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 수술을 한 이후로 줄곧 동공을 확장시키는 산동제를 비롯해서 온갖 약들을 2-3시간 간격으로 계속 눈에 넣고 있다. 그러다 보니 하루종일 눈도 부시고 시야도 흐릿하다. 뭘 좀 보고 있으면 빨리 피곤해지는 것 같기도 하고.
덕분에 지난 며칠 사이에 엉뚱한 실수들을 연발하고 있다. 얼마 전에는 린스병을 치약통인줄 착각해서 린스로 칫솔질을 했다. 린스가 그렇게 구역질 나는 맛인 줄 처음 알았다. 양말을 짝짝이로 신고 회사에 가기도 했고, 알람에 오전과 오후를 잘못 설정해서 약속시간을 놓치기도 했다.
내가 아닌 상대방도 착각을 한다. 며칠 전에는 신혼여행을 갔다가 오랜만에 회사로 복귀한 직원 A와 로비에서 마주쳤다. 잘 다녀왔느냐고 물으며 반갑게 인사를 했는데, A는 갑자기 놀란 표정으로 내 얼굴을 빤히 쳐다보았다.
“어머, 대표님 눈이…”
나는 내 눈이 아직 빨갛게 충혈되어 있는 걸 보고서 그러나 보다 싶어서 얼른 대꾸했다. “아, 이거? 나 최근에 눈 수술을 해서 그래요 ㅎㅎㅎ” 그러자 A는 더 놀란 표정을 지으며 잠시 멈칫하더니 웃으며 말했다.
“와~ 수술이 참 잘됐나 봐요. 쌍꺼풀이 되게 진한데도 엄청 자연스러워 보여요 ㅎㅎㅎ”
(잉? 이게 무슨 소리지???) 나는 잠시 A의 말에 당황했다. 그리고는 이내 깨달았다. 나는 피곤하면 눈에 쌍꺼풀이 잘 생기는데 그날따라 유난히 피곤했는지 없던 쌍꺼풀이 더 짙게 생겼었던 모양이다.
“아, 아니… 쌍꺼풀 수술을 한 게 아니고, 눈 안에 망막에 문제가 있어서 수술한 거예요 ㅎㅎㅎ”
“아, 그런 거예요? ㅎㅎㅎ ^^;”
A도 이내 사태를 파악한 듯 멋적어하며 함께 웃었다.
사람은 쉽게 착각하는 존재다. 착각할 때 사용되는 뇌신경세포나 현실을 지각할 때 사용되는 뇌신경세포는 서로 다르지 않기 때문에 우리 뇌는 일단 착각을 하게 되면 그것이 착각인지 아닌지 구별하지 않는다고 한다. 그렇기 때문에 소위 ‘긍정적인 착각’은 우리가 실제로 아픔을 덜 느끼게 하기도 하고, 문제해결을 위한 끈기를 잃지 않게 하거나, 스스로에 대한 자존감을 높이는 등 여러 가지 순기능이 많다고 한다. ‘착각은 자유’라는데 이왕에 착각을 할 거라면 긍정적인 착각을 하는 편이 더 낫다는 소리다.
하지만 꼭 긍정적인 착각이 아니더라도, 생활 속에서 저지르는 소소한 착각들에 당황하거나 부끄러워하기보다 ‘하하하!’ 하고 웃어넘길 수 있다면 그것 만으로도 이미 긍정적이지 않을까? 요즘 내 눈 때문에 이래저래 많이 웃다 보니 드는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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