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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함태진 Sep 05. 2023

공정하다는 착각

우리 회사의 성과평가는 과연 공정한가?


“그렇게 하는 것은 공정하지 않은 것 같아요”

최근 경영진 회의에서 성과평가에 대한 토의가 있었다. 상대평가로 할 것인가, 절대평가로 할 것인가? 평가등급을 3단계로 나눌 것인가, 아니면 4단계 혹은 5단계로 나눌 것인가, 1차 평가자의 평가 결과를 전사적으로 어떻게 조율할 것인가, 성과평가의 결과는 연봉조정이나 승진심사 등에 어떻게 반영할 것인가...


예민한 주제들이다 보니 갑론을박이 많았다. 각각의 선택지마다 장점이 뚜렷한 만큼 단점도 있었다. “좀 더 공정하게 하기 위해서는 더 명확한 기준을 정하고, 객관적으로 성과를 계량할 수 있는 tool(도구)도 개발할 필요가 있습니다” 임원들의 발언에 유난히 “공정”이라는 단어가 많이 들렸다.


맞다, 성과평가는 공정해야 한다.




완벽하게 공정한 시스템은 어떤 것일까? 다양한 회사와 다양한 나라에서 다양한 성과평가 체계를 경험해보기도 하고 시행해 보기도 했지만, 아쉽게도 나는 아직 그 어디에서도 '완벽하게 공정한' 시스템은 본 적이 없다.


목표를 최대한 구체적이고 측정가능하게, 소위 “SMART (specific, measurable, …) 하게” 설정하는 것의 중요성을 많이들 이야기하지만 그것 역시도 공정한 성과평가를 위한 첫 단추일 뿐, 완벽한 해결책은 아니다.


예를 들어서 영업마케팅 조직의 경우 성과목표를 매출액이나 매출성장률, 시장점유율, 혹은 신규 거래처 개수 등 구체적(specific)이고 측정가능(measurable)한 수치로 명확하게 설정할 수는 있다. 하지만 이렇게 목표와 결과가 객관적인 숫자로 표현된다고 해도, 그렇기 때문에 그것이 "100% 공정”할 것이라고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만일 누군가의 목표치가 매우 높게 도전적으로 설정된 반면, 다른 누군가의 목표치는 애당초 달성하기 쉽도록 낮게 설정되었다면, 전자의 ‘90% 목표 달성’을 후자의 ‘100% 목표 달성’ 보다 못했다고 평가하는 것이 '객관적이고 명확'하긴 할지언정, 과연 '공정하냐'에 대해서는 여전히 찜찜함이 남는 것 처럼 말이다.




<정의란 무엇인가>로 유명한 하버드 대학교의 마이클 샌델 (Michael Sandel) 교수는 그의 또 다른 저서 <공정하다는 착각 (The Tyranny of Merit)>에서 우리가 흔히 “공정하다”라고 생각하는 많은 것들이 어쩌면 공정하지 않은 것일 수도 있다는, 즉 그저 '공정하다'는 "착각”에 불과한 것일 수도 있다는 파격적인 화두를 던진다. 


예컨대 우리 사회에서는 누군가가 열심히 노력해서 시험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고 좋은 대학을 가고 또 좋은 직장에 들어가는 소위 ‘능력주의 (meritocracy)’가 마치 100% 완벽하게 공정한 정답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지만, 우리가 ‘금수저’에게 부와 성공이 대물림되는 것이 출발선에서부터 공정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것처럼 누군가 ‘타고난 능력과 자질’이 뛰어나서 같은 노력으로도 더 좋은 성과를 거둔다면 이것 역시 출발선에서부터 공정하지 않은 것으로 볼 수 있지 않느냐는 것이다.


'타고난 능력과 자질'이란 말 그대로 자신의 노력과는 무관하게 (즉, 운 좋게) '타고난' 것일 뿐이므로 그런 운을 타고나지 못한 (즉, 선천적인 능력이 부족한) 사람들과의 경쟁이 온전히 공정한 것이냐는 물음인데, 이쯤 되면 ‘해 아래에 완벽하게 공정한 것은 하나도 없다’고 해야 할 정도로 급진적인 주장같이 들리기도 하지만 한편으로 곰곰이 생각해 보면 일리가 없는 것도 아니다.


회사의 성과평가 체계를 정비하면서 “공정함”이란 우리가 이상적으로 나아가고자 하는 하나의 “방향”이 되어야지, 절대적인 “목표”가 되어서는 안 될 것 같다는 생각을 해본다. 물론 최대한 공정한 시스템이 될 수 있도록 지속적인 노력과 개선은 멈추지 않아야겠지만 말이다.



https://brunch.co.kr/@taejin-ham/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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