하는 귀엽고 특이한 천재 소녀는 이미 30대가 되어 있었다. 데뷔 이후 줄곧 정상의 자리에 있었다고는 하나 지난 시간이 마냥 평탄하고 행복했던 것만은 아니었다. 어이없는 논란과 사건에 여러 차례 휘말리기도 했고 그때마다 무너져 내리기도 했었다. 하지만 주저앉아 포기해 버리는 것이 아니라 다시 일어났다. 그리고 일어날 때마다 더 성숙하고, 더 멋지고, 더 강한 사람이 되어갔다.
다큐를 다 보고 나자 그녀가 대견하다는 생각이 들면서 마음 한편이 뭉클해지기까지 했다. 그녀가 대단하다고 느껴진 것은 단순히 그녀의 재능 때문만은 아니었다. 처음에는 컨트리 송을 부르는 소녀였지만 그녀는 자신의 장르를 스스로 좁게 제한하지 않았다. 아티스트로서 다양한 시도를 했고 다양한 장르에 도전하며 변신을 거듭했다. 그리고 한 인간으로서도 마찬가지였다. 그녀는 나약하고 순응하는 ‘착한 소녀’에서 점점 사회 문제에도 자신의 소신을 당당하게 밝히고 그 결과에 대해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으로 변해간 것이다. 아마 그녀의 팬들은 테일러의 이런 모습들 때문에 그녀를 더 좋아하는 것이 아닐까?
월요일에 출근해서 임원들과 함께 식사를 하다가 주말에 있었던 일들을 이야기했다. 내가 테일러 스위프트 이야기를 꺼내면서 그녀의 콘서트가 지금 미국에서 난리라는 이야기를 했더니 한 임원분이 “테일러 스위프트가 누구예요?”라고 묻는다.
‘이런… 아무리 연구 외에는 세상사에 관심이 없으셔도 그렇지, 아니 어떻게 우리 테일러를 모르실 수가!’
내가 테일러 스위프트가 누구인지, 그리고 왜 그녀가 훌륭한지를 입에 거품을 물고 이야기했더니 옆에서 이야기를 함께 듣고 있던 다른 임원분께서 나에게 한마디 하신다.
“대표님, 이제 보니 테일러 스위프트의 삼촌팬이시군요?”
삼촌팬? 한 번도 그런 생각을 해 본 적이 없었다. 하지만 듣고 보니 어쩌면 그럴지도 모르겠다. 단지 그녀의 지금 모습만을 좋아하는 것이 아니라, 그녀의 데뷔시절 어린 모습이 중첩되면서 그녀의 지나온 과정까지가 다 좋은 것을 보면. 특히, 끊임없이 도전하고 변신해 가는 모습과 낙담해도 자신을 추스리고 다시 일어나는 모습, 그리고 자신의 소신을 두려움없이 당당하게 드러내는 모습... 이런 점들은 나도 배우고 싶은 모습들이다.
테일러 양, 잘 자라줘서 참 고마워요~.
(사진: 테일러스위프트 인스타그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